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얼마를 정할 수 없는 사랑이라도 [임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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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에는 보통 '영원히' 같은 말이 어울린다고 여긴다.
근원적인 슬픔에 압도되는 대신, 애써 거기에 '사랑의 단어'를 붙여본다.
그 사랑스러움이 어떤 모습인지 알릴 수 있게 됐다.
뒤집혀 버둥거리는 매미가 마음 아파서 살며시 잡아 살려주는 하루가 될 수도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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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에는 보통 ‘영원히’ 같은 말이 어울린다고 여긴다. 활활 타는 걸 증명해야만, 영속적이고 변함없으며 한결같아야만 사랑이란 단어를 쓰도록 허용받을 듯한. 그게 맞을까. 예를 들어,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가 이리 서약한다면 어떨까.
“저 ○○○은 신랑(신부) ○○○을 ‘임시로’ 사랑하겠습니다.”
‘임시’의 사전적 의미는 ‘미리 얼마 동안으로 정하지 아니한 잠시 동안’이다. 잠시라는 명확한 시간의 한계.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으나, 길지는 않을 거란 느낌. 영원에 대한 염원마저 빼앗는 말이라 마음에 품고 살지는 않았다.
이상하게도 마흔 해를 넘기며 그 말이 애틋해지고 있다. 모두가 ‘임시의 존재’란 걸 긍정할 수밖에 없던 경험 탓이다. 공 던져달라며 귀찮게 굴던 반려견 아롱이의 걸음이 느려지더니 잠이 많아졌을 때. 그마저도 못 이뤄 빙빙 돌며 아파하다 딱딱하게 굳어져 오열했을 때. 할머니 댁에 가보라던 엄마의 권유에 투덜거리며 꾸역꾸역 일주일 만에 다시 갔을 때, 코끝에 숨이 사라진 걸 손으로 직접 느꼈던 날.
근원적인 슬픔에 압도되는 대신, 애써 거기에 ‘사랑의 단어’를 붙여본다. 그 순간 열리는 가능성이 있었다.
버려진 두 살 강아지 호밀이는 지난해 12월20일 죽을 운명이었다.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주어진 시간은 열흘. 공고 기한이 지나면 안락사 대상이 된다. 입양해달라고 예쁜 옷 입고 사진도 찍었으나 가족으로 맞아주겠단 이가 없었다.
제 앞가림도 못한다고 여겨 입양은 꿈도 못 꾸던 사람이 있었다. 홀로 살며 저녁에 퇴근하기에 반려는 사치라 여겼던 사람, 이영민씨가 그 대신 결심한 건 임시로 보호하는 일이었다. 잠깐 좋은 가족을 만날 때까지만. 그 덕분에 호밀이는 추운 겨울을 넘겨 봄을 맞이했다. 영민씨는 함께 살면서 호밀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알게 됐다. 그 사랑스러움이 어떤 모습인지 알릴 수 있게 됐다. 그걸 보고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집에 처음 온 날, 불안해서 자꾸 만져달라 했던 호밀이는 손으로 만져주면 행복해했다. 영민씨가 집에 올 무렵이면 자다가도 앉아서 기다리던 호밀이의 모습을 홈캠으로 보며 영민씨는 퇴근길 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하루를 거의 다 잃고 만난 현관문에서 호밀이가 점프하고 영민씨가 부둥켜안던 순간들. 그때 느꼈을 거다. 바라던 영원에 가까워지는 건, 임시의 존재가 가진 길고 짧은 시간을 촘촘히 잇는 일뿐이란 사실.
여름이 뜨겁고 축축해서 싫을 때, 여름까지만 임시로 산다고 상상한다. 그럴 때면 장맛비가 세차게 우산 아래로 퍼부어 온몸이 젖는 순간에도, 더욱 짙어진 푸른 잎마저 눈에 부단히 담게 된다. 뒤집혀 버둥거리는 매미가 마음 아파서 살며시 잡아 살려주는 하루가 될 수도 있을 테다. “사람은 매일 오늘을 잃고, 영원은 얻지 못한다. (중략) 어딘가에 나의 메아리가 있다. 내가 혼자라고 해도, 나의 시간에 동반하는 당신의 시간이 있다. 우리는 같은 영원 속에 산다(한정원 〈시와 산책〉 중 ‘시간의 흐름’).”
남형도 (<머니투데이>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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