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사람들] ① 'DMZ 유일마을' 대성동 오가는 93번 버스 기사

노승혁 2024. 6. 22.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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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째 핸들 잡은 유호선 씨 "난 운전기사 겸 어르신들의 일꾼"
"어르신들 며칠만 안 보여도 무슨 일 생겼는지 걱정"

[※ 편집자 주 = 비무장지대(DMZ) 남쪽에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이 설정된 지 올해로 70년이 됐습니다. 민통선을 넘는 것은 군사적인 목적에서 엄격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민통선을 넘나들며 생활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기획 기사 10꼭지를 매주 토요일 송고합니다.]

(파주=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버스를 이용하시는 어르신들이 며칠만 안 보여도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걱정이 됩니다."

신일여객 93번 유호선 기사 [촬영 임병식]

경기 파주시 문산읍과 비무장지대(DMZ) 내 유일 마을인 대성동을 오가는 유일한 대중교통은 신일여객 93번 버스다.

이 버스를 몰고 하루 세 번 민통선을 넘나드는 유호선(61) 기사는 지난 2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여느 버스 기사와는 구별되는 경험과 감정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가 처음 93번 버스를 몰고 대성동을 간 것은 2006년. 유 씨는 첫 운행 때의 긴장감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통일대교를 지나니까 JSA 대대 앞에서 검문이 있었어요. 버스 앞에는 무장 차량이 서 있고, 소총을 둘러멘 병사가 버스에 올라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하는 데, 겁부터 덜컥 났어요"

이후 약 보름 동안은 이런 과정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지금도 JSA 대대부터 대성동 마을까지는 무장 군인의 호위를 받으면서 운행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적응돼서 오히려 편안함까지 느낀다.

93번 버스 이용객은 18년 사이에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하루 10여명이었던 승객이 지금은 적게는 세 명, 많게는 5명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DMZ 유일 대성동마을 버스 정류장 [유호선 기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승객은 대부분 65세를 넘긴 어르신들이라고 한다. 젊은 사람은 대부분 객지 생활을 하느라 마을을 떠났고 나이 든 사람들만 마을을 지키고 있는 현실을 알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유 씨는 "버스를 이용하시는 어르신들은 허리나 다리가 불편해 문산에서 병원 치료를 받거나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는 분들"이라며 "1주일에 적어도 두세번은 버스를 타는 단골들"이라고 소개했다.

승객들이 고령자인 데다 몸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 보니 유씨의 역할은 버스 기사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정류장이 아닌 병원 앞이나 재래시장 입구 앞에 정차해 조금이라도 덜 걷게 편의를 봐 드리는가 하면, 승차를 돕기 위해 차에서 내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장바구니가 무거워 보이면 직접 들어주기도 한다. "운전기사 겸 어르신들의 일꾼"인 셈이다.

유 씨는 어르신들이 문산에 내릴 때 귀가 교통편을 꼭 물어본다. 문산에 거주하는 자녀의 자가용으로 가지 않는 경우 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귀가할 때 버스를 타겠다고 한 어르신이 정류장에 안 계시면 이 어르신이 계실만한 곳을 찾아 다닌다고 한다.

대성동마을은 매일 오후 7시가 되면 육군 민정 경찰이 가구별 인원을 점검하고 자정부터 이튿날 5시까지는 통행이 금지되기 때문에 제때 귀가하지 못하면 곤란해진다.

유 씨는 "그분들은 제가 모시고 가지 않으면 마을로 들어가시질 못하니까 꼭 찾아야 한다"며 자신이 어떨 때는 버스 기사가 아니라 택시 기사 같다며 웃었다.

펄럭이는 대성동마을 태극기와 북한 인공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유 씨는 이렇게 어르신들과 가깝게 지내다 보니 한분 한분의 동정을 훤하게 알고 있다.

사흘 이상 보이지 않는 어르신이 있을 경우 다른 어르신들에게 물어본다. 유 씨는 "(어르신들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이 아주 무겁다"고 했다.

베테랑 버스 기사지만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리면 운전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어렵다고 했다. 운행 차량이 적다 보니 눈이 곧바로 쌓이는데 특히 밤이나 새벽에 눈이 내릴 경우 장병들의 제설작업도 이뤄지지 않아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야생 동물 때문에 급브레이크를 밟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겨울철에는 일출은 늦고 일몰은 빠른데 비무장지대이다 보니 멧돼지와 고라니 등 야생동물이 많다"며 "100㎏이 넘는 멧돼지와 부딪혀 차량이 심하게 파손돼 운행이 힘들 때도 있다"고 전했다.

북한과 가깝다는 이유로 생활의 통제를 받는 대성동 어르신들. 이들의 발이 된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는 유 씨는 "태풍이 오거나 폭설이 내려도 어르신들을 위해 묵묵히 운행하겠다"고 말했다.

n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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