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배·신학림, 대선 뒤흔들려 가짜뉴스… 정치권 ‘사냥개’ 된 기자들
‘대선 개입 여론 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이 21일 새벽 구속됐다.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 관련 허위 보도를 대가로 억대 금품을 주고받은 혐의(배임수증재·명예훼손 등)다. 김석범 서울중앙지법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김씨와 신씨에 대해 “증거인멸과 도주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 사건은 대통령 선거의 승패를 뒤집으려 범죄 피의자와 언론, 정치권이 짜고 조직적으로 ‘가짜 뉴스’를 만들어 유포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언론학계에서는 “언론 윤리를 넘어서 언론계 전체의 신뢰도를 추락시킨 사상 초유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인터뷰도 가짜, 편집도 가짜
김씨는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 초기인 2021년 9월 언론노조위원장 출신으로 뉴스타파 전문위원으로 있던 신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윤 대통령이 2011년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을 수사할 때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씨를 봐줬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녹음한 인터뷰 내용은 대선 사흘 전인 이듬해 3월 6일 뉴스타파가 보도했다.
김씨는 인터뷰 닷새 뒤 신씨가 쓴 책 3권 값으로 1억6500만원을 줬다. 검찰은 이 돈이 책값을 명목으로 한 허위 보도 대가라고 보고 있다.
뉴스타파는 실제 인터뷰에서 김씨가 “조씨가 검찰에서 만난 사람은 윤 대통령이 아닌 박모 검사”라고 했는데도, 이 부분을 잘라내 마치 윤 대통령이 조씨를 만나 사건을 봐준 것처럼 보도했다. 보도 직후 상대 후보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측은 이 보도를 ‘이재명의 억울한 진실’이라는 제목과 함께 문자메시지로 475만여 건 발송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대장동 주범은 윤석열”이란 구호를 마구 퍼뜨렸다. 이 의혹이 허위라는 사실은 대선이 끝난 뒤에야 밝혀졌다. 김씨와 신씨는 “당시는 보도 목적의 인터뷰가 아니라 사적인 대화였고, 이와 금전 거래는 별개”라는 입장이다.
검찰은 당시 민주당 관계자들이 허위 사실을 조작해 여론 조작을 시도한 의혹도 수사 중이다. 실제 민주당 ‘화천대유 토건 비리 진상 규명 TF’ 관계자들이 이른바 ‘가짜 최재경 녹취록’을 만들어 한 매체에 보도되도록 한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이 매체는 조우형씨 사촌 형과 최재경 전 민정수석이 통화한 녹취록을 공개했는데, 녹취록 속 인물은 최 전 수석이 아니라 민주당 보좌관으로 드러났다.
◇김씨 등 구속, 수사 착수 9개월 만
검찰이 이 사건 수사에 착수한 것은 9개월 전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작년 9월 신씨의 집을 압수 수색하며 수사를 개시했고, 곧이어 검사 10여 명으로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이어 뉴스타파·JTBC·경향신문·뉴스버스 등 언론사 전현직 기자들과 민주당 관계자 등도 압수 수색했다.
그러나 수사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주요 피의자들이 압수물 분석 과정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참고인들이 조사를 거부하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실제 신씨의 휴대폰과 노트북, 외장 하드를 디지털 감식하는 데만 세 달가량 걸렸다고 한다.
또 참고인 신분인 뉴스타파 직원들이 출석을 거부해 검찰은 최근 이례적으로 ‘공판 전 증인신문’ 제도를 활용하기도 했다. 이 제도는 피의자를 기소하기 전 법원이 재판을 열고 참고인을 출석시켜 진술을 듣는 과정이다. 여기에 진보 언론을 중심으로 “언론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고, 총선까지 겹치면서 수사가 지연됐다는 것이다.
◇”언론, 정치 세력의 사냥개로 전락”
여러 전현직 기자가 조직적으로 가짜 뉴스를 만들고 퍼뜨려 대선에 영향을 끼친 사건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게 언론계의 평가다. 특히 언론노조위원장 출신이 기자 출신 범죄 피의자와 ‘선거 개입, 여론 조작’ 의혹으로 구속된 것도 처음이다.
이완수 동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기자 출신인 김씨와 신씨 등이 의도적으로 언론에 허위 사실을 보도하게 만들어 선거에 부당한 영향을 끼치려고 한 것 아니냐”며 “언론 윤리 측면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언론 역시 대선 직전 김씨 측의 일방적 주장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보도하면서 결과적으로 특정 정치 세력의 사냥개(Hunting Dog)로 전락했다”고 했다.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도 “이번 사건은 전체 언론의 신뢰도를 하락시킨 역사적 사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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