反尹 당대표? 잠룡 한동훈의 딜레마

고재석 기자 2024. 6. 2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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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도박” vs “검사 티 벗는 길”

● 총선 직후부터 측근들 움직여
● 당내 인사와 접촉면 늘리는 韓
● 명확한 타깃 덕에 만든 기회
● “尹 남은 임기 3년, 무시 못 해”
● “韓은 1997년 이회창과 달라”

4월 11일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제22대 총선 관련 입장 발표를 마치고 나서고 있다. [이훈구 동아일보 기자]
"총선 직후부터 측근이 나서서 한 전 위원장의 행보에 관한 의견을 묻고 다녔다. 세력을 규합하려는 의지도 강한 것 같다. 총선을 치르면서 혼자서는 정치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은 것 같더라. 전당대회와 관련해서도 러닝메이트 역할을 할 최고위원 후보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안다."(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측과 소통한 원외 인사)

한동훈이 돌아온다. 그는 6월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나경원 의원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출마 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한다. 한 전 위원장의 선거 캠프는 여의도 대산빌딩에 마련됐다. 대변인을 비롯해 주요 실무진도 속속 공개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과거 보수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인사 등이 한 전 위원장을 가까이서 돕고 있다고 한다.

한 전 위원장의 메시지도 부쩍 날카로워졌다. 6월 8일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자기 범죄로 재판받던 형사피고인이 대통령이 된 경우, 그 형사재판은 중단되는 걸까"라고 했고, 이틀 뒤에는 "대통령 당선을 감옥 가지 않을 유일한 탈출구로 여긴다"고 썼다. 그러면서 헌법 제84조 논쟁을 촉발했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정한다.

이재명 대항마냐 칼잡이 검사냐

4월 14일 국회 국민의힘 원내행정국 앞 게시판에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제22대 총선 공약 포스터가 붙어 있다. [뉴스1]
평가는 엇갈린다. 긍정론의 대표 논리는 "이재명 vs 한동훈 구도를 강화하면서 자연스레 정치적 상수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국민의힘 당협위원장)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대항마 성격을 분명히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칼잡이 검사' 이미지만 짙어져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질 것"(더불어민주당 전략통)이라는 부정론도 있다. 당내 선거에선 유리하나 대선에서 확장성을 제약할 것이라는 뜻이다.

서로 성질이 다른 긍정론과 부정론 사이에 공통점도 보인다. 공히 한 전 위원장이 '페이스북 정치'로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의원직이 없는 한 전 위원장에게는 말과 글이 정치활동의 무기다. 거기다 명확한 타깃(이재명 대표)까지 설정돼 있으니 그로서는 지지층을 결집할 요소가 마련된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차기 당대표 레이스에서 보수의 밑바닥 정서는 '한동훈 대세론' 분위기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5월 27∼2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한 전 위원장의 전당대회 출마에 대해 '적절하다'는 응답은 37%, '부적절하다'는 응답은 47%였다. 그런데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적절하다'는 의견이 70%,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22%로 집계됐다. 이념 성향이 보수라고 답한 응답자 중에서는 '적절하다'를 택한 비율이 56%였다.

(해당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 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 방식으로 이뤄졌다. 응답률은 16.3%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6월 13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당헌당규개정특별위원회가 올린 현행 단일 지도 체제 유지안을 의결했다. 이로써 기존처럼 당대표가 인사·조직·예산 등에 관해 전권을 갖는다. '한동훈 견제용'이라고 불린 2인(당대표·수석최고위원) 지도 체제는 무산됐다. 대선에 출마할 경우 1년 6개월 전 당직을 사퇴하도록 한 당권·대권 분리규정도 유지키로 했다. 전당대회 룰(rule)과 관련해서는 '당원 투표 80%+일반 국민 여론조사 20%'로 바꾸는 안을 받아들였다.

원외 신분인 한 전 위원장에게 당대표직은 반전의 모멘텀이다.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따라 내년 9월 사퇴해야 하지만 1년여의 시간을 얻었다는 점은 플러스 요인이다. '원톱 체제'가 유지된 이상 국민의힘을 '한동훈당(黨)'으로 탈바꿈시킬 여지도 생긴다. 매일 아침 카메라 앞에 서서 현안에 대한 의견을 피력할 기회도 얻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8월 전당대회에서 연임할 경우 '이재명 vs 한동훈' 구도를 내년까지 이어갈 수 있다는 점도 호재다.

尹의 거부권 정치에 대응하는 법

관건은 현재권력과의 관계다. 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170석, 국민의힘은 108석을 갖고 있다. 민주당이 압도적 의석을 바탕으로 국회 운영의 주도권을 쥔 상황에서 소수 여당의 돌파구는 마땅치 않다. 법적으로는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정무적으로는 여론의 지지가 있는 정도다. 두 쪽 다 여당 대표와 대통령 간 관계 설정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변수다.

만약 '한동훈 당대표'가 윤 대통령과 긴장을 이어가면 거부권 행사 국면에서 여당 대표 역할은 제한된다. '거부권을 거부'하면 야당에 동조한 셈이 된다. '거부권을 수용'하면 대통령실의 '여의도 출장소' 낙인이 찍힌다.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쓰지 말아달라'고 하면 여권 내 갈등을 자초했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그렇다고 윤 대통령과 밀월 관계를 형성하면 여론의 지지를 얻기가 어렵다.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저점에서 횡보 중인 탓이다. 자칫 무엇도 결정할 수 없는 비토크라시(vetocracy) 정국에 갇혀 성과도 못 낸 채 임기를 허비할 수 있다. 원희룡 전 장관과 나경원 의원 등은 전당대회에서 이 점을 집중 공략할 공산이 크다.

차기 대권을 고려해도 고난도의 숙제가 남는다.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사이의 관계는 고차함수다. 현직 대통령과 여당 대권주자 사이의 관계는 더 복잡 미묘하다. 적정선이 어디냐에 대해 전문가 사이에서도 견해가 다양하다. 실패 모델로 주로 거론되는 건 1997년 대선 당시 김영삼(YS) 대통령과 이회창 신한국당 대선후보(전 한나라당 총재)의 사례다. 이 전 총재는 YS와 대립각을 세우다 총리직을 던져 일약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어진 그와 YS 간 대립이 여권 분열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해석도 있다.

한 전 위원장에게 우호적인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나친 반윤 행보는 위험한 도박"이라면서 "총선 참패로 '낭인' 신세가 된 원외 인사가 너무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들에게는 4년을 어떻게 버티는지가 관건인데, 임기가 3년 남은 윤 대통령이 내각과 공기업·공공기관 인사권을 쥐고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한 전 위원장이 당내 세력화 과정에서 신중한 접근을 해야 할 이유"라고 했다.

반면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반윤 행보가 위험한 도박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한 전 위원장에게 지금 시급한 과제는 검사 티를 벗는 것"이라면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오히려 한 전 위원장이 반윤 행보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 교수는 "이회창 전 총재의 경우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지금의 윤 대통령을 당시 김 대통령과 비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신동아 7월호 표지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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