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는 여자들 “근육은 배신하지 않습니다”
“이제 결혼 활동보다는 근육 활동이죠. 근육이 당신을 구합니다!”
보다 적극적인 결혼을 위한 활동(婚活·곤카쓰)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비혼주의를 밝힌 일본 배우 아마미 유키(57)의 발언이 한국 여성들에게도 큰 공감을 일으켰다. 삶의 어떠한 결정보다 정직한 결과물로 돌아오는 것이 근육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국내에서 리메이크된 드라마 <여왕의 교실>의 담임 교사 역으로 잘 알려진 아마미 유키는 다부지고 활력 넘치는 이미지로도 사랑받는 배우다.
여성의 운동 목적이 과거 날씬한 몸매나 체중감량이었던 것에 반해 이제는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근력 운동에 몰두하고 있다. 개인 맞춤 훈련인 PT부터 웨이트 트레이닝, 클라이밍, 사이클, 크로스핏 등 여성들도 절대 배신당하지 않을 ‘근육 활동’에 눈을 돌린 것이다.
여성용 근력 기구 구매량 급증
헬스 트레이너 김단비씨는 고객 상담을 통해 여성 운동을 둘러싼 달라진 분위기를 느낀다. 그는 “‘살 빼는 건 됐고 근육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분들의 비율이 상당히 늘었다”고 전한다. 물론 체중감량을 원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지만, 체력 및 근력 향상을 큰 목표로 두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원하는 체형도 마르고 날씬한 몸매보다는 탄탄하고 건강한 몸으로 바뀌고 있다.
김씨는 이런 변화의 원인을 두 가지로 봤다. 첫 번째는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건강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물론 마스크를 쓰면서 얼굴보다는 탄탄하고 건강한 몸매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여성 운동 인플루언서가 부각되면서 운동 정보가 널리 공유된 것도 한몫했다.
두 번째는 미디어가 담아내는 여성상의 변화다. 코미디언 김민경씨가 놀라운 운동신경을 과시하며 일명 ‘근수저’ 캐릭터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나아가 사격 국가대표로 활약한 것도 많은 여성들에게 동기부여가 됐다. 과거 근육질의 여성 코미디언은 ‘기 센 여자’ ‘우락부락 특이한 여자’ 같은 개그 캐릭터로 소비됐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더 건강하게 먹기 위해 운동한다”는 김민경씨의 말은 여성 운동에 대한 관점을 바꾸기도 했다.
<피지컬 100> <사이렌 불의 섬>과 같이 강인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컴피티션 예능 프로그램에 여성의 출연이 늘어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김단비씨는 “‘나도 저렇게 강해지고 싶다’며 선망하는 분들이 많아졌고 그에 따라 운동의 목적이 자연스럽게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가 재직 중인 여성 전용 헬스장 ‘휘트니스피플 우먼’은 2022년 서울 7개 지점에서 2024년 현재 수도권을 포함, 21개점으로 확장됐다. 여성 고객들의 수요에 발맞춰 운동 기구 라인업에도 변화도 일어났다. ‘근육맨’ 맞춤이었던 웨이트 기구가 여성의 몸에 맞는 사이즈로 제작되기 시작한 것이다. 김단비씨는 “예전 같으면 여성 전용 웨이트 기구 출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요가나 에어로빅 등에 국한됐던 ‘여성 홈트(홈트레이닝)’도 근육 단련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e커머스 플랫폼 G마켓은 2020년부터 여성 고객의 근력 운동 기구 용품 구매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케틀벨과 스테퍼의 여성 구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61%, 65% 늘었다. 스쾃 머신, 스포츠 테이프의 판매량도 각각 12%, 25% 증가했다.
전체 사용자 95%가 여성인 온라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에이블리의 쇼핑 데이터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 지난 5월 ‘운동 기구’ 거래액은 지난해보다 60% 증가했다. ‘아령’ ‘덤벨’ 등 근력 운동 기구의 검색량은 각각 62%, 40% 늘었다. 에이블리 이슬기 팀장은 “최근 들어 여성 소비자 사이에서 복부 코어 운동 기구인 휠 슬라이더나 효율적으로 팔굽혀펴기 운동을 해주는 푸시업 바 같은 기구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밝혔다.
신체 변화와 함께 자신감·활력 돌아와
간호사 안승희씨(42)는 수술이 잡힌 날은 한 시간 이상 고개를 숙인 자세로 집중해 일해야 한다. 일자목 증후군과 어깨에 쌓인 피로감은 일상이었다. 퇴근 후에는 저절로 소파와 한 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근력 운동이 절실한 상황이란 자각은 컸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며 “게다가 무리하게 운동하다 다친 사람들이 병원을 자주 찾아 겁이 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가 고심 끝에 고른 운동은 근력 강화에 주력하는 여성 전용 운동 프로그램 ‘커브스’다.
커브스는 30분 순환 운동으로 참가자들이 동그랗게 무리 지어 모인 후 각자 30초간 유압식 기구로 상반신과 하반신 근력 운동을 하고 다음 30초간 유산소 운동으로 근육의 휴식을 주는 그룹운동이다. 이런 패턴으로 시계방향으로 이동하며 총 24개 스테이션을 두 번씩 운동한 후 스트레칭 머신으로 마무리하면 하루 분량 운동이 끝난다. 안씨는 “여성들끼리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운동하다 보니 ‘으쌰으쌰’하며 독려하는 분위기가 절로 형성된다”고 말했다.
2년간 꾸준히 운동한 결과 안씨는 체중을 16.4㎏ 감량했고 근골격량은 23%에서 26%로 높아졌다. 근육이 붙다 보니 자세가 자연스럽게 교정돼 거북목에서 벗어났고 다소 높았던 혈압도 정상 범위로 개선됐다. 그는 한마디로 삶의 질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자신감과 활력이 돌아 신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진 기분이 든다고 했다. 움직이는 것이 즐겁다 보니 웬만한 거리는 걷고 에스컬레이터보다는 계단을 오르는 등 일상이 달라졌다.
“제 소셜미디어에는 운동 알고리즘으로 가득해요. 여성들이 ‘무게 치는’ 모습을 보면 운동을 할수록 근육을 늘리고 싶다는 욕심이 커져요.”
신희선씨(32)는 작고 여리여리한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1년 반 전부터 근육 운동을 시작했다. 예쁘기만 한 관상용 근육이 아니다. 자신의 몸무게와 같은 40㎏ 중량 바를 들고 스쾃 운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근육에 힘이 붙었다.
“과거에는 체중감량이 지방 빼는 것이 목적인 줄 알았는데 근육을 키워야 건강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사람들이 한눈에 봐도 단단해 보인다고 이야기해줘요. 계단을 오를 때 금세 헉헉대던 것도 사라졌어요.”
신씨는 평생 ‘약한 사람’ 이미지를 안고 살았다. 심장병으로 두 차례 큰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는 “근육이 붙고 중량 바 무게도 점점 늘리다 보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신씨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주변인들을 웨이트 트레이닝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운동 하면 요가나 필라테스 정도를 거론하던 친구들의 운동 선택지가 확연히 넓어졌다.
우리나라 BMI는 코르셋…건강 기준 왜곡
국가대표 봅슬레이 스켈레톤팀 영양사이자 애플리케이션 ‘동면중 운동도우미’ 개발자인 현대진씨는 기회만 되면 ‘여성 근육’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는 우리나라 체질량 지수(BMI)를 ‘공공기관이 국민에게 강요하는 코르셋’이라고 말한다. 체질량 지수는 체중을 신장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로 세계보건기구 기준으로 BMI 18.5~25의 경우 정상이지만 대한비만학회는 18.5~23은 정상, 23~25이면 과체중으로 판단한다.
“우리나라의 체질량 지수는 골격 근량이나 지방 근량을 배제한 채 키와 몸무게만 두고 정한 기준입니다. 그 기준 또한 외국보다 빡빡해요. 게다가 ‘과체중’이라는 개념까지 만들어서 사람들이 무리하게 살을 빼게 만들어요. 여성은 근육량을 조금만 높여도 BMI가 비만으로 나올 수 있거든요. 과연 BMI를 건강의 척도로 보는 것이 맞는 걸까요?”
남성의 경우 호르몬의 영향으로 근육량이 자연적으로 늘지만 대다수 여성은 체중감량을 하면 할수록 근육량과 기초대사량은 점점 줄어든다. 여기에 나이, 호르몬, 식단이라는 변수까지 더하면 근육은 쉽게 소실된다. 마치 비만의 표상처럼 통하는 셀룰라이트는 여성의 90%가 갖고 있는 체지방 세포다. 셀룰라이트는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신체에 대한 왜곡된 기준이 정상 체중인데도 스스로를 과체중으로 인식하게 하고 나아가 극단적으로 식단을 제한하거나 굶는 풍토를 만들고 있다고 현씨는 지적한다.
“살은 잡아주고 몸매는 탄탄해 보이게 하는 레깅스가 유행이죠? 근육이 바로 천연 레깅스입니다. 근육 운동을 하면 레깅스를 입은 것처럼 건강한 보디라인이 생깁니다.”
그가 제안하는 해법은 근력 운동이다. “근육량은 삶의 질과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근력 운동을 할 때는 자신에게 맞는 중량 선택과 바른 자세 유지가 중요하다. 골반과 무릎, 발목의 정렬이 틀어진 채로 스쾃이나 데드리프트 같은 운동을 하면 허리와 무릎 부상 위험이 높아진다. 또한 근력 운동 후에는 근육의 회복 시간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과도한 운동은 오히려 근육 손상을 유발할 수 있어 근력 운동 후 48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강혜경 “명태균, 허경영 지지율 올려 이재명 공격 계획”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수능문제 속 링크 들어가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메시지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