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목숨 걸고 보는 ‘파묘’…점 보고 ‘탈북’

KBS 2024. 6. 22.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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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인기라는 이야기,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최근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 영화 '파묘'가 인기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주목할 점은 해당 영화가 무속과 풍수지리 등 민간신앙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건데요.

북한에선 민간신앙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오히려 북한 주민들은 이런 소재에 큰 관심을 가지는 겁니다.

북한 주민들은 왜 영화 파묘에 빠진 걸까요?

또 북한에는 민간신앙이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영화 '파묘'/2024 : "여기 전부 다 알 거야. 묘 하나 잘못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명당을 찾는 풍수사와,

[영화 '파묘'/2024 : "딱 보니 묫바람입니다."]

원혼을 달래는 무당.

장의사와 법사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영화, 파묘!

국내 천만 관객을 돌파한 파묘는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는데요.

최근 한 대북 전문매체는 북한에서도 '파묘'가 인기라는 사실을 조명해 화제입니다.

청년세대의 경우 단속과 처벌에도 해당 영화를 구하기 위해 유통업자를 찾아다닐 정도라는데요.

이런 현상을 반영한 듯한 탈북민 단체는 페트병에 쌀과 함께 영화 '파묘'가 담긴 USB를 넣어 북쪽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탈북민과 전문가들은 풍수지리나 무속신앙 등 영화의 소재 거리들이 북한 주민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을 거라고 입을 모읍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파묘라는 영화 제목도 진짜 파격적이지만 묘를 이장하는 영화도 있구나 이런 것도 영화 소재로 되네. 그런 호기심, 충동적인 게 많은 거 같아요."]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북한에서 일반 주민들에게 신앙 문제라든가 특히 종교적, 무속적인 문제는 굉장히 터부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간에서 이런 전통 신앙이라든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주민들이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영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북한은 민간신앙을 미신행위로 여기고 마약, 성매매, 도박, 밀수와 함께 5대 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법상에도 위반 시 최고 7년의 노동 교화형에 처하도록 명시돼 있는데요.

나아가 대중 예술을 통해서도 주민 사상을 단속했습니다.

[혁명연극 '성황당' : "(어머니 어디 갔어?) 글쎄, 그 지주 여편네 말을 듣더니 꼭 점을 한 번 쳐보겠다고. (참나. 무당 점쟁이라면 오금을 못써.)"]

북한의 대표 혁명연극 '성황당'은 종교와 미신에서 주민을 해방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김해순/북 공훈 배우 :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이 장면에 잡귀신들의 말싸움을 많이 줌으로써 종교의 허위성과 반동성을 집중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현명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많은 북한 주민들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무속인을 찾아가 점을 치고, 풍수사에게 묫자리를 점지 받습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음력 설 쇠고 그달에는 정말 용하다는 집은 물밀듯이 찾아가요. 제가 살던 혜산시 마산동 그 근처에 9살 난 총각 아이가 있었는데 9살짜리가 보다 보니까 정말 유명했고요. 그리고 장애인인데 눈을 보지 못한 어르신 한 분 있었어요. 그 어르신 정말 유명했고요. 조상님을 잘 모셔야 자녀들이 잘된다고 해서 풍수지리 보는 분들이 일반적으로 점치는 분들보다 더 시세가 높아요."]

심지어 후손들의 운수 대통을 기원하며 파묘, 즉 이장을 행하는 일도 빈번하다는데요.

[박현숙/2015년 탈북 : "북한에 이런 게 있거든요. 효자는 부모님이 사망해서 햇빛을 세 번 보이게 하는 게 정말 진정한 효자라 하거든요. 그러니까 묻고 세 번 이장하라 그 소리예요."]

엄연히 처벌 규정이 있는데도 민간신앙이 성행하는 이유는 워낙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 데다 고위 간부들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법관들도 유명하단 집은 자기들이 찾아가니까요. 찾아가서 올해 무슨 사업 하는데 무슨 일 없겠는가 내 가족이 괜찮겠는가 어떻게 하면 승진하겠는가 그런 거 두루 많이 물어봐요. 서로 어울려 살다 보니까 처벌할 수가 없어요."]

또 북한 당국이 금지하는 미신행위의 기준도 모호한 면이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북한에서 풍수는 미신이지만 주민 사상을 단속하는 북한 매체조차, '명당'이라는 풍수지리 용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조선중앙TV/6월 8일 :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께서 대동강 기슭의 명당 자리에 식당의 위치도 잡아주시고..."]

명당을 주제로 한 공연이 특집 무대에 오르기도 합니다.

[조선중앙TV/2016년 : "제목부터가 참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그럼 독연을 보시겠습니다. 명당 자리!"]

["산 좋고 물 맑은 삼천리금수강산이라 내 나라엔 명당 자리도 많습니다. 수도 평양시를 잠깐 둘러만 봐도 그 자리 자리 몽땅 명당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등장 자체가 불가능했던 귀신 역할도 최신 스릴러 영화에 투입되기도 합니다.

["왜? 내가 살아난 게 안 믿어져? 니들 세상 그냥 두고 죽을 수가 없어서 송장이 관 속에서 뛰쳐 일어났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혼령이라든가 영혼이라든가 이런 주제는 북한은 표현할 수 없는 주제였지만 (영화) '하루낮 하루밤' 같은 경우에도 굉장히 괴기스러운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엽기적인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요. 예전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지향했던 것보단 약간 흥미적인 요소들이 들어오는 경향도 있고요."]

그런데 북한의 민간신앙은 국가 경제 사정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1990년대 중반 극심한 경제난이 시작되면서 무속인을 찾는 주민 수도 크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우리가 뭘 해야 괜찮게 살 수 있을까. 옆집도 앞집도 다 굶어 죽어 가는데 우린 어떻게 하면 굶어 죽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한 몸부림이 점치는 거에 시작점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방토(액막이)하면 잘 된다. 그러면 올해 무사하다니까 그럼 우리도 한번 해봐야겠다 그렇게 하면서 의존하고 매달린 거 같아요."]

무속인을 찾는 이유도 시대별로 달라지고 있다는데요.

최근엔 탈북 시기와 성공 여부를 점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지난해 10월, 목선을 타고 동해로 귀순한 탈북민 역시 점을 본 후 탈북을 결심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김현옥/2023년 탈북 : "(신기 있는 사람이) 가면 될 거 같아. 왜? 무사히 도착하고 성공이라는 말이 나와.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언제? (하고 물으니) 23일 무사히 도착 이런 말과 숫자가 나오더란 말이에요. 걔가 그렇게 말할 때는 그건 되는 일이라고요."]

오랜 대북 제재와 코로나19로 더 팍팍해진 살림살이.

그럴수록 북한 주민들은 민간신앙에 의지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에 대해 북한 당국은 공개재판과 공개처형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사회 분위기를 다잡고 있습니다.

[김지선/2023년 탈북 : "신앙을 믿거나 종교를 믿으면 그건 처벌로 되고 두 번 걸리게 되면 총살까지 가능합니다. 법적으로 그렇게 포고가 떨어졌거든요."]

그러나 아무리 단속과 처벌을 강화한다 해도 민간신앙을 찾는 북한 주민들을 막을 수는 없을 거라는 분석입니다.

한반도의 민간신앙은 종교적 신념을 넘어 수천 년을 이어온 토속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또 인간의 불안으로부터 시작되는 종교 행위는 비단 북한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전통은 컴퓨터 시대가 됐고 AI 시대가 됐다고 해서 함부로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미래가 예측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될수록 사회가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종교와 속신은 같이 성행하거든요. 우리도 보면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운 종교들이 많이 번창하고 뭔가 믿으려고 하는 이런 의지. 본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들에 정성을 통해서 도움을 받으려는 요소들이 생겨나죠."]

지난해 8월부터 제한적으로 국경을 개방하기 시작해 중국, 러시아와의 교류를 재개한 북한.

하지만 주민 경제 상황은 여전히 녹록치 않은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북한에 불고 있는 영화 '파묘'의 인기에는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민간신앙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북한 주민들의 깊은 불안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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