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에게 배신당한 호모 사피엔스 [물리학자 김상욱의 ‘격물치지’]

김상욱 2024. 6. 2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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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원래 의자에 앉아 생활하지 않았다. 자연을 둘러봐도 의자에 앉아 살아가는 동물은 없다. 의자는 권력을 상징하는 도구로 출발했다. 현대의 ‘의자 문명’은 이대로 괜찮을까.
20세기에 사무직이 늘어나며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일하는 일과가 자리 잡았다.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 건물. ⓒ시사IN 조남진

지금 나는 의자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탁 의자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자동차 의자에 앉아 운전하거나, (자리가 있다면) 지하철이나 버스 의자에 앉아 이동하고, 사무실 의자에서 하루를 보낸다. 집에서도 소파라는 의자에 앉는다. 사실 외출은 새로운 의자를 찾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화관, 카페는 말할 것도 없고 회의나 세미나를 가도 의자에 앉는다. 직장에서 내가 앉는 의자를 없애는 것은 나의 존재를 없애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의자에서 보낸다. 이 세상에는 인간보다 의자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의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드라마 〈왕좌의 게임〉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 필적하는 거대한 스케일과 적나라한 묘사, 빠져드는 스토리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왕좌를 놓고 벌이는 갈등과 음모, 살육으로 점철된 드라마다. 왕좌란 왕이 앉는 의자다. 이럴 때 의자는 권력을 상징한다. 원래 의자는 편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권력을 상징하는 도구였다.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의자는 기원전 7000~5000년, 그러니까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튀르키예의 차탈회위크 유적에서 의자에 앉은 여성의 조각이 발견되었다. 이 여성은 양옆에 동물을 거느리고 당당하게 앉아 있다. 아마도 여신이거나 권력자로 추정된다.

이집트의 아부심벨 신전. 람세스 2세가 앉아 있는 의자는 안락함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Wikipedia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도 의자에 앉았다. 그 의자는 직각으로 되어 있어 아무리 봐도 안락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다른 이들이 모두 서 있거나 엎드려 있을 때, 앉는 것은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중세 유럽에서도 의자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귀족 집안에서 가장이 앉는 의자는 다른 가족의 의자보다 크고 화려했다. 키를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의자 등받이는 등 뒤에서 공격하는 것을 막아주는 용도도 있었을 것이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풍속화를 보면 농민들은 대개 등받이가 없는 긴 의자에 여러 명이 함께 앉았다.

르네상스와 시민혁명을 거치며 서양에서 의자는 점차 민주화되었다. 이제 누구나 권력의 상징인 등받이 있는 의자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더구나 물품의 대량 공급을 가능케 한 산업혁명은 의자 보급도 가속화했다.

우리 몸은 걷기 좋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인간은 원래 의자에 앉아 생활하지 않았다. 자연을 둘러봐도 의자에 앉아 살아가는 동물은 없다. 우리 조상들도 주로 바닥에 주저앉아 생활했다. 19세기 인도, 조선, 일본을 방문한 서양인의 눈에는 땅바닥에 쪼그려 앉은 동양인이 불편해 보였겠지만, 당시의 동양인에게는 가장 편안한 자세였다. 동아시아에서는 특이하게 중국인들이 12세기 이후부터 주로 의자 생활을 했다.

초기의 호모 사피엔스는 몸집이 작고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도 없었으며 대부분의 네발 동물에 비해 빨리 달리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들은 특별한 사냥꾼이었다. 초기 인류의 활은 한 방에 동물을 쓰러뜨리지는 못해도 피를 흘리게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은 피 흘리는 사냥감이 쓰러질 때까지 따라가는 끈질긴 사냥꾼이었던 것 같다. 일명 ‘지구력 사냥’이다. 즉, 우리의 몸은 장시간 걷기에 유리하도록 진화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의 발은 침팬지와 달리 엄지발가락이 다른 발가락과 함께 앞으로 뻗어 있다. 참고로 엄지손가락은 옆을 향하고 있어 물건을 쥘 수 있지만, 모두 앞을 향한 발가락으로 물건을 쥘 수는 없다. 또한 발바닥이 아치 형태로 중앙이 움푹 들어가 있다. 우선 직립보행으로 몸무게를 두 발로 모두 떠받치기 위해서 견고한 아치 형태가 필요하다. 또한 걸을 때 먼저 발뒤꿈치가 닿고 발가락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할 때, 나란히 뻗은 발가락에 힘을 주어 아치의 반동으로 추가적인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침팬지나 고릴라도 직립할 수 있지만 걷는 모습을 보면 어기적거리며 뒤뚱거린다. 이들의 다리는 허벅지뼈와 종아리뼈가 일직선으로 만난다. 하지만 인간은 허벅지뼈가 몸 중앙으로 비스듬하게 내려가 종아리뼈와 만나 브이(V)자 형태가 된다. 그래서 안정되고 우아하게 걸을 수 있다. 우리 몸은 걷기 좋게 만들어졌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장시간 사냥감을 추격하려면 몸의 냉각 시스템이 좋아야 한다. 직립하면 네발 동물보다 흡수하는 햇빛 양이 30%로 줄어든다. 인간은 털이 없고, 땀을 흘려 열을 발산하는 뛰어난 체온 유지 시스템이 있다. 초기 인류는 사냥감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따라다녔을 것이란 뜻이다. 선사시대 네발 동물에게 인간은 정말 성가시고 악착같은 사냥꾼이었으리라. 결국 초기 인류는 끝없이 움직이는 존재였다. 이렇게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 북극과 남극까지 걸어서 세계를 정복하게 된다. 사람 ‘인(人)’은 두 발로 걷는 인간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 아니었을까?

빙하기였던 후기 구석기시대에 신발과 같은 것이 나타났다. 신발은 발을 보호해주지만 발바닥의 아치를 무너뜨려 평발로 만든다. 1만2000년 전 농업혁명이 시작되자 이제 인간은 이동하기보다 정착하여 살게 된다. 농경이 시작되고 몇천 년 동안 인간의 몸은 쪼그라들었고 골밀도도 낮아졌다. 사람의 근육과 뼈는 살아 있는 조직이어서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진다. 인간의 평균 키는 19세기 후반에 다시 커지기 시작해서 현대에 와서야 급속도로 커졌다.

산업혁명은 인간의 몸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 이제 인간은 기계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대부분 기계는 무거워서 움직이기 힘들었으므로 인간이 기계 옆에 달라붙어 함께 작업을 해야 했다. 즉, 의자에 앉아 단순 작업을 반복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20세기가 되면 사무직 노동이 늘어나며 많은 사람이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몸은 사냥감을 쫓아 며칠이고 뛰어다니도록 진화했다. 근육과 뼈는 움직여야 건강하게 유지된다. 현대의 의자 문명은 우리 몸에 근본적으로 해로운 것인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 ‘농가의 혼례’. 농민들이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다. ⓒWikipedia

19세기에 요통 급격히 증가해

인간의 몸은 의자에 앉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걸까? 바이바 크레건리드의 〈의자의 배신〉에 따르면 우리가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19세기 서양에서 시작된 공교육의 주된 목표 중 하나는 학생들이 복종의 자세를 갖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따라서 혹독한 체벌은 일상이었다.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교사가 학생을 때려죽이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을 정도다. 당시 급속히 보급되고 있던 의자에 학생들이 장시간 앉아 있도록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인간의 몸은 의자에 앉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은 견디기 힘들었겠지만,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가혹한 체벌을 받아야 했다. 결국 학생들은 장시간 의자에 앉아 있는 법을 배우게 된다. 지금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아닐까?

원래 우리 몸이 의자에 앉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의자에 오래 앉아 있어도 문제는 없는 걸까? 과거에는 드물었으나 19세기부터 급격히 늘어난 질병이 있다. 요통, 디스크(추간판 탈출증)와 같은 척추질환이다. 과거의 문학작품에서 요통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또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와 〈성서〉에 의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19세기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에는 의자가 무려 187번 등장한다. 2022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척추질환 환자는 1131만명, 전체 국민의 무려 22%다.

우리는 척추질환과 관련하여 잘못된 자세가 문제라고 종종 이야기한다. 좋은 자세란 무엇일까? 허리를 곧게 펴고 턱을 당기고 정면을 응시하는 자세? 우리 몸은 움직이도록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자세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닐까? 즉,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좋은 자세란 원래부터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화심리학은 현대인의 머릿속에 석기시대 수렵채집인의 마음이 들어 있다고 가정한다. 옷을 차려입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커피를 마시며 예술을 이야기하지만, 현대인의 무의식에는 들판을 뛰어다니며 동물을 사냥하고 이웃 부족을 약탈하던 원시의 마음이 들었다는 뜻이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비판도 많지만, 종종 인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주기도 한다. 의자 이야기는 진화심리학의 육체 버전이라 할 만하다. 현대인은 수렵채집인의 마음뿐 아니라 온종일 움직이던 몸을 가진 존재다. 지금 우리는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보고 이동할 때에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만, 원래 우리는 종일 걷고 뛰다가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쉬도록 진화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신석기시대부터 존재한 의자는 편안함보다는 권력을 상징하는 도구로 만들어졌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양에서는 점차 모두가 권력의 상징인 의자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가내수공업과 산업혁명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 기계와 함께 일하게 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사무실에서 종일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의자는 우리 몸에 좋은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몸은 원래 장시간 걷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이 글을 쓰느라 의자에 앉아 있다.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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