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가 있어서 타자가 없으면 [주말을 여는 시]
이영주 시인의 ‘녹은 이후’
다 지워낼 수 없는 마음의 앙금
타자가 있기에 생기는 갈등
타자가 있어야 생기는 주체
녹은 이후
눈사람이 녹고 있다
눈사람은 내색하지 않는다
죽어가는 부분은
에스키모인은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막대기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선다고 한다
마음이 녹아 없어질 때까지
걷는다고 한다
마지막 부분이 사라질 때까지
그들은 막대기를 꽂고 돌아온다고 하는데
그렇게 알 수 없는 곳에 도달해서
투명하게 되어 돌아온다고 하는데
나는 어디로 간 것입니까
왜 돌아오질 않죠
불 꺼진 방 안에서 바닥에 이마를 대고
얼음처럼 기다렸는데
누군가 돌아올까 봐
창문을 열어 두고 갔는데
햇빛 아래
죽어가는 부분이 남아서
흘러가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발밑으로
엉망인 바닥으로
형태가 무너지는 눈사람
이렇게 귀향이 어려울 줄은 몰랐는데
흰 눈으로 사람을 만들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런 걸 봄이라고 한다면
이영주
· 2000년 문학동네 신인상 시 부문 데뷔
· 시집 「여름만 있는 계절에 네가 왔다」
· 동인 '불편' 활동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문학과 지성사, 2019.
인유引喩는 수사법 중의 하나다. 글쓴이가 자기의 생각을 좀 더 명징하게 혹은 생생하게 펼치기 위해 옛사람들의 고사성어 또는 격언이나 속담, 명언, 역사적인 사건, 신화 등을 인용해 뜻을 강조하는 표현법이다.
시에서는 주로 화자가 표현하려는 시적 정황과 빗대어서 비유의 형식으로 많이 사용한다. 이영주 시인의 '녹은 이후'도 인유의 형식을 활용했다. 에스키모인들이 가진 특별한 관습을 인용해 화자와 눈사람이 가진 상황을 도드라지게 표현했다.
에스키모인은 분노가 밀려올 때나 심란할 때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마음의 앙금이 풀릴 때까지 걷다가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면 그때 되돌아선다고 한다. 되돌아설 때 돌아선 바로 그 지점에 막대기를 꽂아둔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순간 또다시 마음의 앙금이 생기면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때 이전에 꽂아둔 막대기를 발견하면(앙금이 지난번에 걸었던 거리만큼 풀리지 않았으니까) '요즘 살기가 이전에 비해 더 어려워졌네'라고 여기고, 그 막대기를 볼 수 없으면(지난번보다 훨씬 빨리 앙금이 사라졌으니까) '그래도 삶은 견딜 만하네'라고 여긴다고 한다.[※참고: 김정운 「노는 만큼 성공한다」.]
이런 에스키모인들의 관습은 자신의 마음속 앙금을 타자나 외부 요소를 통해 풀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수행하듯 자기 자신의 성찰을 통해 투명하게 잠재우려는 지혜에서 나온 방법이다.
시 속 화자는 에스키모인의 방식대로 '나'가 떠나서 투명해진 후 되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불 꺼진 방 안에서 바닥에 이마를 대고/ 얼음처럼" 기다리고 있는 눈사람을 위해 꼭 되돌아올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귀향이 어려울 줄" 몰랐던 것이다. 우리네 삶이라는 게 그렇다. 앙금을 다 없애고 마음의 티끌을 하나도 없게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 '나 앙금이 하나도 없어'라고 말할 때 그 사람의 마음속에 진짜로 100% 앙금의 찌꺼기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단 몇 퍼센트라도 남아있게 된다. 그래야 솔직한 태도다. 단 몇 퍼센트가 남아있기에 시 속 '나'는 지금도 걷고 또 걷는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혼자 남은 눈사람은 햇빛 아래 흘러내리면서 죽어간다. 그런데 내색하지 않는다. 형태가 완전히 무너지더라도 기다림의 자세를 유지한 채 원망도 하지 않고 '나'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화자인 '나'가 되돌아오는 이유는 투명해진 마음을 눈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서다.
그렇게 기다리는 대상이 없다면 투명한 마음이 생기더라고 화자는 돌아올 필요가 없다. 왜 보여주고 싶은 걸까. 눈사람과의 불화로 인해 앙금이 생겼다면 앙금이 없는 상태로 타자를 대하려고 돌아올 수도 있고, 순수하게 눈사람을 지켜주고 싶어서 돌아올 수도 있다. 어찌 됐든 화자의 마음은 끊임없이 눈사람에 닿아있다.
우리는 여기서 에스키모인들의 관습을 뛰어넘는 시인의 특별한 마음과 조우한다. 100% 완벽하게 투명한 상태가 되려는 마음이 다름 아닌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자와 더불어 투명해지려는 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렇다. 살면서 앙금이 생기는 것은 모두 타자 때문이다. 타자가 있기에 갈등이 생기고 욕망이 생기고 상처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타자가 없으면 주체는 존재의 이유를 갖지 못한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존재론적인 의미를 획득하려면 타자가 필요하고, 타자와 더불어 살면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과오를 범한다.
그러기에 이영주 시인이 '녹은 이후'를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암시는 의미심장하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눈사람은 녹으면(죽으면) 형태를 바꿔서 살아간다. 완전히 없어지는 게 아니다. 그러니 완벽하게 투명해져서 언젠가 돌아오면 타자를 기필코 만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인은 "봄이라고 한다면"이란 말을 통해 그런 관계 양상에서 비롯된 기다림과 의미를 열린 해석으로 남겨 놓았다.
하린 시인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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