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 살해 현장… 가자의 죽음을 보았다
85일 머물며 이스라엘 공격 증언
사람 비명 위로 폭격 잔해 날리고
가족·친구·동료 죽음 눈앞서 목격
현지 참상 언론·국제기구 침묵 비판
집단학살 일기: 가자에서 보낸 85일/ 아테프 아부 사이프/ 백소하 옮김/ 두번째테제/ 2만2000원
지난해 11월5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에 있던 작가 아테프 아부 사이프는 오랜 친구 파크리가 길 건너는 모습을 봤다. 얘기 좀 하자고 불러 세웠다. 친구는 화장실부터 다녀오겠다고 했다. 두 남자의 생사가 갈린 순간이었다.
전쟁 첫날 그는 바다에서 수영 중이었다. 아무런 경고 없이 로켓 소리와 폭발음이 사방에서 들렸다. ‘매일 하는 훈련이겠지, 한 두 시간 그러겠네’ 생각했다.
저자는 매일 수십, 수백명의 죽음을 보거나 전해 들었다. 그의 처제 가족도 몰살되다시피 했다. 미사일 공습 현장에서 처제 부부와 손녀가 숨진 채 발견됐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그의 조카딸은 두 다리와 한 손을 잃었다. 사촌은 공습으로 숨졌고, 어제까지 본 동료기자를 병원 바닥에 무더기로 놓인 시신 사이에서 발견했다. 병원 정문에 서 있다 7, 8m 떨어진 곳에 미사일이 떨어져 16명이 숨지기도 했다. 그는 “우리 삶은 그저 폭격, 포격, 파괴, 죽음의 무한 연쇄”라고 했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삶은 고행이었다. 부상당한 이들은 병원에서 마취제도 없이 수술해야 했다. 숨진 이들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르기도 어려웠다. 폐허가 된 거리에서 손으로 잔해를 치우고 사망자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저자는 친척 여덟 명의 시신이 빨리 수습된 데 대해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며칠이고 몇 주고 시신이 수습되길 기다리며 아직도 폐허 아래서 끝없이 마지막 순간을 몇 번이고 반복하리라고 상상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 가족은 ‘행운’”이라고 적었다. 미사일에 몸이 조각나도 시신 확인을 할 수 있도록 아이들은 손발에 자기 이름을 써두기도 했다.
식량과 물이 부족했다. 보름이 지나자 빵을 구하려면 2∼5시간은 줄을 서야 했고, 식수를 얻기 어려웠다. 한 달이 지나자 빵을 얻으려면 일곱 시간 넘게 걸렸다.
이스라엘 지상군이 가자지구 북부에 진입하자 저자는 남부 난민촌으로 떠난다. 그는 가자지구에 온 이스라엘군에 대해 “그들의 목표는 가자 지구 전체의 인종청소다. 이 지역에 와서 ‘2006년에 하마스에 투표한 게 누구냐?’라든가 ‘누가 하마스한테 투표할 것 같냐’고 묻고 청소하는 게 아니다”라고 꼬집는다. 이스라엘에 장악된 가자지구는 “비현실적인 야외 영안실, 아니면 살해 현장 같았다”고 묘사한다.
난민촌에서는 천막 하나로 추위와 더위를 견뎌야 했다. 삶의 뿌리가 통째로 뽑혀버린 생활은 상상하기 힘든 상실감을 안겼다. 전쟁 발발 72번째 날인 지난해 12월17일 저자는 “가자는 버려졌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학살로 수십 명이 죽었다고, 민간인이 살해당했다고 소식을 듣는데 누구 하나 보도조차 하지 않는다”고 탄식한다. 그러면서 “북부를 절대 떠나지 말았어야 할 두 집단, 기자들과 국제기구가 이 지역을 가장 먼저 떠났다”고 비판한다.
가자지구의 참상은 최근만의 일이 아니다. 저자는 전쟁 첫날 친구에게 “여태껏, 75년이 넘게 (가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거냐고 묻는 게 제대로 된 질문”이라고 말한다.
가자지구의 비극에 대해 그는 올해 3월 이탈리아어판 편집자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유럽 중심 국제질서의 희생자다. 유럽이 벌인 실수의 역사에 대한 대가를 우리가 치르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홀로코스트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게 우리 탓이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건 안타깝게도 우리”라고 말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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