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인간 대체 불가…흥행부진 ‘원더랜드’ 호평받는 이유

2024. 6. 22.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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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전지적 시네마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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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감독의 신작 ‘원더랜드’는 흥행이 부진함에도 모성의 재창조, 따뜻한 인간주의로 호평을 받는다. 극중 바이 리(탕웨이)는 이미 사망했지만 딸 아이를 위해 태블릿PC 안에 존재하며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아니 살아 있을 때는 하지 못했던 육아를 실천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바이 리의 엄마(포기정)이자 아이의 할머니 눈에는 불안하다. ‘AI 바이 리’가 끝까지 아이를 돌볼 수 있을까, 엄마의 실체를 결국 아이는 알아 채지 않을까, 하는 걱정때문이다. 결국 바이 리의 엄마는 바이 리 서비스를 삭제한다. 더 큰 모성이 작은 모성을 이긴다. AI는 인간 엄마를 대체할 수 없다. 죽은 자는 죽은 자이고 남는 자는 남는 자이며 후회는 후회일 뿐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사를 대신할 수는 없다, 는 것이 ‘원더랜드’의 메시지이다.

‘프리 가이’는 AI의 밝고 긍정적인 면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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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인공지능형 로봇, 합성 인조인간의 실현은 모두 순식간의 일이다. 적어도 87세의 리들리 스콧 감독은 2094년이나 2104년쯤이면 ‘그런 존재’들이 인간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한다. 불과 70~80년 후의 일이다. 리들리 스콧은 2017년 내놓은 ‘에이리언 : 커버넌트’와 2012년의 ‘프로메테우스’에서 그 가능성을 농후하게, 비교적 확신을 가지고 내비친다. 그 결론은 올 여름에 나올 ‘에이리언 : 로물루스’에서 전개될 것이라고 한다. 스콧의 이 작품들은 일명 『에이리언 시리즈 프리퀄 3부작』으로 불리운다. 마지막 3부의 끝은 자신이 1987년에 만든 시리즈 1편이자 원조격 작품인 ‘에이리언’으로 연결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셈이다.

‘에이리언 : 커버넌트’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은 월터와 데이빗(둘 다 마이클 패스밴더이다. 1인2역)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두 존재 모두 AI형 합성인간이다. 데이빗이 이전 버전이고 월터는 데이빗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업그레이드 시켰으나 대신 훨씬 사고 지능의 패턴을 단순화 시킨 존재이다. 데이빗은 과거에서 왔지만 미래 행성에 살고 있으며 다시 과거의 세상으로 돌아가 새로운 인류를 만들려고 한다. 그가 이 괴기스러운 에이리언의 행성에 커버넌트 호를 불러 들인 것은 돌아가려는 목적때문이다. 월터는 데이빗이 인간의 창조주가 되려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똑같이 생긴 둘은 서로를 죽여야 할 운명이 된다. 내가 거울 속의 나를 죽이는 것, 우리가 만든 무엇이 우리를 죽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과학문명의 미래일 수 있다는 경고다.

AI 기술에 의한, AI를 위한, AI의 영화가 줄을 잇는다. 라이언 레이놀즈 주연의 2021년 영화 ‘프리 가이’는 RPG 게임의 NPC(논 플레이어 캐릭터)가, 그러니까 게임 안의 병풍 캐릭터, 곧 엑스트라가 어느 날, 스스로 히어로 캐릭터로 진화해 게임을 지배해 가는 이야기이다. 이 게임 속 캐릭터는 결국 그것을 만들어 내는 캐릭터 창조주, 곧 게임 개발자와 교감까지 한다. AI인 NPC가 스스로 진화해 주인공이 된다는 이야기는 익명의 존재로 살아가는 대중 하나하나가 스스로 자립해 주체적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는 정치적 메타포를 지닌다. 영화 ‘프리 가이’는 의외로 AI 신기술의 밝고 긍정적인 면을 그린 작품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은 더욱 활기가 넘친다. 극중 인물들은 천재적인 게임 개발자(마크 라이런스)의 막대한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게임 속으로 들어 가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 내려 한다. 게임 밖 인물들은 게임 속 캐릭터로 치환된다. 현실과 가상은 뒤죽박죽이 된다. 2018년에 나온 이 영화는 컴퓨터 게임과 게임의 기반이 되는 AI 기술 및 그에 대한 상상력이 도약에 도약을 거듭하고 있음을 보여 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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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어드벤처 장르의 몇몇 영화에도 불구하고 AI 영화들은 대체로 결국 인간이 지닌 상상력 자체가 인공화·규격화되는 불길한 미래를 시사한다. 생활 패턴이 단일화되고 사상이 획일화되고 있으며 심지어 사고의 수순이 이진법화될 수까지도 있음을 보여 준다. 그건 인간에겐 약이 아니라 독이다. 공포스러운 환경이다.

AI의 미래를 그리는 영화들이 유토피아적이기 보다 대체로 디스토피아적인 이유는 그 때문이다. AI가 지배하는 미래, 완벽하게 컴퓨터라이징화된 미래는 불안정하고 음습하다. 미래는 알 수 없는 무엇일 때에만 매력이 있다. 미래나 미래적인 존재가 막상 얼굴을 드러내면 현실은 더욱 더 끔찍해진다. 조너던 글레이저(현재 국내에서 지식인층에게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홀로코스트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감독)는 2014년 내놓은 ‘언더 더 스킨’이란 영화에서 아름답고 섹시한 여성(스칼렛 요한슨)의 몸 속에 외계 존재가 들어 가 있다는 설정의 얘기를 펼친다. 그건 곧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정신적, 정치적, 사회과학적) 괴물에 대한 얘기인 바, 우리보다 앞선 존재나 기술, 혹은 과학 문명(AI)이 결국 우리 자신을 잡아 먹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크리에이터’엔 인간과 AI 하이브리드 등장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AI로봇이 인간에게 적대 행위를 일삼는다는 얘기는 수많은 영화가 그동안 은근하고, 꾸준하게 해왔다. ‘아이, 로봇’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동명 단편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인공지능 로봇 써니가 자신을 만든 래닝 박사(제임스 크롬웰)를 살해하고 은폐했는데, 이를 눈치 챈 스프너 형사(윌 스미스)가 뒤를 좇는다는 이야기이다. 당초 써니가 용의자로 의심받을 때 로봇 심리학자인 수잔 캘빈(브리짓 모나한)이 그를 상담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상담에서 수잔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이 올바로 적용됐는지를 따진다. 즉 1)로봇은 인간을 해할 수 없다. 부칙: 인간이 해 입는 상황을 놔 둘 수 없다. 2) 1)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3) 1),2)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언뜻 보면 매우 간단한 논리 같지만 이 세 정의가 얽히면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로봇을 제거하라는 인간의 명령에 불복종 하고 거꾸로 명령을 내린 인간을 살해하게 되는 항명과 저항이 가능해진다. 아시모프의 3원칙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법만큼이나 단순한 척 사실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사고를 요한다. 영화 ‘아이, 로봇’의 스프너 형사는 결국 수잔 캘빈과 함께 인공지능 로봇 써니의 새로운 사양인 NS-5 모두를 폐기하려고 한다. 미래는 역설적으로 파기됨으로써 살아 남는다.

‘에이리언 : 커버넌트’의 ‘커버넌트’는 서약이란 뜻이다. 새로 나올 ‘에이리언 : 로물루스’의 로물루스는 로마를 만든 건국자란 뜻이다. AI는 새로운 제국을 건설할 것인가. AI가 진화하는 끝은 어디인가. AI는 어떻게 인간과 공존해 나갈 것인가. 2014년 스파이크 존스가 만든 매력적인 AI영화 ‘그녀(Her)’의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는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의 폰 속에서 존재하며 그의 침대 안에서 같이 잠을 자고 같이 회사를 다니며 같이 밥을 먹고 사랑을 나눈다. 사만다는 실제 사람인 이사벨라(포샤 더블데이)를 매개로 육체적인 사랑까지 나누려고 한다. 2017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주인공 K(라이언 고슬링)의 AI 연인 조이(아나 데 아르마스)는 집에서 그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에 불과했지만, K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가 위험지구에 임무를 수행하러 갈 때 따라 갔다가 파괴된다. K는 조이의 존재가 사라진 후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다. 레플리컨트(복제인간)인 K는 자신이 아버지=창조자(해리슨 포드)를 찾는다는 의미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짐작 못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로빈 윌리엄스는 2000년에 ‘바이센테니얼 맨’이란 영화에서 AI로봇 앤드류로 나온다. 단순한 가사 로봇이었던 앤드류는 자신의 회로에 떨어진 마요네즈 한 방울 때문에 지능과 호기심이 생긴다. 이 둘은 진화의 필수요소다. 앤드류를 소유한 가정의 아버지(샘 닐)는 앤드류를 아들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24년 전 AI 영화에서는 진화한 로봇이 불량품인지 보호해야 할 또 다른 인간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순진하다. 요즘의 AI는 파격에 파격이다. 지난 해 개봉돼 ‘폭망’한 AI 영화 ‘크리에이터’는 인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AI가 LA에 핵폭탄을 터뜨린 후 인류와 AI 간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벌어지지만 인간과 AI간 하이브리드인 아이 한 명이 미래를 구원한다는 이야기다.

AI는 과연 우리와 전쟁을 벌일 것인가. 로봇3원칙을 응용하면, 사람이 사람을 해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이 전쟁을 벌이지 않으면 AI는 인간과 싸우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인간 탓이다. AI 탓이 아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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