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스타 셰프들] ① 최현석 “쵸이닷 통해 다채로운 파인 다이닝 꿈꾼다”

이정수 기자 2024. 6.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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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이닷’을 통해 단순 맛을 넘은 ‘재미(味)’를 선보이다
5월 24일 서울 강남구 쵸이닷 레스토랑에서 최현석 셰프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5.24. / 고운호 기자

’괴짜’, ‘요리계의 이단아’‚ ’천재’.

셰프 최현석을 설명할 때 매번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몇몇 단어는 다소 강한 표현일 수 있으나 최현석이 선보이는 무궁무진한 요리 스펙트럼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찾기는 그리 쉽지 않다.

밋밋했던 한국 외식업계에서 그의 등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훤칠한 키, 준수한 외모, 게다가 얼핏 모범생처럼 보이는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그의 음식은 파격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엘본더테이블, 테이스티 BLVD를 거쳐 현재는 쵸이닷(CHOI.)의 오너 셰프로서 2017년부터 활동 중이다.

최현석의 요리는 혀뿐만 아니라 눈으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 강하다. 국내 최정상 셰프 중 요리 사진 하나만으로 그것을 만든 셰프를 유추할 수 있는 이는 최현석이 거의 유일하다. 일각에서 그의 요리를 두고 “최현석의 요리는 그의 지문이 찍혀있다”고 표현하기도 하는 이유다. 아마 그 비결은 2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매번 새로운 식재료, 테크닉을 바꿔가며 그 만의 장르를 개척했기 때문일 것이다. 레스토랑 쵸이닷의 이름도 그런 뜻을 지니고 있다. 그의 성인 ‘최(Choi)’와 마침표 dot. ‘설명이 필요 없는 최현석만의 요리를 보여주겠다’는 그의 포부가 담겨있다.

최현석의 요리는 그저 맛만 있지 않다. 보통 ‘미(味)’에는 짠맛,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등 5가지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최현석의 요리에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재미’다.

대중적인 음식 '스팸'에서 착안한 '쉐프햄'. /쵸이닷

이에 걸맞게 그의 요리를 처음 보게 되면 미소부터 흘러나온다. 미뢰에 닿기도 전에 미리 즐길 수 있는 풍부한 시각적 경험은 덤이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단어와 재료의 조합들이 쵸이닷의 메뉴판에는 넘쳐난다. 가령 대중적 식품인 ‘스팸’의 럭셔리화. 어떤 맛일지 상상조차 안 가는 애니메이션 ‘건담’에서 착안한 후식 디저트. 메뉴판을 접하면서부터 고객들의 ‘행복한 기다림’은 시작된다. “도대체 어떤 맛일까.”

이번 시즌의 쵸이닷의 메뉴도 범상치 않다. 아니 오히려 더욱 과감해졌다. 무려 개구리를 이용한 메인 코스가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45일간의 점검 기간을 마치고 들고나온 요리가 개구리라니, 처음에 가족을 포함한 직원들까지 주위에서 만류가 무척이나 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맛있는 재료를 맛있게 요리하면 고객들도 좋아할 수 있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다. 메뉴 이름은 ‘제발(Please)’. 정말 맛있게 준비해 만들었으니 ‘제발’ 한 번만 맛봐달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정하게 됐다고 한다. 최현석만의 유머가 물씬 느껴진다.

새로운 메뉴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한국 파인 다이닝 업계가 가야 할 길에 대한 그의 고민 역시 깊어졌다. 한국 파인 다이닝은 지난 20여 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으나, 이젠 한 단계 더 성장할 때가 됐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요리를 비롯해 어떤 특정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요리를 비난하는 이에게도 당당하다. 팔레트에 있는 색이 다양할수록 각자의 색이 더욱 빛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건담에서 착안한 쵸이닷의 디저트 '핸섬 (Handsome)'. /쵸이닷

―쵸이닷에 대해 설명해달라.

“쵸이닷은 오픈한 지 7년이 된 나만의 레스토랑이다. 이전부터 새로운 공간에서 내 색깔이 강한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었다. 레스토랑의 이름도 이런 내 의지를 담고 있다. 최현석 그리고 마침표. ‘긴 말 안 하겠다. 이게 나의 요리다’라는 뜻이다. 또한 어떤 설명이 없더라도 직관적으로 즐거운 경험을 주겠다는 뜻도 있다.”

―쵸이닷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 외식 문화, 특히 파인 다이닝 업계는 그런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파인 다이닝이라고 하면 정갈하고, 고급지고, 다소 무거운 분위기를 떠올린다. 물론 어떤 매장은 그런 부분이 강조될 수도 있다. 다만 모두가 품위 있어 보여야 하고, 정숙한 분위기만이 통용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파인 다이닝은 보다 편하고, 즐거운 마음과 쉬운 발걸음으로 방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면에서 다양함을 주고 싶었다. 쵸이닷에서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분위기를 추구한다. 그래서 이번 리뉴얼에는 가격을 합리적으로 산정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업계에 있는 몇몇 주변 분들이 더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이 파인 다이닝을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비싼 가격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장벽을 낮추고 싶었다.”

―문화의 다양성이 갖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영화로 예시를 들면 편할 것 같다. 영화에는 다양한 장르가 존재한다. 멜로, 드라마, 스릴러, 코미디 영화까지. 무겁고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도 있지만 가볍게 킬링타임용으로 소비할 수 있는 영화도 있다. 스펙트럼이 다양해질수록 영화를 찾는 사람들은 더 많아지지 않는가. 한국 외식업계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문화는 다양하게 모여야 힘이 생긴다. 내가 시도하는 새로운 요리도 다양성을 주기 위함으로 봐주면 좋겠다.”

서울 강남구 쵸이닷 레스토랑에서 최현석 셰프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고운호 기자

―한국 외식업계의 문제는 무엇인가.

“개인적인 생각이고, 나만의 의견이라 조심스럽지만 다소 획일화되는 감이 없지 않나 싶다. 요즘 비싼 레스토랑을 가보게 되면 비슷한 재료, 비슷한 스토리텔링(메뉴에 대한 설명)을 하는 곳들이 꽤 많이 보여 아쉽다. 물론 한국 다이닝 업계에 있는 많은 셰프들의 실력은 세계 최정상급이다. 다만 자꾸 강조하듯, 국내 외식업계가 보다 다양하고 개성 있는 요리를 선보여야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경제가 얼어붙으면서 다이닝을 외면하는 고객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들의 발걸음을 돌리기 위해선 우리들의 자성이 필요하다. 영화도 블록버스터만 보면 질린다. 코미디, 스릴러 등 여러 장르가 있어야 한다.”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이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 영감의 원천은 어디서 나오는가.

“언제나 새로운 요리를 만들려는 그 마음가짐이 중요했던 것 같다. 과거엔 매 시즌마다 새로운 메뉴를 내놓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미친 짓이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이전 요리를 냉정하게 평가하면 특이하기만 하고 맛의 밸런스 즉 조화가 깨지는 메뉴들도 많았다. 그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은 보다 나은 요리를 만들 수 있게 된 것 같다.”

―요리에서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 무엇들이 있는가.

“맛이 좋아야 함은 물론이고, 고객과의 ‘공감’도 중요하다. 쵸이닷은 ‘유머’를 통해 그런 공감을 이끌어 내고자 한다. 한국인에게 아주 익숙한 음식을 새롭게 재해석함으로써 고객이 웃음 짓는 그러한 접점을 만들고 있다. 예컨대 예전 메뉴 중 하나는 ‘죠스바’에서 착안한 ‘쵸이스바’였다. 쵸이스바는 하드 아이스크림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연어초밥의 맛이 난다. 한번 상상해 봐라.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와서 아이스바를 빨고 있으면 웃음부터 나오지 않을까? 격식이 무너지며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쵸이닷의 저녁 메인 코스 중 하나인 스테이크. /쵸이닷

―요리에 대한 철학이 궁금하다.

“요즘은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이 외식업계에서 모든 플레이어가 다 중요하다. 나라고 더 중요하지 않고, 너라고 더 중요하지 않다. 나 같은 셰프가 있어야 다른 셰프들이 빛날 수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쵸이닷처럼 독특한 메뉴를 내놓는 곳이 있어야 다른 고급 레스토랑도 그 매력이 커진다. 이처럼 다양함 속에서 나만의 개성을 발현해 낼 수 있는 셰프가 되고 싶다.”

―쵸이닷은 최근 45일 간의 리뉴얼을 거쳤는데, 무엇이 바뀌었는가.

“이번 시즌의 런치는 이탈리안을 좀 더 고급스럽게 해석해 봤다. 디너 코스는 대놓고 더 즐겁게 손님들이 즐길 수 있도록 유머 요소를 많이 넣었다. 다만 맛에 대한 고집도 꺾지 않았다. 하나의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똑같은 메뉴를 130번 넘게 만들어 본 적도 있다. 쉽게 말하면 최현석의 요리를 가장 최현석답게 발전시켜봤다.”

―개구리도 코스 요리의 일부분이라고 들었다.

“그렇다. 과거 싱가포르에 가서 개구리를 맛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개구리는 맛과 질감이 닭이랑 비슷한데, 콜라겐이 더 함유돼 식감이 더욱 고급스러웠다. 이걸 꼭 요리해 보고 싶었다. 처음엔 직원들이 너무 위험하지 않겠냐고 했다. 딸들도 극구 반대했다. 근데 그럴수록 더욱 요리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셰프의 본분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됐다. 고객들이 맛보지 못한 낯선 식재료를 맛있게 내놓아 그들에게 새로운 미식의 경험을 주는 게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많은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메뉴에 내놓게 됐다. 첨언하자면 지금의 한국은 외식업계에서 소비하는 육류가 제한적이다. 소, 돼지, 그리고 닭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토끼, 개구리처럼 여러 고기도 맛볼 수 있었다.”

쵸이닷의 신메뉴인 개구리를 이용한 '제발 (Please)'. 최현석 셰프는 손님들이 제발 한번 맛봤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 이런 이름을 짓게 됐다고 설명했다. /쵸이닷

―개구리 요리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예상보다 좋았다. 물론 개구리가 어려운 손님들이 있으니 미리 다른 메뉴를 고를 수 있다고 처음에 설명해 준다. 다만 정말 맛있게 만들었으니 한번 맛을 봐 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메뉴 이름도 ‘제발(Please)’이다. 셰프가 직접 나와서 제발 먹어달라고 애원하니 고객님들도 10이면 10 웃더라. 앞서 말한 쵸이닷이 추구하는 방향인 ‘즐거운 분위기의 파인 다이닝’이라는 철학과도 맞는 부분이다.”

―쵸이닷의 목표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가는 ‘좋은 공간’이고 싶다. 지금보다 친근하게 많은 사람들이 파인 다이닝을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 파인 다이닝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싶다. 또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쵸이닷뿐만이 아니라 다른 파인다이닝에도 호기심이 생겼으면 좋겠다. ‘최현석과 쵸이닷이 한국 미식 역사에 한 획을 긋겠다.’ 같은 거창한 목표는 지니고 있지 않다. 단순히 다양한 장르, 그 한 귀퉁이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좋은 공간으로 기억되고 싶다.”

☞최현석 쵸이닷 오너 셰프는

▲엘본더테이블 前 총괄셰프 ▲테이스티 BLVD 前 총괄셰프 ▲라미드호텔직업전문학교 前 학과장 ▲서울현대직업전문학교 前 교수 ▲쵸이닷 現 총괄셰프 ▲중앙감속기 現 총괄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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