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의사와 대화해달라” 총리에 부탁한 ‘하은 엄마’
의사 파업에 삭발 시위한 김정애씨
한덕수 국무총리가 의사 집단 휴진에 항의해 삭발 시위를 했던 김정애(68)씨의 딸 박하은(23)씨가 입원해 있는 충남 천안 단국대병원을 찾았다. 김씨는 한 총리에게 “정부가 아버지고 의사가 어머니면, 우리 환자들과 가족들은 ‘아픈 자식’”이라며 “환자가 없으면 의사가 왜 필요하고, 국민이 죽으면 정부가 왜 필요하냐”고 했다. 한 총리는 “마지막까지 의사들과 대화해달라”는 김씨에게 “의사들이 이야기해보자는 곳은 다 쫓아다니겠다”며 사태 해결에 힘쓰겠다고 했다.
충남 홍성에서 가족과 함께 농장을 운영해온 김씨는 ‘코넬리아드랑게증후군’이라는 희소 유전 질환을 갖고 태어난 하은씨를 2001년 입양해 24년째 돌보고 있다. 하은씨는 양손에 손가락이 하나씩만 있고 제대로 걸을 수도 없다. 몸 상태가 악화할 때마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 왔다.
김씨는 지난 2월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나면서 병원 가동률이 낮아지자, ‘하은이가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하은씨는 지난 4월 폐렴으로 인해 체온이 39도까지 올라 단국대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지만 의료진이 부족해 한 시간 가까이 대기해야 했다고 한다. 김씨는 24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 애 시체 만들고 싶어?’라며 의료진에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이때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뒤로도 하은씨는 단국대병원에 두 번 더 입원 치료를 받았다.
하은씨가 세 번째로 입원한 지 일주일이 흐른 지난 12일, 김씨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삭발한 그는 “정부와 의사 싸움에 환자들 다 죽는다. 의사는 환자 곁으로 돌아와주세요. 대통령님, 제 딸 하은이를 살려주세요’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다. 그다음 날엔 정부서울청사에서 한 총리를 만나 두 시간 동안 환자 가족들이 겪는 고충을 토로했다. 김씨는 “하은이가 치료받다가 아파서 (저세상을) 가면 상관없다. 그런데 치료 못 받고 가면 한이 돼 못 잊는다”며, “국민 생명을 지키는 의사들도 파업을 다시 하지 못하게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김씨의 하소연을 들은 한 총리는 김씨에게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명함을 주고 “언제든 연락하라”고 다독였다. 한 총리는 며칠 뒤 김씨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김씨는 “나는 돼지 키우는 사람이다. 하지만 전쟁을 할 때도 작전이 있는데, 정부가 뭘 할 때도 앞으로 관계된 사람들한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예상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지, 일을 이런 식으로 하느냐”고 했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하면서 의사들의 진료 거부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항의성 질책이었다.
이때 하은씨가 21일 퇴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총리는 이날 단국대병원을 찾아 퇴원 축하 선물로 하은씨에게는 원피스를, 삭발한 김씨에게는 모자를 선물했다. 김씨는 “(의사들은) 환자 목소리 걸고 파업하지 마라. 용납할 수 없다. 하은이 엄마로서, 아픈 환자 가족으로서 환자 이용하는 거, 절대 용서 못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총리에게도 “정부도 양보 좀 해야 한다. 하은이 안아 키우면서, 전공의 선생님들이 고생하는 것을 봤다. 이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다 보니, 그분들이 몇 시간 일하고 얼마 받는지 다 안다”고 했다.
한 총리는 “내년도 의대 정원 확대는 정부가 양보하기는 정말 어렵다”면서도 “그다음 해부터 정원을 늘리는 것에 대해선 정부가 의료계가 통일된 의견을 내면 논의해보자고 길을 열어 놨는데 의료계가 ‘정부가 대화를 안 하려 한다’고 하면 서운하다”고 했다. 그러자 얼마 전 한 총리를 ‘질책’했던 김씨는 이날은 한 총리를 위로했다. 김씨는 “시간이 가면 (의사들도) 총리님 마음을 알고 돌아올 것”이라며 “기운 잃지 말고 설득해달라. 정부도 되돌아볼 것이 있으면 되돌아봐 달라”고 했다. 한 총리는 “의료계 전체가 모이든, 몇 사람이 모이든, 전공의만 모이든, 의대생만 모이든, 교수님들이 모이든, 만나서 얘기해보자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쫓아다닐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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