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초 청각장애인 사제, 미국서 박사 됐다

김한수 기자 2024. 6. 22.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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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서울대교구 박민서 신부
아시아 최초의 청각장애인 사제 박민서(오른쪽) 신부가 5월 23일 미국 시카고 가톨릭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총장으로부터 박사학위증을 받고 있다. /박민서 신부 제공

아시아 최초의 청각장애인 천주교 사제인 서울대교구 박민서(56) 신부가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 신부는 지난 5월말 미국 시카고 가톨릭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에파타! 시노달리타스에 관한 시노드에 응답하는 농인 교회’ 주제로 실천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 신부는 최근 본지와 이메일과 소셜미디어 인터뷰를 통해 “농인(聾人) 사제로서 농인들의 신앙 생활에 관한 박사 논문을 쓰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박 신부의 삶은 청각장애인이 천주교 내에서 자리를 넓혀가는 개척의 역사다. 박 신부는 두 살 때 홍역을 앓던 중 주사를 잘못 맞아 청각장애인이 됐다. 서울농학교 시절 천주교 신자가 됐고 사제를 꿈꿨지만 당시 국내 환경은 청각장애인이 사제가 되기 쉽지 않아 미국 유학이라는 우회로를 거쳤다. 주변의 도움으로 미국 최초의 청각장애인 사제 토머스 콜린 신부를 소개받아 미국에서 1994년부터 10년간 유학하며 학부와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04년 귀국해 가톨릭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2006년 부제(副祭), 2007년 39세의 나이로 사제품을 받았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최초의 청각장애인 신부였다.

사제품을 받은 후 박 신부는 전국과 해외의 한인 성당 150여 곳을 찾아가 호소하고 4만명의 후원금을 모으는 등 청각장애인 전용 성당 건축에 앞장서 2019년 서울 마장동에 에파타 성당이 완공됐다. 박 신부는 1년 동안 주임사제를 지낸 후 안식년을 거쳐 2021년 워싱턴대교구의 파견 요청에 따라 3년간 파견됐다. “당시 한국에는 수어를 하는 신부가 10명이 넘었는데, 워싱턴대교구엔 청각장애인 성당은 있는데 수어를 하는 사제가 없었거든요.”

워싱턴대교구 성 프란치스코 농인성당 담당사제와 모교인 갈로뎃대학교 교목 사제 등으로 활동하던 그에게 거의 20년 전 석사과정을 지도했던 교수가 연락해 “박사 공부를 하라”고 권했다. 2021년 8월부터 시작한 박사과정은 코로나 와중이라 비대면 화상(줌) 강의로 진행됐다. 수어 통역사 2명이 20분씩 번갈아 통역해주고 지도 교수와 거의 매일 소셜미디어로 필담(筆談)을 주고받았지만 한국어, 한국 수어, 미국 수어에 이은 ‘네 번째 언어’인 영어로 논문을 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사제가 됐는데 왜 박사 공부가 필요하냐”며 포기하려 할 때마다 지도교수는 “당신이 포기하면 가톨릭 농인교회에 대한 박사 논문을 쓰려는 농인이 없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지도 교수의 제안에 따라 한국의 청각장애인 천주교 공동체를 주제로 잡았다. 서울의 청각장애인 신자 100여 명이 적극적으로 설문에 참여해 청각장애인들은 수어 통역이 있는 청인(聽人) 성당보다는 청각장애인 전용 성당을 더 선호하는 이유, 청각장애인 신자들이 사목적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 등을 논문에 담았다고 했다.

박민서 신부에게 박사 과정 진학을 권하고 논문을 지도한 카르멘 낸코-페르난데스(왼쪽) 교수와 기념 촬영한 박민서 신부. /박민서 신부 제공

워싱턴대교구는 박 신부의 활동을 보면서 미국인 사제 중 한 명을 청각장애인 전담 사제로 지명했다. 그는 박 신부에게 6개월간 농인 사목 방법과 미국 수어를 배워 지난 1월부터는 박 신부의 뒤를 이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오는 8월 귀국 예정인 박 신부는 “무엇을 하든 제 영적 도움이 필요한 농인들이면 어디서나 언제든지 곁에서 함께 있어드리고 싶다”며 “우선 2026년 서울에서 열리는 제4회 아시아 가톨릭 농인 대회 준비를 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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