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펀치볼’ 둘레길…지뢰밭이 관광지로
[앵커]
남북분단으로 국토의 허리에 군사분계선이 그어지며, 적대와 긴장으로 정체되어 있던 지역이 있습니다.
휴전선 인근, 접경지역이라 일컫는 곳들인데요.
경기도 연천군과 강원도 철원군, 양구군과 고성군 등 15개 시‧군이 '접경지역 지원 특별법'에 따라 접경지역으로 지정되어있죠.
그런데 여러 규제 때문에 기업과 인구가 유입되지 않아 지역발전에 어려움을 겪어 왔는데요.
최근 주민들의 노력과 아이디어로 활력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강원도 양구군에 위치한 DMZ펀치볼둘레길에는 감자꽃이 활짝 피었다고 하는데요.
볼거리와 먹거리로 관광객들에게 손짓하고 있는 현장을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분화구처럼 움푹 패인 분지, 시원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 모습이 화채 그릇 같다고 해서 '펀치볼'로 불리는 지역인데요.
[박진용/숲길등산지도사 : "종군 기자들이 산에서 (지형을) 보니까 화채 그릇처럼 생긴 거예요. 전투 기사를, 화채 그릇처럼 생긴 '펀치볼'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다고) 송고하면서 '펀치볼'로 불리게 되죠."]
펀치볼은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5km 떨어진 양구군 해안면에 있습니다.
6.25 전쟁 때엔 도솔산 전투와 가칠봉 전투 등이 벌어진 격전지였습니다.
현재는 우리나라 국가 숲길 1호인 'DMZ 펀치볼 둘레길'이 조성돼 있는데요.
최근 이 둘레길에 감자꽃이 만발했습니다.
[박찬/탐방객 : "저희가 여기는 함부로 올 수 있는 데가 아니다 보니까 그게 특이해서 더 좋아요."]
최전방 지역 둘레길을 탐방하려면, 출발 전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정광규/민북지역국유림관리소 : "민간인 통제 북방 지역이라서 먼저 서약서를 작성해 주십시오."]
이곳 양구에서 DMZ 펀치볼 둘레길이 시작됩니다.
사계절 각각 다른 절경을 뽐낸다는 게 바로 이곳의 자랑거리라고 하는데요.
초여름 이곳의 모습은 어떨까요? 지금 함께 출발해보시죠.
탐방객들은 DMZ 자생식물원과 송가봉 쉼터, 대암계곡, 감자꽃길을 거쳐 다시 식물원까지, 총 6.6km 거리를 걷게 됩니다.
이곳 DMZ 자생식물원이 출발지입니다.
북한에 자생하는 가는산부추와 백두산떡쑥 같은 식물들이 눈에 띄는데요.
[윤정원/국립DMZ자생식물원 연구사 : "이 꽃은 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용머리'고요. 북방계 식물이 되겠습니다. 저기 보시면 하얀색 꽃들이 다 '벼룩이울타리'랑 '오랑캐장구채'라는 북한 식물이 되겠습니다."]
탐방로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전쟁의 상흔이 공존합니다.
발길을 멈추고, 야생화를 촬영하는 오광록 씨.
[오광록/탐방객 : "(어떤 꽃이에요?) '노루오줌'이란 꽃입니다. (다른 둘레길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꽃이에요?) 물론 다른 곳에서도 보는데 강원도 쪽에서 저는 많이 봤어요."]
곳곳에 설치된 울타리와 지뢰 팻말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오광록/탐방객 : "여기가 우리 땅인데 지뢰 표지판 보니까 남북이 분단된 전방 지역이구나 하는 걸 느꼈고 마음이 아프죠."]
나무숲 그늘 아래를 걸으며 초여름 무더위를 식히는 탐방객들.
황해도 실향민 2세인 김성열 씨는 가보지 못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듭니다.
[김성열/탐방객 : "제가 이렇게 와서 최전방을 한 번 안내를 받아 걷다 보니까, 글쎄요.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모님 고향도 가보고..."]
출발지에서 1km 즈음 걸어 펀치볼 조망이 가능한 송가봉 쉼터에 다다랐습니다.
["(안 힘드세요?) 좋습니다."]
탁 트인 전망이 시원스레 펼쳐진 풍경인데요.
["북한하고 가장 가깝게 사는 동네가 이 펀치볼 마을입니다."]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 뒤에는 치열했던 전쟁의 역사가 남아있습니다.
[박진용/숲길등산지도사 : "네덜란드, 프랑스, 미군, 한국군 해서 이 지역에서만 우리 아군이 약 8,500명 정도가 희생돼요."]
이곳 주민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는 지뢰밭을 개간했고 2011년부터는 둘레길을 일궜다고 합니다.
["여기가 DMZ 접경지역인데, 이렇게 둘레길을 개발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박진용/숲길등산지도사 : "산림청이 이 지역에 둘레길을 만드는 구상을 하고 그 구상에 따라서 지역 주민이 법인을 만들어서 이 둘레길을 만들기 시작한 거죠."]
주민들은 이곳에서 탐방객들을 안내하고, 지역특산물을 알려 나갔는데요.
특히 이 둘레길만의 명물이 있다고 합니다.
["이제 조금만 가면 밥을 드디어 먹을 수가 있습니다. 배가 너무 고프네요. 얼른 가보겠습니다."]
산 넘고 물 건너 찾아간 곳에는 숲속 식당이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지역 농산물로 정성껏 차린 음식들을 먹어보았습니다.
["이건 뭐예요? 너무 맛있는데."]
[이정숙/식당 대표 : "그건 눈개승마. 제일 먼저 눈 속에서 나온다고 해서 눈개승마. (이 지역에서 특히 많이 나는 나물인가요?) 그렇죠. 저희가 다 채취한 거예요. 심었어요."]
식당은 '숲밥'이라 불리며 둘레길의 명물이 되었고, 지역 살림에도 보탬이 됐습니다.
["이렇게 드시고 많은 분들이 구매해가세요?"]
[이정숙/식당 대표 : "네, 드셔보고 맛있다고 많이들 사 가세요. (여기 지역이 살아나네요?) 네, 그럼요. 마음이 많이 도움이 되죠."]
전쟁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 접경 지역은 각종 규제로 인해 경제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곳 둘레길은 지역 경제 활성화 측면에 있어서도 톡톡히 한 몫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탐스럽게 핀 감자꽃밭을 바라보며 탐방객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양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감자 생산지 가운데 한 곳인데요.
주민들이 양구 감자 맛 자랑에 여념이 없습니다.
["선생님 어떤 음식이에요?"]
[홍성자/사단법인 디엠지펀치볼숲길 : "감자전. 우리 지역은요. 아침과 저녁에 기온 차가 15도 차이 나거든요. 그래서 감자가 정말 옹골지고 맛있어요."]
주민들이 솜씨 발휘한 감자전의 맛은 어땠을까요.
["(너무 바삭바삭하다.) 맛있지? ('양구'하면 '감자'라는 말이 왜인지 알겠네요.)"]
직접 담근 장류와 수확한 농산물, 청정 산나물은 둘레길의 최고 상품이기도 합니다.
["뭐 사셨어요?"]
[송광헌/탐방객 : "여기 펀치볼 시래기, 뽕잎, 쑥 나물, 도라지장아찌요."]
이곳에 펼쳐진 작은 시장은 지역 소득 창출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박옥근/사단법인 디엠지펀치볼숲길 이사 : "둘레길에서 손님들이 오시잖아요. 그때만 판매를 하고 있는데 경제적으로 도움도 되고 그렇게 해서 판매하고 있어요. (소득도 높아지나요?) 소득도 높죠. 농사꾼들 부수입으로 괜찮아요."]
숲길이 활성화되면서 활력을 찾아가는 양구군 사람들.
[장성봉/만대리 이장 : "저기 구름 보이는 쪽이요. 거기가 북한이고요. 앞에 보이는 능선이 남방한계선."]
이들은 오랜 기간 묵묵히 접경지역 마을을 지키며 천천히 마을의 변화를 이끌어왔는데요.
[장성봉/만대리 이장 : "예전에는 선전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둘레길도 생기고 관광객도 많이 오시니까 저희 마을이 평화롭고 잘 사는 마을로 갔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딛고 펀치볼에 뿌리내린 마을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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