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떠나자! 대왕고래 잡으러? 아니, 참돌고래 만나러

울산 장생포/박근희 여행기자 2024. 6. 22.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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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고래를 찾아 떠난
울산 장생포 여행
'고래바다여행선'을 타고 참돌고래 떼가 출몰하는 장생포 해역으로 나가 간절히 기다린다. 이 바다 어딘가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을 고래를.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대왕고래’ 사냥이 시작됐다. 동해 석유·가스전을 찾는 탐사 프로젝트명이 ‘대왕고래’라 알려지면서 올여름, 고래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설왕설래 중인 가운데 문득 푸른 바닷속 진짜 고래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때마침 지난 8일 울산 장생포 남동쪽 18.5km 정도 지점에서 참돌고래 떼가 ‘목격’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장생포 고래 탐사 코스를 운항하는 ‘고래바다여행선’ 측에 따르면 수온이 올라가는 6~8월은 고래를 발견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시기. 고래를 찾아 울산 장생포항, 장생포고래문화특구로 갔다.

◇고래를 찾아 망망대해로

“1000여 마리 정도로 추정되는 참돌고래떼가 배와 경주하듯 헤엄쳐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올해 고래바다여행선 운항 시작(3월 31일) 후 첫 발견이라서 그날 승선객들도 환호하며 감동했죠. 10년 넘게 고래 탐사선에 오르고 있지만, 아득한 망망대해에서 고래를 발견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지난 12일 오전 10시 울산 장생포고래문화특구에서 고래 탐사 코스를 운항하는 ‘고래바다여행선’의 이호영(69) 항해사는 점잖은 말투로 “오늘 날씨도 맑고 바다 상황도 괜찮으니, 고래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배에 올랐다. 그는 국립수산과학원 고래 탐사에도 참여했던 전문가. 이날 단체 탑승객인 울산 두왕초등학교 학생들은 “진짜 고래를 볼 수 있다고요?” “여기(장생포) 바다에도 고래가 살아요?” 하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40~60대 승선객들도 승무원과 마주칠 때마다 “오늘 같은 날 고래를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선희 승무원이 웃으며 답했다.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고, 고래 마음을 우리가 우째 압니까?”

지난 12일 '고래바다여행선'에 올라 고래 탐사에 나선 두왕초등학교 학생들이 고래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8일에 이어 19일에도 장생포 앞바다에서 '고래바다여행선'에 목격된 참돌고래 떼. / 울산남구도시관리공단

고래바다여행선 측에 따르면 어쩌다 한번 체험 삼아 배에 오르는 여행객들은 고래를 못 볼 확률이 높다. 4~11월 ‘고래 탐사’ 코스를 운항(대인 2만원)하는데, 고래를 볼 확률은 연 10회 미만이다. 그마저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몇 년 전만 해도 운항 기간에 23~24회 정도 발견됐는데, 아쉽게도 점점 횟수가 감소한다”는 게 고래바다여행선을 운영하는 울산남구도시관리공단 측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수온이 올라가는 6~8월에, 고래가 좋아하는 정어리와 오징어가 풍부할 때 고래를 볼 확률이 높다니, 승선객들도 기대감에 부푼 표정이었다.

고래바다여행선의 ‘고래 탐사’ 코스는 ‘출몰 성수기’인 6~8월엔 오전 10시와 오후 2시 두 차례, 이 외 시기엔 주말·공휴일 1차례 운항한다. 오전엔 북쪽인 강동 방면 해역을, 오후엔 화암추 동남 방면 해역을 탐사하고 돌아온다. 33~34마일 이동하며 회항해 다시 장생포항에 닿기까지 3시간쯤 걸린다.

최대 승선 인원 365명, 550톤의 여객선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산업단지로 변한 항구를 뒤로 하고, 출항한 배는 어느새 아득한 바다를 가른다. 이호영 항해사가 망원경을 들고 집중해 바다를 살핀다. 그는 “울산 장생포 해역에선 주로 참돌고래가 목격된다”며 “수면 위로 갈매기 떼가 많이 날고, 하얀 물보라가 유독 많이 일어나는 곳에 돌고래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징후만 알면 일반 승선객도 ‘매의 눈’으로 찾아낼 수도 있다고. 다만 삼치 떼, 멸치 떼도 비슷한 징후를 보이기에 조타실 선원들까지 모두 확인을 거친 후 승선객들에게 방송으로 알린다고. 야외석인 3층 배 난간에 기대 탁 트인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 멍’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난다. 고래를 발견하겠다는 일념에 한시도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이가 한마디. “이건 희망 고문이야!”

이날 부안의 지진 여파 때문이었을까? 오전·오후 두 차례 고래 탐사선에 올랐으나 참돌고래 떼는 보지 못했다. 회항하는 길에 상괭이가 위로하듯 물 위로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졌다.

◇큰돌고래 만나는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긴 이르다. 선착장에서 걸어서 1~3분 거리에 ‘장생포고래박물관’과 박물관의 부속 시설인 ‘고래생태체험관’이 있다. 고래생태체험관에선 살아있는 큰돌고래 가족이, 장생포고래박물관에선 고래 골격 등 이색 전시물이 기다린다. 고래바다여행선에서 고래를 보지 못한 날 아쉬워할 승선객들을 위해 생태체험관과 박물관 등을 할인가에 입장할 수 있는 ‘확인증’을 나눠준다.

우리나라 최초의 돌고래 수족관이 있는 '고래생태체험관'. 관람객이 들어서자 큰돌고래 4마리가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고래생태체험관에 들어서면 해저 터널 형태의 수족관부터 만난다. 우리나라 최초의 돌고래 수족관. 터널로 들어서면 큰돌고래 가족이 관람객을 알아본 듯 헤엄쳐 다가온다. 푸른 물빛 속에 유영하는 돌고래를 보고 있자니 돌고래처럼 이리저리 몸을 움찔거리게 된다. 훅 다가왔다가 장난치듯 도망가는 돌고래는 17년생 ‘장도담’, 몸집이 가장 크고 노련해 보이는 돌고래는 09년생 ‘장꽃분’이다. 장꽃분의 아들은 ‘고장수’는 막내다. 2017년 고래생태체험관의 수족관에서 태어났다. 12년생 ‘장두리’까지 큰돌고래 4마리가 관람객을 반긴다. 2층에 올라가면 수족관의 물 위로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돌고래 가족은 엄연한 울산 시민. 수족관 앞쪽엔 울산남구청장이 발급한 고래주민등록증도 있다. 2층 수족관에선 고래생태설명회를 평일 하루 세 차례, 주말과 공휴일엔 두 차례 운영한다. 서서 봐야 할 정도로 인기다. 평일 오전 10시 고래바다여행선에 오를 경우 오후 1시에 배에서 내려 1시 30분에 하는 고래생태설명회를 듣는다면 시간과 동선 절약은 물론 자리도 ‘확보’할 수 있다. 설명회 전 돌고래들의 ‘워밍업’이 시작되니 미리 자리 잡는 것도 방법이다. 공놀이를 하거나 첨벙 튀어 오를 땐 박수가 터져 나온다.

'고래생태체험관'의 고래생태설명회 중 점프 하는 큰돌고래. 돌고래 수족관엔 큰돌고래 가족 4마리가 살고 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거대한 귀신고래 모형과 브라이드고래 골격 진품 등을 전시하고 있는 '고래박물관'.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고래박물관에 들어서면 압도적 크기의 브라이드고래 골격에 놀란다. 모형이 아닌 진품으로 공룡 골격만큼 거대하다. 혹등고래, 짧은부리참돌고래, 남방큰돌고래의 골격도 박물관을 유영하듯 공중에 전시한다. 입구 쪽엔 선사시대 고래 사냥과 관련된 바위그림 ‘울산 반구대 암각화’도 재현해 놓았다. 귀신고래 실물 모형을 전시한 귀신고래관까지, 관람객이 적을 땐 조금 으스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층에 걸쳐 고래와 포경에 관한 볼거리가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고래박물관과 생태체험관 가까이엔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최초의 호위함이자 35년간 바다를 지킨 ‘울산함’이 퇴역해 정박해 있으니 둘러볼 만하다.

◇‘고래 마을’이었던 장생포

장생포고래문화특구인 장생포 고래 마을은 1960~70년대까지 국내 최대 포경(捕鯨) 기지였다. 국제포경위원회가 상업 포경을 금지한 1986년 전까지만 해도 50여 척의 포경선이 드나들고, 연 1000마리의 고래가 잡혔던 곳. 전국 각지에서 고래 고기를 맛보려는 발걸음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하지만 상업 포경이 금지되면서 고래 마을은 급격히 쇠락했다. 많던 고래 고기 식당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현재는 ‘소라고래집’ ‘장생포고래집’ 등 대여섯 곳이 남아 있다. “택시기사들조차 빈 차로 나가는 일이 많아서 오기 꺼렸다”던 조용한 동네가 반전을 맞은 건 2008년 장생포 지역이 ‘장생포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되면서부터다. 이후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문화마을, 고래바다여행선 등 고래 관광 콘텐츠가 더해지면서 전국에서 유일한 고래 관광 명소가 됐다. 장생포고래문화특구는 지난해에만 150만명이 찾았다. 특구 지정 이후 역대 최대치. 20일까지 열린 수국축제 때도 14일간 48만명이 왔다.

장생포고래문화특구 '장생포항'과 '고래문화마을'을 천천히 오가는 모노레일 아래 수국이 만발해 관람의 재미를 더한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옛 풍경 재현한 고래문화마을

전성기 장생포 풍경은 고래박물관과 고래생태체험관 건너편 고래문화마을에서 엿볼 수 있다. 장생포 옛 고래 마을을 재현해 놓은 테마파크다. 고래생태체험장 부근에서 모노레일(성인 1만1000원)을 타면 고래문화마을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도보 10분 거리여서 6월 말까지 수국이 한창일 땐 천천히 산책길을 걸어봐도 좋다.

마을 내엔 ‘장생포옛마을’을 중심으로 고래조각정원, 고래광장, 고래 만나는 길, 선사시대 고래마당, 오색수국정원 등이 있다. 젊은 층엔 복고풍 여행지, 중장년과 노년층엔 향수를 선사하는 풍경이 가득하다. 고래 고기를 삶아주던 ‘고래막집’부터 고래잡이 선장 집, 옛 장생포 초등학교와 ‘허바허바사장 사진관’ ‘제일 전당포’ ‘장생교복점’ ‘두꺼비문방구’ 등 허름하고 정겨운 간판에 웃음이 나온다. 전시를 위한 공간만이 아니라 장생교복점에선 교복을 대여하고, 고래막집에선 국수 등을 삶아준다. 대형 밍크고래를 해체하는 풍경을 재현한 고래 해체장이나 고래기름을 짜는 설비가 남아 있는 고래 착유장 등 고래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 공간도 지나치면 아쉽다.

옛날 장생포 마을의 고래 해체장을 실물 크기로 꾸며놓은 '고래문화마을'.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고래 고기를 삶아주던 '고래막집'을 재현한 분식점에선 국수를 삶아준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제 환상의 고래를 만날 차례다. 고래문화마을 언덕 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웨일즈 판타지움’은 지난해 개관해 장생포고래문화특구에선 가장 따끈따끈한 곳이다. 고래의 도시 울산 이야기를 담은 몰입형 인터랙티브(상호 작용하는) 미디어 전시관에선 미디어아트로 환생한 혹등고래가 장생포 바다, 태화강 대숲 등을 유영하는 환상적인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속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염원의 길’, 상호 작용하는 미디어아트 ‘반려고래 오셔나리움’은 동심으로 인도한다.

'웨일즈 판타지움'에선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모티브로 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전시를 체험할 수 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고래문화마을' 표지판과 모노레일 너머 울산의 공업단지가 차례로 펼쳐진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웨일즈 판타지움을 나오니 어느덧 노을 질 무렵. 모노레일이 느린 속도로 지나다니고, 거대한 고래 조형물을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홍상원 고래문화마을 팀장은 “시간이 흘러 고래는 이제 동경, 희망, 행운, 바다의 로또처럼 여겨진다”며 “장생포고래문화특구를 찾는 이유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했다.

◇고래를 기다리며

‘대왕고래’는 지구에 현존하는 가장 큰 동물이다. 흰긴수염고래 또는 흰수염고래라고도 불린다. 한국석유공사 측은 프로젝트명에 대해 “프로젝트마다 어류 이름을 붙였는데, 대형이라 대왕고래 이름을 붙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 따르면 대왕고래는 현재까지 국내 해역에서 관찰된 적이 없다. 어딘가 숨어 있을 고래가 우리 바다에도 찾아와 주기를 기대하며 장생포와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 옛 냉동창고에서 책을 읽어본 적 있나요? ]

장생포문화창고 6층의 북카페 '지관서가' 창문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다. 장생포문화창고 저녁 노을은 '울남(울산남구) 9경' 중 하나다. / 울산남구청

가볼 만한 장생포 이색 공간

여행에 책, 전시, 공연을 빼놓을 수 없다면 ‘장생포문화창고’로 가볼 일이다. 장생포고래문화특구 고래문화광장에서 서쪽으로 1.3km쯤 떨어진 장생포문화창고는 방치돼 있던 세창냉동창고를 복합 문화 공간으로 되살려낸 곳.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지역문화 매력 100선(選)’인 ‘로컬100′에도 이름을 올렸다.

전체 6층 건물은 모든 층이 바다 전망을 자랑한다. 낭만을 이야기하기보단 울산 공업단지와 장생포 바다가 어우러져 생경하게 다가온다. 버스킹 공연 등 행사 무대로 쓰이는 1층을 지나 2층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에 가면 이 낯선 풍경의 답을 들을 수 있다.

울산은 1970년대 산업화·공업화의 한 축을 담당했던 도시. 속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듯 기념비를 비롯해 사진,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3·4층은 전시 공간, 6층은 울산에만 7곳의 지점이 있는 북카페 ‘지관서가 장생포점’이 자리한다. 지관서가는 SK 사회공헌사업의 하나로 울산시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SK가 재원을 마련하고, 플라톤 아카데미가 기획한 도서 공간 조성 사업의 결과물이다. 장생포점은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누구나 자유롭게 책을 읽도록 꾸몄다. 책장엔 울산 관련 서적이나 울산 출신 작가들의 책이 눈에 띈다. 시민 대상 인문학 강연도 진행된다. 맑은 날 노을 질 무렵엔 일부러 찾아가 볼 것. 울산남구 9경(울남 9경)에 선정될 만큼 황홀한 일몰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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