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內 출산율 반등" 공언에도…MZ는 시큰둥한 이유[기자수첩]
"결혼·출산·양육이 메리트 되게 하겠다"더니…수혜대상은 청년 아닌 '정규직 기혼자'?
'고소득 부부'로 저리 대출 넓힌 신생아 특례대출…누구를 위한 출산율 제고 대책인가
금번 대책 진두지휘할 거버넌스(인구전략기획부)는 여전히 안갯속…알맹이 언제 나오나
지난 17일, 기자들이 유독 분주했던 이유는 비단 서울대병원 교수들의 파업 때문만은 아녔다. 당일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의 범부처 저출생 대책 발표를 이틀 앞두고 관계부처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사전브리핑을 열었다. 주형환 저고위 부위원장이 주재한 이 설명회는 질의·응답까지 장장 1시간 반에 걸쳐 진행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선포한 '인구 국가비상사태'가 실감 날 만치 현장에서 언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정부는 지난해 기준 0.72명까지 떨어진 합계출산율을 2030년 1.0명으로 끌어올리겠다며 임기 내 '반전의 모멘텀'을 만들겠다고 했다. 시대정신이라 할 만한 '워라밸'과 성평등을 반영한 '일·가정 양립'을 전면에 내세웠고, "결혼·출산·양육이 메리트가 되도록 하겠다"고도 약속했다.
하지만 "국가 시스템 붕괴가 우려되는 엄중한 상황"이란 수사가 다소 식상해서였을까. 잠재적 출산인구인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의 반응은 영 딴판이다. 정책 당사자로서 이번 대책에 대한 의견을 묻자 한 취재원은 "그런 정책이 발표됐는지도 몰랐다"고 고백했고, "그냥 늘 해오던 말 아니냐"는 지인의 반문에선 냉소가 묻어났다. 최근 어렵사리 '취뽀'(취업 뽀개기)에 성공한 20대 여성은 "일단 내 얘기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16년간 280조를 쏟아 붓고도 효과는 없었던 '백화점식 정책'을 탈피해 수요자가 가장 원하고 실효성이 높은 분야에 대해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정부의 공언이 무색한 순간이었다.
물론 200개가 훌쩍 넘었던 저출생 정책의 가짓수를 3대 핵심 분야의 60여 개로 압축한 것은 분명 긍정적 변화다. 속된 말로 '약발'이 다한 단순 현금성 지원보다 출산율 제고에 효과적이라 평가되며, 좀 더 구조적 문제에 가까운 일·가정 양립 부문에 신설 또는 확대된 예산의 80%를 집중 투입하기로 한 것도 고무적이다.
짧은 돌봄공백에 대응하기 위한 연 2주의 단기 육아휴직, 육아휴직기 급여상한 인상, 사용자가 2주 내 결재하지 않으면 자동 승인되는 출산휴가·육아휴직 통합신청, 시간제 보육 확대 등…. 이 모든 항목이 일하는 부모에게 절실한 개선책임을 부인하는 게 아니다. 다만, 면면을 조금만 뜯어보면 정부의 눈이 향하고 있는 대상은 너무도 분명하다. 일정 규모 이상 직장에 다니는 정규직 기혼(旣婚)자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준비하며 간담회, 저고위 대국민정책공모전 등 현장 의견을 반영했단 점을 매우 강조했는데, 핵심은 '누구의 목소리냐'다. 발표자료에 담긴 민원의 9할 이상은 유(有)자녀 가구 또는 당장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높은 신혼부부의 것이다. 청년이 낸 것으로 보이는 제언은 기껏해야 "결혼을 하면 주택 청약이나 공공임대주택 분양을 받을 때 소득·자산요건 때문에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결혼 페널티를 없애 달라" 정도다.
그나마도 주거 지원의 대표 격인 신생아 특례대출을 '내년 이후 출산가구'에 한해 3년간 소득기준을 5천만원 더 올려주는 방향(부부 합산 연 2억→2억 5천)으로 확대한 것은 상징적 아이러니다. 통계청 조사를 인용해 청년들이 결혼에 엄두를 못 내는 주된 이유가 '주거비용 등 자금 부족'이라 써놓고, 정작 혜택은 이미 결혼을 한 고소득 부부로 퍼뜨려 주겠단 게 어떤 의미일까(참고로 2022년 기준 맞벌이 신혼부부의 합산 연소득 평균은 약 8200만원이다).
특례 대출기간 중 아이를 하나 더 낳으면 추가로 우대금리를 적용하겠다는 단서는 한층 더 노골적이다. 출산율 반등은 일종의 '맥거핀'일 뿐, 기실 이를 빙자한 부동산시장 부양에 방점이 찍힌 게 아닌지 의심케 되는 대목이다.
반전의 키는 '아이 있는 삶'을 꿈꿔야 할 청년들에게 달려 있다고 주장해온 한 연구자는 "정부가 여전히 '출산'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방증이자, 누가 여론을 주도하며 가장 많은 '표'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예"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사실 주거 이전에 일자리 안정이 먼저 아닌가 싶다. 직장이 해결돼야 결혼, 출산도 (다음 스텝으로) 생각할 수 있다"며 "당장 먹고사는 게 급한데, 시장 금리로 돌아가는 집값 문제에 젊은 층까지 끌어들이는 인상을 주는 건 상당히 위험하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인구 문제는 더 길게 봐야 한다. 현재의 워킹맘들 이상으로 당국이 귀를 기울이고 인식 개선에 힘써야 할 대상은 중·고생일 것"이라며 "앞으로 10년, 15년 뒤 부모의 자리에 있을 세대를 케어해야 '찐' 저출생 대책이지 않겠나. 언제까지 발등의 불만 볼 건가"라고 되물었다.
또 하나의 함정은 거버넌스다. 인구위기를 '최우선 해결 과제'로 규정하면서도, 금번 대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의 윤곽이 선언적 수준이란 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지난달 9일 윤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당시 밝힌 저출생대응기획부(인구전략기획부) 신설 계획에서 업데이트된 내용은 저고위를 '인구 비상대책회의'로 전환해 매달 개최하겠다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인구정책의 안정적 추진기반이 되어줄 '인구위기대응특별회계'도 아직 "신설 검토 중"이다.
저고위의 금번 대책이 앞서 작년 3월 윤 대통령이 주재한 첫 본회의 이후 길게는 1년, 짧게 셈해도 네다섯 달을 미뤄온 발표인 점을 감안하면 초라한 결과다. 재정당국의 반발을 누르고 인구 전담부처의 예산 사전심의제를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 현 정부가 대선 시절부터 폐지를 공약했던 여성가족부는 이 국면에서 어떻게 재편하겠다는 것인지 등 이제는 '알맹이'를 보여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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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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