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모를 의사-정부 치킨게임에 애타는 환자들
전북 전주에 사는 김아무개(65)씨는 2024년 6월 초 1차 의료기관에서 검진받던 중 폐 단층촬영(CT)에서 3㎝ 크기의 종양이 발견됐다. “모양이 좋지 않다. 대학병원으로 가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놀란 김씨는 전북대병원으로 갔지만 검진 예약을 잡을 수 없었다. 2024년 2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대해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병원을 떠난 뒤 장기화한 ‘의료 공백’ 때문이었다. 전북대병원은 “검사와 입원이 언제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언제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다”
병원의 태도에 절망한 김씨 가족들은 6월17일 한데 모여 검사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아 연락을 돌렸지만 쉽지 않았다. 이른바 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로 불리는 상급종합병원도 마찬가지였다. 분당서울대병원에 전화했더니 “전공의와 교수의 휴진으로 예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씨의 딸은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 폐에서 발견된 종양의 모양이 좋지 않다고 해서 온 가족이 병원을 알아보는데 진료 잡기가 쉽지 않아 너무 막막하다”며 “의료 공백의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환자 진료를 보지 않고 건강권을 보장하지 않는 의사와 정부 모두 무책임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2024년 2월 ‘의대 정원 증원’을 골자로 한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이 발표된 이후 시작된 의사-정부 갈등이 4개월을 넘어섰지만 수습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5월24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와 정부가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1509명 늘린 4567명 선발 방안을 확정하고 발표했으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의료 현장을 떠났던 전공의들은 복귀하지 않고 단체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 손과 발을 담당했던 전공의 공백이 장기화하자 지친 의대 교수들도 ‘단체행동’에 뛰어들었다.
6월6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6월17일부터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 필수 부서를 제외하고 무기한 전체휴진을 결의했다”고 발표했다. 병원 교수 967명 가운데 529명(54.7%)이 ‘진료 조정’에 참여했다. 비대위는 전공의 사직 이후 62.7%의 수술장 가동률이 33.5%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응급 환자 진료와 중환자 수술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수 집단휴진에 한산한 병원 접수창구
무기한 전체휴진 첫날인 6월17일 <한겨레21>이 찾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특히 외래진료 접수창구에 환자가 적었다. 일부 과에서 신규 환자 진료 접수는 아예 하지 않고, 기존에 예약 등을 통해 진료가 예정된 환자만 병원을 찾았기 때문이다. 보건당국과 서울대병원은 이날 하루 외래진료가 일주일 전에 견줘 27% 정도 줄었다고 파악했다.
강희경 비대위원장은 이날 서울의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이 곧 면허가 정지될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가 더는 이러한 정책을 견딜 수 없다고 교수들이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방재승 비대위 투쟁위원장은 “우리 교수들은 전공의와 의대생 편을 드는 게 아니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한국 의료가 붕괴하기 때문에 지난 3개월 동안 정부와 국민께 수없이 말씀드렸지만 정부는 국민이 귀를 닫게 하였고, 우리 의견을 묵살했다”며 “이대로 전공의와 의대생이 복귀하지 않고 의료가 붕괴하면 모든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의사들을 바라보는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다. 부산 연제구에 사는 암환자 ㄱ씨는 “애초 정부가 2천 명 증원에서 1500명으로 양보했지만 의사들의 요구는 끝이 없다”며 “국립대 의과대학 교수들이 환자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는 건 천륜을 저버리는 것이고 이기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건강연구소는 6월17일 논평을 내어 “국민 건강권을 생각해서 최선의 보건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라면, 이전에는 왜 가만히 있었나”라며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이 적절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내팽개치고 교수의 역할을 거부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여론이 악화하자 교수들은 애초 발표했던 ‘무기한’ 휴진을 ‘일주일’로 줄였다. 강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더는 ‘무기한’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일주일 뒤 (진료) 일정을 조절할 계획이 없다”며 “어떻게 우리가 무기한 휴진을 할 수 있겠나. 정부도 일주일 안에 무언가 대책을 내놓지 않겠나”라며 일보 후퇴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에 이어 세브란스병원이 6월27일부터, 서울아산병원이 7월4일부터 각각 일주일씩 교수들의 휴진을 예고하면서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는 중증질환자들은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장은 <한겨레21>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정부와 대학병원들은 비상체계를 가동해서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환자들이 체감하기엔 정상 진료의 30% 정도밖에 이뤄지지 않고 있고, 진료 거부·취소, 수술 무기한 연기가 잇따르고 있다”며 “중증질환 환자와 보호자가 느끼는 공포는 사형선고와 다름이 없다”고 토로했다.
총파업 선언한 의협의 복잡한 속내
“정부가 (대한의사협회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갈 것이다.”
6월1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열린 ‘의료농단 저지 전국의사 총궐기대회’ 연단에 오른 임현택 의협 회장은 △의대 정원 증원안 재논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쟁점 사안 수정·보완 △전공의·의대생 관련 행정명령·처분 소급 취소 등의 요구사항을 정부가 수용하지 않으면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외쳤다.
의협이 6월18일 하루 집단휴진을 하고 총궐기대회를 열겠다고 발표하자 정부는 전국 병·의원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진료를 거부할 경우 고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의료개혁에 강하게 반발하는 개원의들이 병원 문을 닫고 집회에 참석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이아무개(55)씨는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서를 보냈다고 하는데 뜯어보지 않고 그냥 병원 문 닫고 나왔다”며 “의약분업 이후 반복돼온 정부의 강압적인 의료개혁 논의에 너무 지쳤고 화가 난다”고 했다.
이날 집회 참석자는 이씨처럼 지역사회에서 병·의원을 운영하는 개원의와 4개월째 쉬고 있는 전공의, 의대생 학부모가 많았다. 경찰은 집회 인원이 1만2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했다. 의협은 4만∼5만 명이라고 추산했다.
정부는 의협과 의사단체들의 결집력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파악한 내용을 보면,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 3만6059곳 가운데 5379곳이 휴진에 동참해 휴진율은 14.9%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유행 중에 발표했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해 의협이 2020년 8월14일 휴진했던 32.6%의 절반 수준이었다.
의사들이 진료 현장을 지킨 데는 의료소비자들의 집단행동 영향도 컸다. 의협이 6월18일 집단행동을 예고하자 각 지역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진료를 거부하고, 집회에 참석하는 병원을 파악해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의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메디게이트’에는 “병원 문을 닫고 집회에 가고 싶지만, 내원 환자들이 줄까 걱정된다”거나 “이미 의대 증원이 확정됐는데, 의협의 단체행동이 때늦은 것 같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의협과 전공의 단체 대표가 갈등을 겪기도 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은 6월1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임현택 대표가 제안한) 범의료계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고, 범의료계 협의체를 구성하더라도 대전협은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지속해서 표명했다”며 “전일 발표한 무기한 휴진 역시 의협 대의원회 및 시도의사회와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임 회장은 조금 더 신중하게 하길 바란다”고 했다. 정부에 대한 요구사항을 놓고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한 대전협이 의협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지역 의사회도 의협 집행부와 선을 긋고 나섰다. 이동욱 경기도 의사회장은 6월19일 의견문을 내어 “27일 무기한 휴진이라는 발표를 (지난 18일) 집회 현장에서 갑자기 듣고 당황스럽게 해서 대단히 죄송하다”며 “회원들이 황당해하고 우려하는 건 임 회장의 의사 결정의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적절성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명분과 응집력을 모두 놓친 의협이 강경투쟁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전직 의협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21>에 “임현택 대표가 선거 과정에서 전공의 사태 해결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기 때문에 총력을 기울이려 하지만 매끄럽게 잘되지 않는 것 같다”며 “신임 지도부이다보니 의협 내부를 제대로 장악하지도 못했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온다”고 귀띔했다.
정부와 의사단체가 법적 대응을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싸우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환자와 시민들은 착잡한 마음뿐이다. 그 어느 쪽에도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작금의 논란 가운데 시민의 건강권을 어떻게 보장할지, 공공보건의료를 어떻게 강화할지에 대한 논의가 보이지 않아서다.
의-정 갈등과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방안에는 늘어나는 의대생을 어떻게 필수의료 등 공공의료 증진에 기여하게 할지 구체적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 애초 2천 명 증원 계획에서 지역의료를 담당할 거점 국립대 의대의 정원 증원이 500명 가까이 줄어든 것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언제 현장에서 일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의대 정원 1500명을 늘리기 위해 7천여 명의 전공의를 내보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블랙홀 된 의대 증원, 공공성 명분은 어디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6월17일 성명문을 내 “정부는 우리 사회의 ‘필수의료’ 공백, 지역 격차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의사 2천 명 증원이 의료개혁이라 주장하고 이를 강행하지만 의사 숫자만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필요에 따른 적정 의료 공급이라는 원칙을 지킬 수 있는 공공의료가 중심이 될 때 오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의료 공백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의-정의 자기 파괴적인 대치가 언제 끝날지 내다보기 어렵다는 사실은 특히 절망적이다. 4·10 총선 이후 지지율이 20%대 초반을 맴돌고 있는 윤석열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을 정치적 치적으로 여기며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시민의 건강 위기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모습이다. 정형준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2020년 8월 문재인 정부가 의대 정원 400명을 늘리려다 의사 단체의 반발에 부딪히고 의-정 합의를 통해 증원을 포기했던 것은 환자의 생명이 걸린 문제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나, 윤석열 정부는 전혀 이런 감수성이 없다”며 “이 상태가 계속되면 정책의 정치적 효과도 감소하고, 의사단체의 주장에 찬성하지 않는 시민들도 정부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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