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취재썰] 이혼 아픔 20억, 딸 잃은 엄마 재판 노쇼 5천만원...위로 안되는 '위자료'

여도현 기자 2024. 6. 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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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산분할 놓고 끊이지 않는 공방



이혼 항소심 재판에 출석하는 SK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세기의 이혼이라 불렸던 SK 최태원 회장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2심 재판이 지난달 말에 끝났는데 보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뜨겁습니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공방이 아니라 최 회장과 재판부의 공방 때문입니다. 1조 3808억원 재산분할 판결 후 웃으며 법정을 나선 노 관장 측 변호인들과 달리 SK 측 변호인들은 밤낮없이 이를 뒤집을 대책을 마련 해야 했는데요. 결론적으로 판결문의 계산 오류를 찾아냈고 재산 분할도 틀렸다고 주장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경정하고 이례적으로 설명자료까지 내며 1조 3808억원 재산 분할 결론은 변함 없다 반박했는데요. 역대급 재산 분할인만큼 대법원에서 어떻게 달라질지 모두 집중하고 있습니다.

#재판부가 골고루 헤아린 노소영의 고통, 위자료 20억



사실 역대급인건 재산분할 액수만은 아닙니다. 위자료 20억은 이혼 재판뿐만 아니라 모든 재판을 통틀어 유례없습니다. 이런 액수를 산정한 이유, 재판부는 선고 시작부터 6분 넘게 설명하며 노소영의 정신적 고통을 골고루 헤아렸습니다. 비공개재판인 가사재판에서 길게 이유를 설명하는 것 역시 이례적입니다. 마치 부모님이 자녀를 혼내듯 "도저히 이럴 수는 없다."고 까지 말했습니다.

서초동 중앙지방법원 앞에 한 단체가 보낸 화환

선고 후 11일이 지난 어느 날, 서초동 법원 입구에는 일부일처제와 조강지처 가치를 중시하는 한 단체에서 재판부에 감사하다는 화환을 보냈습니다. 재판부의 노 관장에 대한 위로가 지켜보는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8년을 싸운 딸 잃은 어머니 재판 1분 컷



화환이 법원에 도착한 같은 날, 학교폭력으로 딸을 잃은 어머니의 재판도 열렸습니다. 딸의 학폭 재판에 변호사가 가지 않아 어이없게 진 '권경애 변호사' 사건입니다. 딸의 죽음에 책임을 묻겠다는 일념 하나로 청소노동자인 어머니는 8년을 달렸는데 허망하게 끝이 났습니다. 재판부는 "권경애 변호사가 위자료 5000만원을 주고 소송비용 대부분은 어머니가 내라" 했습니다. 선고는 1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위 화환을 보고 법정에 들어가고 나올 때도 지나쳤습니다. 어머니는 법원에, 재판부에 감사했을까요? 그렇지 못했습니다.

#힘없는 사람에게 불친절한 법원


학교 폭력으로 세상을 떠난 고 박주원 양의 어머니 이기철 씨가 1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권경애 변호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마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판결문이 나오기 전까진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머니는 선고 후 기가 막힌다고 했습니다.

"기가 막힌다. 소송비용도 원고(어머니) 부담한다는 판사 소리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이 재판 왜 있는지 모르겠다. 힘없는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 법이 돼 준 적 언제 있었나요"

이런 결정이 나온 재판부 판단은 이렇습니다. 어머니는 소송 값 1억에 정신적 고통 위자료로 1억을 냈는데 재판부는 소송은 진행했더라도 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위자료 1억에 대해서만 절반을 인정한 겁니다. 그럼 전체 2억 중엔 1/4만 인정된 셈이니 소송비용 3/4은 어머니가 내야 한다는 겁니다. 민사 소송상 소송비용은 통상 인정된 배상 액수에 비례해서 나눠냅니다.

자식 잃은 어머니는 돈 때문에 소송을 한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책임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선고 주문만 읽는 원칙이 지켜졌고 어머니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원래 그렇답니다. 원래라는 단어가 너무 싫어요. 원래가 바뀌어야 하는 거잖아요. 대단한 법정이고 대단한 법이네요."

법조계에선 위자료 5000만원도, 권 변호사에 대한 자격정지 1년 징계도 이례적이라 하지만 어머니가 체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람 죽어도 2억 받기 어려운데 노소영의 아픔은 20억?...기준 없는 위자료



"위자료 : 위법한 행위에 의하여 발생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

우리 법원은 누가 잘못했는지, 얼마나 잘못됐는지 따질 뿐 아니라 잘못으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배상을 얼만큼 해야 할 지도 판단합니다.

그러나 위자료 기준에 대해서 법원은 처벌형량을 세밀하게 정리한 양형기준 처럼 따로 정리한 것이 없습니다. 판사들이 사건을 맡으면 기존엔 어떻게 판결해왔는지(판례) '지금까지 인정해 온 위자료 범위'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게 정합니다. '형평성' 때문입니다.

때문에 법원이 인정하는 위자료 액수가 낮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죽어도 위자료 2억을 받기 힘든데 이런 상황에서 이혼 재판에서 위자료 20억이 내려졌으니 판사, 변호사들도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법조계엔 다양한 의견이 맞서고 있습니다. 20억으로 위자료를 늘린 건 재산에 비례해 책임을 좀 더 물었다는 입장에 찬성하는 법조인들은 '1심에서 위자료 1억에 대해서 기업 총수인 최 회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재산에 비례해 위자료를 다르게 정한다면 "똑같은 피해를 보더라도 '부자에게 피해를 본 피해자'와 '그렇지 못한 피해자'가 달라야 하냐"는 반문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재산분할 판결은 SK의 수많은 임원이 책임지고 해결해 나갈 문제입니다. 애초에 그 정도 재산을 가진 당사자들이 대한민국에 몇 없기 때문입니다. 이 재판에서 나온 '20억 위자료' 문제는 다릅니다. 크고 작은 일로 법원에 올 수 있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돈으로 고통을 환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법원이 고통을 더 안길 수 있는 지금의 상황 만큼에 대해선 대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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