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죽음의 대가로 대한민국에 자유를 안겨주거라!”
● 멩기스투 사회주의 군정에 핍박받은 6·25전쟁 참전용사
● 아디스아바바에는 무궁화가 피어 있다
● 빚 갚는 심정으로 인도주의 지원 늘릴 때
● 엄청난 성장잠재력 지닌 아프리카연합 55개국
교각을 계속 보강하는 외교적 노력, 대한민국 정체성을 지키면서 국제공조를 강화하는 대외전략은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다리 같은 구실을 하기에 'BTS 외교'라고 할 만하다. 6월 4일, 5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과 아프리카 정상회의는 참으로 의미가 크다. 인구 14억5000만 명의 네이션 빌딩(Nation-building·국민 혹은 민족 정체성을 건설해 가는 과정)이 진행되는 아프리카에는 무려 55개국이 있다. 이들 나라는 무한한 부존자원, 농업생산량, 출생률 5%라는 엄청난 성장잠재력을 갖고 있다.
對아프리카 외교 새로운 모멘텀
산업통상부와 무역협회는 경제정상회의를 준비해 아프리카에 국내 기업들이 진출할 여건을 만들었다. 6월 4일 대통령실 발표에 따르면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통해 한국과 아프리카 국가 간 조약 및 협정 12건, 양해각서(MOU) 34건 등 총 46건이 체결됐다. 핵심광물협력 MOU 2건,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 6건, 인프라·모빌리티 협력 MOU 3건이 대표적이다. 경제동반자협정(EPA) 2건에 대한 협상 개시 선언도 이뤄졌다. 한국의 대(對)아프리카 외교에 새로운 모멘텀을 만든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촌 경제 번영을 이끌던 세계의 공장은 유럽-미국-동아시아-중국-동남아시아-인도 순으로 자리바꿈을 해왔다. 지금 부상하는 인도 다음은, 어느 지역이 될까. 아프리카다. 한국은 본격적 산업화를 시작한 지 50여 년 만에, 중국은 개혁·개방 30여년 만에 세계의 공장이 됐다. 단언컨대 30년에서 50여 년 사이 아프리카가 세계 산업의 새로운 메카가 될 것이다.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참가한 국가 가운데 6·25전쟁 당시 한국을 도운 나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에티오피아 두 나라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남아프리카연방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전투비행대대 826명을 파병했다. 일명 무스탕기(F-51D) 전투기 95대 및 F-86제트 전투기 20대를 운용했다. 북한 지역에 전략폭격과 후방차단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1만2405회를 출격했다. 당시 소련제 미그 15기 출격으로 고전하던 연합군의 제공권 장악에 기여했다. 참전자 중 37명이 전사했다. 참전한 또 하나의 국가는 에티오피아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督戰
6·25전쟁 당시 에티오피아는 입헌군주제 국가로, 황제는 하일레 셀라시에였다. 셀라시에 황제는 1916년 권력을 잡아 1930년 황제가 됐다. 이후 입헌군주제를 도입했지만 1936년 이탈리아 침략에 패해 영국으로 망명했다가 1941년 영국의 도움으로 나라를 되찾았다. 이탈리아의 군사 침략으로 인한 망국과 망명이라는 정치적 부침 속에서 그는 집단안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유엔(UN) 창설에 적극 참여했다. 6·25전쟁 직후 유엔이 유엔군의 이름으로 참전을 요청하자 즉각 참전을 결심했다. 1951년 에티오피아군의 파병식에 행한 셀라시에 황제의 격려사는 참전 의지를 잘 나타낸다. 한국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전재된 그의 격려사는 다음과 같다."가거라! 살아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고, 전부 거기에 가서 모두 맹렬하게 싸워서 전사하거라! 만약 사지가 멀쩡하게 돌아온다면, 짐의 이름을 걸고 절대로 용서치 않겠다! 너희들의 죽음의 대가로 '자유'라는 것을 저들의 손에 꼭 안겨주거라! 우리 민족이 과거에 이탈리아인들에게 무엇을 당해 왔는지 말하지 않아도 그 고통은 뼛속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짐도, 너희 모두도 잘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 모른 척한다면, 침략자들보다 못한 더러운 위선자일 뿐이다."
필자는 자신을 지켜온 근위대원들을 파병하면서, 피 끓는 격려를 한 황제의 격려사 전문을 찾아 진위를 확인하려 했다. 국가보훈처가 발간한 책자에 소개된 내용은 파병을 보내는 동기와 정신은 위와 같되,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을 담아 온건한 문장으로 돼 있다.
"사랑하는 나의 전사들이여, 우리 조상들과 우리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수천 년 싸워온 선열들의 혼백이 그대들을 지켜 한국 전선에서 싸울 그대들 손발을 강건하게 해 승승장구하게 할 것이다. 그대들 조국이 선열들이 흘린 피뿐만 아니라 연합국의 도움으로 독립됐으니 그대들 한국전 참전이 이에 대한 보답의 길이 됨을 또한 항상 명심하라. 그뿐만 아니라 조국과 유엔 원국을 대표해 그대들이 집단안보라는 보편타당한 원칙의 기초를 다지는 일임을 명심하라. 신의 가호로 그대들이 한국전에서 영웅적 행동으로 임무를 완수한 후 그대들을 사랑하는 조국 에티오피아로 무사귀환하기를 짐은 국민과 함께 빌겠다."
국가보훈처 자료는 황제로서 남긴 공식 격려사, 인터넷에 전재된 자료는 출병식에서 군통수권자로서 행한 독전(督戰) 연설로 짐작된다.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에티오피아 정부는 에티오피아 주재 미국 대사를 통해 6·25전쟁 참전 의사를 밝히고 황실근위대를 중심으로 파병부대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황제는 한국전 파병부대의 이름을 '각뉴(Kagnew)'로 정했다. 각뉴는 '혼돈에서 질서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극심한 혼란과 시련을 겪는 한국이 질서 있는 국가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그의 기도가 담긴 것이다.
황제와 참전용사의 비극
1974년 에티오피아에 정변이 발생했다. 멩기스투 소령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사회주의 군정이 시작됐으며 멩기스투는 17년간 집권했다. 쿠데타 발생 1년여 만에 황제는 목 졸려 살해되고, 시신은 궁정 화장실 앞에 암매장되는 비극이 일어났다. 6·25전쟁 참전을 결정한 황제의 몰락과 비극의 폭풍우는 거대한 해일이 돼 생존한 참전용사와 그 가족을 덮쳤다. 6·25전쟁에 참전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 전역당하고 심지어 사형까지 당했다. 에티오피아식 연좌제가 작동해 참전용사 자녀들은 취업까지 제한받았다. 수도인 아바나에 참전용사를 위해 설치된 코리아타운은 해체되고, 상당수 전역 군인이 아바나에서 추방됐다.
필자는 5월 초 에디오피아를 방문해 생존한 참전용사의 생생한 육성으로 그들이 감내한 고통을 직접 들었다. 1951년 4월 13일 에티오피아 항구를 출발해 그해 5월 7일까지 23일간 배를 타고 한국의 자유를 수호하려고 목숨 걸고 참전한 군인들에게 가한 멩기스투의 핍박은 형벌, 그 자체였다. 친(親)북한 노선으로 인해 에티오피아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도 불참했다. 1995년 에티오피아연방민주공화국으로 재출발한 그들을 한국은 어떠한 마음으로 대해야 하겠는가. BTS 외교 마인드를 권한다.
‘BTS 외교' 마인드로 다가가자
첫째 축은 6·25전쟁에 참전해 전사하거나 혹독한 고통을 감내한 분들에 진 빚을 갚는 심정으로 다가가자. 비즈니스 마인드를 과감하게 최소화하자는 의미다. 둘째 축은 광대한 아프리카대륙과 대한민국을 연결하는 교두보를 만드는 마음으로 다가가자. 아프리카의 지도국가인 에티오피아와 전략협력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콘텐츠와 진정성은 다른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에 깊은 영향을 줄 것이다. 아울러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인도주의적 지원을 획기적으로 확대하자. 정부를 대신해 한국전쟁참전국기념사업회(회장 신광철) 등 많은 시민단체가 6·25전쟁 때 진 빚을 갚는 심정으로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고 있다.
에티오피아를 방문했을 때 6·25전쟁에 참전한 노병의 손을 잡을 기회가 있었다. 그 노병은 한국의 발전을 위해 기도해 줬다. 어려운 삶을 살았으면서도 한국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카르마를 느꼈다. 옆에서 지켜보는 일행의 눈가에 고인 눈물도 봤다. 감성으로 이 험한 국제질서 속에서 생존과 번영을 이어갈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를 움직인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인 경우가 적지 않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감성적 절규는 한국을 통째로 바꾸었다. 에티오피아와 한국을 연결하는 파트너십은 감성에 바탕을 둔 국가이성이어야 한다. 주에티오피아 한국대사관의 정강 대사는 필자를 만나 참전국 특혜관세, 에티오피아 국민의 한국 고용 도입과 확대를 제안했다. 이는 에티오피아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조치다. 관계 부처는 대사의 요구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Adis Ababa)는 '새로운 꽃'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아디스아바바에서는 참전용사가 심고 가꾼 무궁화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무궁화가 더욱 만개한 동산을 보고 싶다.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를 경제 비즈니스 마인드로만 봐서는 안 된다. 세실리에 황제 무덤 앞에 전쟁기념사업회 이름으로 꽃 한 송이 바치고 싶다.
●1961년 출생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現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국민대 석좌교수, 한중안보평화포럼 회장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前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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