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여야 할 ‘거래 비용’ 눈덩이, 정부 존재 이유 스스로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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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론으로 본 세상
경제학자들은 항상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고 마음 편한 원칙론만 이야기해 자주 비난을 받는다. 농산물이 수입되면 농민들의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물으면, 그래도 정부가 나서지 말고 그냥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을 믿어 보자고 한다. 치솟은 아파트 가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물어도 그냥 놓아두면 시장이 알아서 잘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바로 경제학자다.
보이는 손과 보이지 않는 손 논쟁
달리 표현하면 정부나 공무원이 빵을 몇 개 생산하고 비누를 몇 개 소비하라는 식으로 지시를 내려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사람이 통제하는 경제가 바로 보이는 손에 의한 중앙 통제 경제인데, 이런 정부와 공무원에 의한 중앙 통제 경제는 개인들의 사정을 잘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필요한 양보다 적은 수의 빵을 만들기도 하고, 필요 이상의 비누를 생산해 낭비하게 되기도 한다. 반면, 시장 경제에서는 사람은 전혀 관여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결정된 가격에 빵을 팔고 싶은 사람은 빵을 팔고, 비누를 살 사람은 비누를 살 것이므로 지나침도 없고 모자람도 없이 효율적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다.
그런데 로널드 코스 교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은 던졌다.
“보이지 않는 손의 시장 경제가 그렇게 좋은 제도라면 어째서 자유시장 경제의 중심에 있는 기업들은 내부적으로 중앙 통제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는가?”
한국의 시장 경제 시스템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결국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은 우수한 기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일상을 보면 시장 경제와는 큰 거리가 있다. 만일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운전대(스티어링휠)를 설치하는 직원이 시장 경제를 따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우리가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살 때 흥정을 하듯이, 해당 직원은 아침에 출근해서 현대자동차와 흥정을 벌여야 한다. 오늘은 핸들 하나 설치하면 5000원을 달라고 직원이 말하면 현대자동차는 너무 비싸다고 하면서 3000원으로 하자고 가격 흥정을 벌여야 한다.
그러다가 중간 가격인 4000원으로 합의를 본 후에야 작업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날 핸들 설치보다 자동차 앞 유리 설치가 더 필요해서 회사가 직원에게 오늘 하루만 핸들 대신 앞 유리를 설치하자고 하면 앞 유리를 하나 설치할 때마다 얼마를 받을지 다시 흥정을 해야 할 것이다. 시장 경제라는 것은 결국 흥정에 의해서 가격을 정해야 하는 것이고, 이런 가격은 상황 변화에 따라서 시시각각 변화해야 한다. 마치 주식 시장에서 주식 가격이 매초 바뀌듯이 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이 현대자동차라는 기업 내부에는 이런 시장 경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침에 직원이 출근하면 회사에서 오늘 어떤 일을 하라고 지시가 내려오고, 직원은 그 지시에 따라서 일을 한다. 잘 생각해 보면 북한의 중앙 통제 경제 시스템과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꽃이라고 하는 기업의 내부에서는 막상 시장 경제가 아닌 중앙 통제 경제가 작동하고 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로널드 코스 교수는 시장 경제 시스템에서 반드시 필요한 가격의 흥정이 아무런 비용도 발생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착안했다. 가격 흥정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때로는 금전적 비용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핸들을 설치하는 직원이 오늘따라 5000원을 달라고 고집을 부린다면 해당 금액을 줄 수 없는 현대자동차는 외부에서 핸들을 설치할 수 있는 새로운 직원을 찾아야 할 것이고, 그러다가 오전 작업 시간을 다 보낼 수도 있다.
설사 가격 흥정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합의한 사항을 계약서로 적어 놓기를 원한다면 변호사를 불러서 법적인 서류를 작성하는 금전적 비용이 들어갈 수도 있다. 이런 비용을 코스 교수는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이라고 이름 지었다. 반면, 군대식으로 지시하고 복종하는 중앙 통제 경제는 비록 비효율적이지만 대신 흥정이 필요 없고, 신속한 수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거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 내부에서는 흥정을 하면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기보다는 직원들이 회사가 시키는 일을 재빨리 수행하는 중앙 통제 시스템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코스 교수의 설명이다.
AI로 정부 없는 흥정 가능할 수도
이런 코스 교수의 거래 비용 이론은 법과 정부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기초 이론이 되고 있다. 어떤 공장에서 배출된 오염 물질 때문에 수만 명의 거주자가 피해를 본 경우, 시장 경제 시스템에 따르면 수만 명의 피해자가 해당 공장과 1:1로 협상을 벌여 피해 보상을 받아야 할 것이다. 당연히 엄청난 소송 비용이 발생하고 시간도 한없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나서서 법을 만들고 그 법에 따라서 신속하게 책임 여부를 가린 후 일괄적으로 피해를 보상하는 방법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즉, 거래 비용을 줄이고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국과 미국이 자유무역협정을 맺는다면 한국과 미국의 농민들과 자동차회사를 포함한 기업인들이 모두 만나서 협상을 벌일 수 있다. 그런 협상을 통해서 최선의 해결 방안을 찾을 수도 있는데 이것이 자유시장 경제의 해법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 흥정은 끝이 나지 않을 것이므로, 대신 한국과 미국의 정부가 나서서 모든 농민과 자동차회사 등 기업을 대표해 협상하고 결론을 내는 것이다. 이 역시 시장 경제에서 발생하는 거래 비용이 너무 큰 분야에서는 정부가 국민을 대신해서 흥정을 벌인다는 원리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거래 비용이라는 개념으로 우리 사회에서 법, 정치, 행정과 같은 정부의 필요성을 명확히 보여준 로널드 코스 교수를 한 명의 경제학자로서 매우 존경해 왔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 법원과 정부의 상황을 보면 코스 교수의 이론이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시장 경제의 효율성을 다소 포기하면서도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 도입한 것이 바로 법과 정부인데, 나라 경제의 거래 비용을 줄여줘야 할 정치인과 법조인이 스스로 온갖 개인적인 문제를 일으켜 사법 리스크를 발생시키고, 그런 사적인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오히려 국가와 국민의 거래 비용을 상상도 못 할 수준으로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대립을 위한 대립만 할 뿐 신속하게 처리되는 법안이 전혀 없으니, 적반하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또 법원도 누가 봐도 책임 소재가 명백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절차적인 문제를 들면서 끝없이 소송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렇게 입법부와 행정부가 국가의 문제도 아니고 자신들의 사적인 문제로 끝없는 다툼만 벌이면서 오히려 신속히 해결 가능한 국가 경제의 문제는 한없이 뒤로 밀려서 지연되고 있으니 정부가 국민의 거래 비용을 줄여 주기는커녕 늘리고 있다. 로널드 코스 교수의 이론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시장 경제 시스템의 거래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개개인이 시장에서 흥정을 통해 스스로 해결하는 방안이 더 나아지는 상황이 가까운 미래에 올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과 플랫폼이 개인 간의 흥정을 신속하게 저비용으로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미래가 온다면, 정치인과 법조인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오히려 국민 개개인이 과학 기술의 도움으로 다른 사람과 직접 흥정을 해서 문제를 해결할 날이 올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미래에는 경제학적 측면에서 법과 정부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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