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체 수 조절” vs “생명 경시 법”… ‘비둘기 먹이 금지법’이 뭐길래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각역 1·2번 출구 앞 인도의 나무 그늘에 비둘기 수십 마리가 떼 지어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길을 막는 비둘기 때문에 시민들이 멈칫하거나 손을 내저으면서 종종걸음을 옮겼다. 길가에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종로구청이 비둘기 때문에 불쾌하다는 민원이 이어지자 ‘모이 금지령’을 내린 것이다.
이날 환경부에 따르면 내년 1월부터 이른바 ‘비둘기 먹이 주기 금지법’이 시행된다. 작년 12월 개정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이 법에 근거해 내년부터 각 지방자치단체는 조례를 통해 공원이나 고수부지 등에서 ‘유해 야생동물’에게 먹이 주는 것을 금지할 수 있게 된다. 먹이를 주는 시민에게는 최대 100만원까지 과태료도 부과할 수 있다.
유해 야생동물이란 환경부가 사람에게 생명이나 재산상 피해를 준다고 판단한 야생동물을 말한다. 농사에 피해를 주는 고라니나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멧돼지가 대표적이다.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 종류인 ‘집비둘기’도 2009년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된 상태다. 환경부 관계자는 “비둘기 분변이 문화재나 건물 외벽을 부식시킬 수 있고, 에어컨 실외기 등에 쌓인 비둘기 털은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번 ‘먹이 주기 금지’ 조항은 유해 야생동물 전체에 적용되지만, 사실상 인간의 먹이를 받아먹는 비둘기 퇴치가 주목적이다. 1년간 전국 구청 등에 접수되는 비둘기 관련 민원은 3000건에 육박한다. 2022년 2818건으로 4년 전인 2018년 1931건과 비교하면 46% 늘었다. 비둘기 배설물이나 털 관련 피해가 가장 많고, 새가 갑자기 날아오르다 부딪쳐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거나 다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국에서 비둘기 민원이 가장 많은 지자체인 서울시 관계자는 “개정된 법이 시행되면 관련 규정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경기에서는 최근 5년간 비둘기 수가 3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먹이 주기 금지에 찬성하는 쪽은 비둘기가 야생에서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줄어들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도시에서 비둘기는 사람이 흘리거나 버린 음식물 등을 통해 먹이를 얻는데, 사람이 먹이를 뿌려주면 스스로 먹이를 찾으려는 야생성이 사라지고 숫자 조절도 어렵게 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동물 보호 단체 등은 “인간의 편의에 따라 비둘기를 굶겨 죽이겠다는 발상” “생명을 경시하는 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일부 환경 단체는 “먹이 주기를 금지하기보다는 차라리 피임약 성분이 섞인 먹이를 주자”고도 주장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선 2017~2019년 비둘기에게 피임약 먹이를 줘서 개체 수를 55% 이상 줄였다. 법 시행이 알려지자 일부 지자체에는 이 법이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의견도 접수되고 있다. 먹이를 찾지 못한 비둘기가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뜯어 뒤지면 오히려 더 골칫거리가 될 거란 우려도 있다.
참새·까치·까마귀 등 다른 조류도 유해 야생동물이지만, 특히 비둘기는 사람이 주는 먹이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참새나 까치는 번식철이 되면 열매를 채집하거나 벌레를 사냥해 새끼를 먹인다. 반면 집비둘기 새끼는 어미가 게워 내는 ‘피존 밀크(pigeon milk)’를 먹고 자란다. 국립생물자원관 국가철새연구센터운영팀 최유성 연구사는 “비둘기는 사람이 계속 먹이를 주는 한 숫자가 줄지 않을 것”이라며 “일부에서 주장하는 불임 유발 먹이는 다른 조류나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대량 살포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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