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인간 대체 불가…흥행부진 ‘원더랜드’ 호평받는 이유
오동진의 전지적 시네마 시점
‘프리 가이’는 AI의 밝고 긍정적인 면 그려
‘에이리언 : 커버넌트’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은 월터와 데이빗(둘 다 마이클 패스밴더이다. 1인2역)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두 존재 모두 AI형 합성인간이다. 데이빗이 이전 버전이고 월터는 데이빗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업그레이드 시켰으나 대신 훨씬 사고 지능의 패턴을 단순화 시킨 존재이다. 데이빗은 과거에서 왔지만 미래 행성에 살고 있으며 다시 과거의 세상으로 돌아가 새로운 인류를 만들려고 한다. 그가 이 괴기스러운 에이리언의 행성에 커버넌트 호를 불러 들인 것은 돌아가려는 목적때문이다. 월터는 데이빗이 인간의 창조주가 되려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똑같이 생긴 둘은 서로를 죽여야 할 운명이 된다. 내가 거울 속의 나를 죽이는 것, 우리가 만든 무엇이 우리를 죽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과학문명의 미래일 수 있다는 경고다.
AI 기술에 의한, AI를 위한, AI의 영화가 줄을 잇는다. 라이언 레이놀즈 주연의 2021년 영화 ‘프리 가이’는 RPG 게임의 NPC(논 플레이어 캐릭터)가, 그러니까 게임 안의 병풍 캐릭터, 곧 엑스트라가 어느 날, 스스로 히어로 캐릭터로 진화해 게임을 지배해 가는 이야기이다. 이 게임 속 캐릭터는 결국 그것을 만들어 내는 캐릭터 창조주, 곧 게임 개발자와 교감까지 한다. AI인 NPC가 스스로 진화해 주인공이 된다는 이야기는 익명의 존재로 살아가는 대중 하나하나가 스스로 자립해 주체적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는 정치적 메타포를 지닌다. 영화 ‘프리 가이’는 의외로 AI 신기술의 밝고 긍정적인 면을 그린 작품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은 더욱 활기가 넘친다. 극중 인물들은 천재적인 게임 개발자(마크 라이런스)의 막대한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게임 속으로 들어 가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 내려 한다. 게임 밖 인물들은 게임 속 캐릭터로 치환된다. 현실과 가상은 뒤죽박죽이 된다. 2018년에 나온 이 영화는 컴퓨터 게임과 게임의 기반이 되는 AI 기술 및 그에 대한 상상력이 도약에 도약을 거듭하고 있음을 보여 준 작품이었다.
AI의 미래를 그리는 영화들이 유토피아적이기 보다 대체로 디스토피아적인 이유는 그 때문이다. AI가 지배하는 미래, 완벽하게 컴퓨터라이징화된 미래는 불안정하고 음습하다. 미래는 알 수 없는 무엇일 때에만 매력이 있다. 미래나 미래적인 존재가 막상 얼굴을 드러내면 현실은 더욱 더 끔찍해진다. 조너던 글레이저(현재 국내에서 지식인층에게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홀로코스트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감독)는 2014년 내놓은 ‘언더 더 스킨’이란 영화에서 아름답고 섹시한 여성(스칼렛 요한슨)의 몸 속에 외계 존재가 들어 가 있다는 설정의 얘기를 펼친다. 그건 곧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정신적, 정치적, 사회과학적) 괴물에 대한 얘기인 바, 우리보다 앞선 존재나 기술, 혹은 과학 문명(AI)이 결국 우리 자신을 잡아 먹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크리에이터’엔 인간과 AI 하이브리드 등장
‘에이리언 : 커버넌트’의 ‘커버넌트’는 서약이란 뜻이다. 새로 나올 ‘에이리언 : 로물루스’의 로물루스는 로마를 만든 건국자란 뜻이다. AI는 새로운 제국을 건설할 것인가. AI가 진화하는 끝은 어디인가. AI는 어떻게 인간과 공존해 나갈 것인가. 2014년 스파이크 존스가 만든 매력적인 AI영화 ‘그녀(Her)’의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는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의 폰 속에서 존재하며 그의 침대 안에서 같이 잠을 자고 같이 회사를 다니며 같이 밥을 먹고 사랑을 나눈다. 사만다는 실제 사람인 이사벨라(포샤 더블데이)를 매개로 육체적인 사랑까지 나누려고 한다. 2017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주인공 K(라이언 고슬링)의 AI 연인 조이(아나 데 아르마스)는 집에서 그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에 불과했지만, K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가 위험지구에 임무를 수행하러 갈 때 따라 갔다가 파괴된다. K는 조이의 존재가 사라진 후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다. 레플리컨트(복제인간)인 K는 자신이 아버지=창조자(해리슨 포드)를 찾는다는 의미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짐작 못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로빈 윌리엄스는 2000년에 ‘바이센테니얼 맨’이란 영화에서 AI로봇 앤드류로 나온다. 단순한 가사 로봇이었던 앤드류는 자신의 회로에 떨어진 마요네즈 한 방울 때문에 지능과 호기심이 생긴다. 이 둘은 진화의 필수요소다. 앤드류를 소유한 가정의 아버지(샘 닐)는 앤드류를 아들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24년 전 AI 영화에서는 진화한 로봇이 불량품인지 보호해야 할 또 다른 인간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순진하다. 요즘의 AI는 파격에 파격이다. 지난 해 개봉돼 ‘폭망’한 AI 영화 ‘크리에이터’는 인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AI가 LA에 핵폭탄을 터뜨린 후 인류와 AI 간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벌어지지만 인간과 AI간 하이브리드인 아이 한 명이 미래를 구원한다는 이야기다.
AI는 과연 우리와 전쟁을 벌일 것인가. 로봇3원칙을 응용하면, 사람이 사람을 해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이 전쟁을 벌이지 않으면 AI는 인간과 싸우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인간 탓이다. AI 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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