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와 공간의 본질… 건축은 곧 삶이다
역순의 구성으로 작가 신념 반영
광범위한 기록과 건축물 바탕으로
업적부터 치부까지 집요하게 접근
킴벨 미술관 등 대표 작품 직접 답사
완성 과정 속 예술적 사유 담아내
생애·업적 평면적으로 기술 안해
일반적 평전 구성과 차별화 눈길
루이스 칸 : 벽돌에 말을 걸다/ 웬디 레서/ 김마림 옮김/ 사람의집/ 3만원
문명이 있는 곳에 건축이 있다. 건축은 곧 삶이다. 건축은 ‘스스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다른 예술 작품과는 달리, 개방적이고 능동적이며 일상적이다. 재료와 공간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했던 건축가 루이스 칸은 1974년 펜실베이니아 기차역(펜역)에서 죽음을 맞았다. 공공건축에 힘을 쏟았던 그의 삶을 돌아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펜역의 죽음에 이어 에스토니아에서의 유년 시절, 미국으로의 입항, 세계적인 건축가로 주목받고 도약하기까지 저자는 칸의 궤적을 따라 광범위한 기록과 남겨진 모든 자료를 통해 칸을 복원한다. 칸의 천재적인 재능과 업적 그리고 비밀스러운 관계와 치부까지도. 칸의 ‘빛’과 ‘그림자’ 양면 모두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칸은 반세기 동안 235개의 건물을 설계했고 이 가운데 81개가 실행됐다. 1952년 이후 완성된 그의 40여개 작품 가운데 우리가 주로 손꼽는 것은 ‘소크 생물학 연구소’, ‘필립스 엑서터 도서관’, ‘킴벨 미술관’,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인도 경영 연구소’, ‘트렌턴 배스 하우스’, ‘루스벨트 포 프리덤스 공원’ 등이다.
책은 그의 대표적 건축물이 어떻게 계획되고 훗날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칸의 건축 철학과 예술적 사유 등을 곳곳에 적고 있다.
‘결국 킴벨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 빛 자체만이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곳으로 빛이 들어와 그 빛에 의해 그 방의 윤곽이 드러나는 방식이다. … 그것은 시각적인 것이 촉각적인 것이 되는, 빛 자체를 촉각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예술의 본질에 도달하는 것이다.’(170쪽)
‘킴벨 미술관’의 고측창에 드리워진 빛과 은빛 표면의 역할, 소크 프로젝트에서 폴디드-플레이트 설계안을 위해 1년 넘게 시간을 쏟고 결국 설계를 바꿔야 했던 일, 콘크리트가 완벽한 재료라는 사실을 깨닫고 콘크리트라는 재료에 더 깊이 빠지게 된 계기, ‘필립스 엑서터 도서관’에서 구조를 통해 받게 되는 영감, ‘예일 대학교 아트 갤러리’의 기하학적 천장을 설계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루이스 칸의 화상 흉터로 풀어내는 잭 매칼리스터의 흥미로운 인터뷰 등이 맛을 낸다.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의 모스크가 착안되는 극적인 순간도 인상적으로 서술한다.
저자가 칸의 삶을 돌아보고, 그가 이룬 건축을 통해 찾아내려 했던 것은 시대를 초월하는 건축, 본질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창조성과 그 ‘믿음’이다. 건축은 우리를 찾아온다. 계단을 오를 때 그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빛과 형태, 질감을 마주하고 발견하는 것처럼. 건축가이자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았던 루이스 칸. 그를 읽고 나면 우리 주변의 공간이 새롭게 말을 걸어올 법하다.
“계단이 넓은 이유는, 올라가는 데 여유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 이 계단을 오르는 일 자체가 이 건물에서 경험하는 사건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며 … 당신은 계단을 마음속으로 중요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또 계단을 오르면서 당신이 환영받고 있음을 느끼는 겁니다.”(루이스 칸)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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