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지역 떠날 수 없어”…풀뿌리단체 ‘원만네 사람들’
“이번에 독립 영화 하나 개봉했는데 보러 갈래?”라는 질문에 영화에 꽤나 관심 있는 이가 아니라면 선뜻 “그래”라고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질문을 바꿔, “이번에 영화가 하나 나왔는데 우리 동네에서 찍었다고 하네?”라고 하면 어떨까. 아마 상대방은 조금 더 귀를 쫑긋거리고 관심을 가질 것이다.
우리 동네 영화 관객 1만 명 동원을 목표로 똘똘 뭉친 이들이 있다. 수원지역의 문화예술계 시민들이 모인 비영리 단체 ‘원만네’ 이야기다.
원만네의 출발은 장편 독립영화 ‘원 안에 사람들’로부터 시작됐다. 수원에서 20여 년간 활동해 온 독립영화 제작소 ‘창빛 프로덕션’의 대표 임철빈 감독(54)은 4년 전 자신의 터전인 수원을 기반으로 한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대학 시절부터 오래도록 영화를 만들어온 그는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 멤버로 현재는 협회 중앙운영위원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독립영화가 그렇듯 임 감독 역시 영화를 이끌어가는 데 현실적인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오래도록 함께 수원에서 활동했던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계 동료들이 뜻을 모았다.
“독립영화를 만들고 나면 특히 배급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독립영화가 매년 만들어지지만 80~90%는 관객들의 눈에 들지 못하고, 아무리 내용이 좋다 한들 사장되는 것들이 많죠.”
임 감독은 동료들과 머리를 맞댔다. “콘텐츠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역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동네 이야기, 내 옆의 이웃이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니까요.”
그렇게 ‘원안에 사람들 만 명 관람을 추진하는 네트워크’라는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원 안에 사람들’이라는 영화의 1만 명 관객 동원을 위해 수원의 문화예술인들이 뭉친 것이다. 1만 명은 독립영화계에서 흥행으로 분류되는 마의 고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 한다.
운영 방식은 이러하다. 시민들의 후원 속 내 지역, 내 이웃의 이야기를 가진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통해 의미 있는 예술인, 작품이 사장되지 않도록 선순환의 문화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보통의 영화가 배급사를 통해 전국에서 일괄적으로 상영되는데, 이러한 시스템은 일반 대중의 관심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먼저 지역에서 지역민들을 상대로 한 개봉을 하고, 이후 배급사를 통해 전국 배급이 이뤄진다.
임 감독은 콘텐츠에 있어 지역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특히 독립영화는 인간의 본성이나 사람과의 관계를 다루는 ‘사람 사는 이야기’인데 이는 특정한 지역의 색깔을 함께 담아낼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난다”고 역설했다.
올 10월 이후 수원지역 내 첫 개봉을 앞둔 영화 ‘원 안에 사람들’은 그의 말처럼 지역성을 한껏 품었다. 영화는 동쪽의 창룡문, 서쪽의 화서문, 남쪽의 팔달문, 북쪽의 장안문으로 화성 성곽 안에 동그란 형태의 수원화성 마을을 탈춤의 원형 마당 무대처럼 활용했다.
수원화성 내 사찰, 교회, 신당 등 독특한 분위기의 종교시설과 풍물, 조선무예24기 등 전통문화를 적극 활용해 주인공이자 저승에 가지 못하고 떠도는 진철이 사대문을 각각 탄생-성장-성숙-죽음의 의미로 한 바퀴 통과하며 원 안에 벌어지는 한바탕 푸닥거리를 다뤘다.
‘원 안에 사람들’이라는 콘텐츠 하나로 출발한 프로젝트 ‘원만네’는 영화의 개봉과 함께 종료될 예정이다. 하지만 또다른 예술가와 지역민들이 ‘원만네’의 정신을 이어가고, 원만네는 언제든 다양한 형태의 문화 플랫폼으로 활용될 수 있다. 임 감독은 타지역에서도 제2, 제3의 원만네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말한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창작자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특히 젊은 예술인들의 경우 경제적 현실 속에 꿈을 접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원만네를 통해 시민과 예술인들이 ‘지역’에 초점을 맞춰 풀뿌리 상향식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여러 지역에서 영화, 전시, 공연, 음악 등에 관한 괜찮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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