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특검법 ‘맹탕 청문회’ 후 법사위 통과
야당 단독 입법 청문회
21일 국회 법사위의 ‘채 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에선 이처럼 윤 대통령 개입 여부를 둘러싸고 새로운 사실 공개 등 실체 규명엔 별다른 진전 없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증인들 간에 치열한 공방만 오갔다. 증인으로 소환된 대통령실·국방부 관계자들은 “수사 중인 사안”임을 강조하며 대답을 회피하거나 답변을 거부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전원 불참한 가운데 민주당이 단독으로 개최한 ‘반쪽’ 청문회가 핵심 증인들의 증언 거부 속에 결국 ‘맹탕’ 청문회가 된 것이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이날 불성실한 답변 등을 이유로 이 전 장관과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10분간 청문회장 밖으로 ‘퇴장’시키기도 했다.
이날 청문회엔 지난해 7월 실종자 수색 작전 도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고 채수근 해병대 상병의 사망 및 수사 외압 의혹 사건 관계자 12명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그중 해외 출장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이날 오후 화상으로 출석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을 제외한 10명이 청문회장에 나왔다. 채 상병 사망 338일 만에 처음으로 관련 사건의 핵심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고성이 오갔다. 이 전 장관과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임 전 사단장이 줄줄이 증인 선서를 거부하면서다. 이 전 장관은 “법률상 보장된 권리”라는, 신 전 차관은 “청문회 발언이 (향후 수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국회 법사위는 청문회 후 야당 단독으로 전체회의를 열고 채 상병 특검법안을 통과시킨 뒤 본회의에 회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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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선서 거부는 권리” 야당 “거부하는 자가 범인”
정 위원장은 증인 선서 거부가 이어지자 “증언을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국민은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란 심증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린다”며 “증인 선서 거부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 국회법에 따라 고발 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회법은 정당한 이유 없이 선서 또는 증언을 거부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청문회에서 지난해 7월 30일부터 나흘간 이뤄진 대통령실·국방부·해병대 관계자들 사이의 통화를 수사 외압의 근거로 제시했다. 이 시기는 채 상병 사망과 관련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가 이 전 장관에게 보고되고 경찰에 관련 기록이 이첩됐다가 돌연 회수된 시기다.
실제로 해병대수사단 조사 결과가 이첩된 당일인 지난해 8월 2일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부터 사용한 개인 휴대전화로 이 전 장관에게 세 차례에 걸쳐 직접 전화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임기훈 전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과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과도 통화했다. 그 사이에 이시원·임기훈 전 비서관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사이에도 수차례에 걸쳐 통화가 이뤄졌다.
이 같은 통화를 거쳐 국방부는 경찰에 이첩됐던 채 상병 조사 기록을 회수했고 박 대령은 보직 해임됐다. 이와 관련,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이런 엄청난 전화 내역이 나왔는데 자기들끼리 (입을) 맞춰 아니라고 하니 특검이 필요한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 전 장관은 이에 대해 “해병대 수사단 조사 결과에 의문점이 남아 이첩 보류를 지시했으며 적법한 지시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후 이첩을 강행한) 박 대령에 대한 검찰단 수사 및 인사 조치 검토 지시 역시 독자 판단에 의한 것”이라며 “두 지시 후 대통령실의 전화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유 관리관은 지난해 8월 2일 임 전 비서관과의 통화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묻는 이건태 민주당 의원 질의에 “(임 전 비서관이) 경북경찰청에서 전화가 올 거라고 말해줬다”고 답했다. 채 상병 사망 조사 기록이 경찰에 이첩됐다 돌연 회수되는 과정에 대통령실이 관여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증언이었다. 다만 유 관리관은 ‘전화가 오면 어떤 식으로 대화하라는 지시를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엔 “전화가 올 것이란 안내만 해줬다”고 답했다.
이날 청문회에선 지난해 7월 31일 이 전 장관이 주재한 회의에서 당시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이 작성한 이른바 ‘정종범 메모’의 의미에 대해서도 질의가 이어졌다. 이 메모엔 ‘누구누구 수사 언급하면 안 됨’ ‘사람에 대해서 조치·혐의는 안 됨’ 등 사건 처리 지침으로 보이는 내용이 담겼다.
이 메모를 작성한 정 전 부사령관은 당초 군 검찰 수사 과정에선 “메모 내용은 유 관리관의 발언”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정작 유 관리관은 이날 청문회에서 “(메모 내용은) 장관님의 말씀을 적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전 장관은 “(메모 속) 10가지 지시 사항을 제가 다 지시한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메모 내용에 대해 당시 국방부 장관과 법무관리관, 해병대 부사령관 등의 진술이 미묘하게 엇갈린 셈이다.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이 시작된 첫 단추인 ‘VIP(대통령) 격노설’의 진위에 대한 공세도 이어졌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11년 전 (국정원 댓글 수사) 외압을 폭로한 윤 대통령이 이제 수사 외압 의혹의 한가운데 있다”며 “왜 대통령은 꼬리 자르기를 하느냐”고 비판했다. 전현희 민주당 의원도 “이 사안은 직권남용 등 불법적 행위로 탄핵 사유가 될 수도 있는 어마무시한 일”이라며 공세를 폈다.
청문회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논평을 내고 “민주당 단독 입법 청문회는 대한민국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권력 남용이자 사법 방해”라고 비판했다. ‘이재명 사법 파괴 저지 특위’도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채 상병 특검법 청문회를 열어 경찰과 공수처가 수사 중인 사건에 실질적으로 개입하고 특검 정국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며 “민주당은 특검 정국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해 이재명 지키기에 나서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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