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누나야 외암 살자[팜타스틱한 농촌으로]
이런 관점에서 농촌 관광 활성화는 매우 중요한 국가 현안 과제다. 치유-워케이션-체험 등을 테마로 현재 진행 중인 농촌 관광 사업지들을 둘러보는 이유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고물가 탓에 얇아진 지갑으로 고민 중인 독자에게는 쏠쏠한 여행 정보가 될 것이다.》
프랑스 파리 외곽 베르사유 가는 길에 갈리 농장이 있다. 딸기와 각종 베리류(類), 자두를 비롯해 감자 당근 사과같이 계절 따라 맺는 열매를 도시민들이 직접 수확해 가는 체험형 농장이다. 10여 년 전 파리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가족끼리 그곳에서 한나절 놀다가 직접 딴 채소와 과일을 싼값에 사서 돌아오곤 했다. 농장으로서는 수확에 드는 비싼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도시민에게는 색다른 체험은 물론이고 신선한 농산물을 싸게 얻을 수 있어 인기가 높았다.
우리나라에도 농가에서 민박하며 이런 체험을 할 수 있는 ‘농촌체험휴양마을’이 전국에 1178곳 있다. 예전에야 할머니댁에만 가면 농촌 풍경을 쉽게 접할 수 있었지만 요즘 도시 사람에게는 낯선 경험이다. 충남 아산시 외암민속마을과 당진시 왕매실마을에서 맞는 휴가는 유명 관광지에서 사진 찍고 오는 여행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줬다.
● 아산 외암민속마을
전국에 엄청난 예산을 들여 전통 가옥을 보존해 놓거나 새로 지은 곳이 많지만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아 차가운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외암민속마을은 기와집과 초가집에서 45가구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어 더욱 생기가 넘친다. 마을을 걷다가 문틈으로 집안을 들여다보면 집집마다 다르게 꾸민 뜰이 보인다. 어떤 집은 마늘 농사가 잘 됐다며 지붕 밑에 주렁주렁 마늘 꾸러미를 걸어 놓았다.
이 마을을 찾는 관람객은 연간 7만∼8만 명. 그중 농가 민박에서 하룻밤 묵고 가는 이는 3만 명에 이른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마을 구경만 하는 사람은 40만 명이나 된다. 빈집을 활용한 민박은 마을 운영비와 세금을 비롯한 수수료 20%를 제외하면 모두 농가 수입이다.
마을 입구에는 기와집이나 초가삼간 같은 한옥을 들어가 볼 수 있는 체험 집을 지어 놨다. 이곳에서 떡메 치기, 전통 결혼식 체험, 투호놀이 등을 즐길 수 있다. 한복을 입은 마을 할머니들이 마루에서 다듬잇돌 위에 옷을 올려 놓고 다듬잇방망이로 치는 시범을 보인다. 구경 온 어린이들은 신기해하며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고 직접 방망이질을 해보기도 한다. 10월 열리는 마을 축제 ‘짚풀문화제’에서는 할머니들이 노래에 맞춰 다듬잇방망이를 리드미컬하게 치는 이른바 난타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2003년 농촌체험휴양마을을 시작했을 때 마을에서 나는 쌀을 한 톨도 안 먹고 다 팔았어요. 당시 2억2500만 원 정도 수익을 올렸어요. 현재 가격으로는 약 3억 원이죠.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주춤하긴 했어도 지난해 마을 총매출이 7억8000만 원 정도인데, 비공식 수익까지 합치면 10억 원가량 될 겁니다. 농사지어 얻은 수확물 판매보다 매출이 3배 정도 올라갑니다. 더 좋은 건 수확할 때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거죠.”
이규정 외암민속마을 이장의 말이다. 이 이장은 “인구 소멸 위기에 닥친 농촌이 많은데 우리는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며 “이사 오고 싶다는 문의는 많지만 전통 가옥 보존지구라 새 건물을 지을 수가 없어 다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고즈넉한 조선시대 농촌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외암민속마을은 하룻밤 묵으면 진가를 느낄 수 있다. 해질 녘 논물에 반사된 붉은 노을, 새들 지저귀는 아침 풍경은 잊을 수 없다. 이달 6∼8일 열린 ‘2024 외암마을 야행’ 축제에는 보름달 뜬 야경을 보기 위해 10만5000여 명이 찾았다.
민박을 운영하는 신현길 씨(52)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살며 공연과 축제 기획을 하다 이 마을 풍경에 반해 올 초 이사 왔다. 신 씨는 “딸아이가 종로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전학 왔는데, 이곳 학생 수가 더 많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외암민속마을에는 한국 전통 농가를 체험해 보고 싶은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현지 여행사가 모집하는 6박 8일 한국 여행 코스에 외암민속마을 농가 체험 프로그램을 넣었는데, 여행 후기에서 가장 독특한 체험으로 만족도도 높았다고 한다. 미국에서만 올해 48개 팀(한 팀에 20명 정도)이 왔다. 내년에는 70개 팀이 올 예정이라고 한다.
● 당진 왕매실마을과 합덕제
충남 당진시 순성면 아미산 앞으로 남원천이 흐른다. 남원천변 논두렁에는 2002년부터 재경 향우회에서 앞장서 벌인 ‘고향사랑 나무 심기 운동’ 때 심은 왕매실나무가 10만 그루 넘게 자랐다. 순성면 왕매실마을과 백석올미마을은 매실청을 넣은 막걸리와 맥주, 한과 만들기 체험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당진에서 천주교 성지로 유명한 합덕성당이 있는 합덕제 연지마을도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8월 15∼17일 ‘2024 당진 문화유산 야행’ 축제가 열린다.
글·사진 아산·당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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