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렘브란트가 그린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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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이건, 지인이든, 사람은 사람을 만날 때 눈부터 본다.
이들 중 렘브란트 반 라인(1606~1669)만큼 눈을 치밀하게 표현한 화가는 드물다.
렘브란트는 그림을 수정하면서 얼굴 각도보다는 눈빛을 통해 그녀 고민을 강조한 것이다.
그녀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결하는 순간을 그린 그림(1664)에서도 렘브란트는 눈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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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낯선 사람이건, 지인이든, 사람은 사람을 만날 때 눈부터 본다. 눈만큼 심리 상태나 건강, 현재 감정을 담고 있는 건 없다.
서양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시한 부분도 눈이었다. 눈의 표현은 작품 성패를 결정짓는 열쇠였다.
이들 중 렘브란트 반 라인(1606~1669)만큼 눈을 치밀하게 표현한 화가는 드물다. 그의 작품 중 '호메로스 흉상을 응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1653)부터 보자.
고대 철학자라기보다 현실 세계 어떤 사람 같다. 진리를 탐구하는 듯한 진지한 태도가 돋보이는 이유는 눈과 눈썹 사이에 묘사한 묘한 음영 덕분이다. 손으로 만지는 흉상은 물질세계를 상징하며, 눈은 정신세계를 드러낸다.
성경 속 여인 밧세바는 다윗 왕이 한눈에 반한 우리야 장군 부인이었다. 장군이 없는 틈을 타 다윗은 밧세바에게 유혹의 편지를 보낸다. 그 장면을 그린 '목욕하는 밧세바'(1654)다.
하녀로부터 편지를 전달받은 밧세바의 눈은 권력을 택할지, 정절을 택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진 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X선으로 살펴본 그림 원본이다. 원래 그림엔 밧세바가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렘브란트는 그림을 수정하면서 얼굴 각도보다는 눈빛을 통해 그녀 고민을 강조한 것이다.
수없이 많이 그려진 예수 그리스도 얼굴 중 렘브란트 그림(1648)만큼 시선이 오래 머무는 작품도 없다.
머리나 수염 스타일은 전통 도상이다. 살짝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얼굴이다. 눈에 관심이 집중된다. 앞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깊은 눈길에서 '인류의 죄를 짊어진 고뇌'를 오도카니 읽을 수 있다.
루크레치아는 고대 로마 귀족의 딸이었다. 왕정 시절 마지막 왕이었던 타르퀴니우스의 아들 섹스투스에게 겁탈당한 후 자결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로마는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전환한다.
그녀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결하는 순간을 그린 그림(1664)에서도 렘브란트는 눈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칼을 든 긴박한 동작도 연극 클라이맥스처럼 보이지만, 가장 오래 시선을 장악하는 부분은 눈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혹한 운명을 집약시킨 눈이다.
렘브란트는 서양화가 역사상 자화상을 가장 많이 그린 화가다. 그가 그린 눈은 그림마다 다른 빛을 띠고 있다. 자긍, 지성, 비통, 행복, 몰락, 초연 등을 표현했다. 자화상마다 그의 눈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상황을 자랑하거나 한탄하는 독백이 들리는 듯하다.
전설적인 영국 현대 미술 평론가, 케네스 클라크(1903~1983)는 그의 명저 '그림을 본다는 것', 렘브란트 편에서 '두 개 원이 있는 자화상'(1665)을 해설하며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다.
"렘브란트의 딸기코가 나를 꾸짖는다. 그러고는 문득 깨닫는다. 내 도덕률은 얼마나 부박한가. 게다가 옹졸하기 그지없는 소갈머리에, 미술사가라는 일은 또 얼마나 하찮은지. 렘브란트라는 위대하면서도 겸손한 천재는 이 미술사가에게 이렇게 경고하는 듯하다. "그 입 다물라""
렘브란트가 그린 눈은 보는 일을 하는 눈, 훨씬 그 이상이다. 주시와 응시를 넘어 심연을 보는, 영혼을 헤집는 눈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그르니에(1898~1971)가 렘브란트에 대해 평한 글이 깊게 와닿는다.
"정열의 소용돌이가 절정에 이르면 침묵이 찾아온다. 그 침묵은 소리나 감동의 부재가 아니다. 이를 완전히 표현할 줄 알았던 화가는 렘브란트뿐이었다"
풍요함에서 비참함으로 추락했던 렘브란트 삶을 상기하면 퍼즐 맞추듯이 들어맞는 명문이다. 그가 작품마다 그린 눈엔 세상을 직시하려는 정열이 숨어 있다. 아니, 스스로를 꿰뚫어 보려는 열정의 눈이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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