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삶에서 아름다운 건 영광의 순간 아닌 ‘과정’
‘미오기전’(이유출판)을 읽고 나서, 한국은 이 책을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본다고 해서 책을 읽은 적은 별로 없는데, ‘미오기전’은 순전히 다들 보기 때문에 본 책이다. 책의 위기를 말하는 시기에 어떤 점이 독자들이 이 에세이집을 집어들게 하는지 알고 싶었다. 남은 페이지가 아쉽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고, 읽고 나서는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소셜미디어에 서평을 올려 유명해진 저자 김미옥의 삶은 한때 유행했던 ‘존버 정신’ ‘중꺾마’ 등과는 완전히 결을 달리 한다. 이 말들은 세상이 거지 같아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티고, 흐름에서 밀리지 않으면 결국 자기 시대가 온다는 말이다. 한 번도 여성으로, ‘아줌마’로, ‘마이너’로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죽어도 버티라”고 하는 마초스러운 주문이다. 김미옥의 책에는 이런 게 없다. 그렇다고 박제된 것 같은 ‘만들어진 여성성’이 있느냐? 오빠들의 실수로 탄생한 어린 시절 ‘맹구 머리’의 추억과 같은 웃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있을 뿐이다. 그냥 살아남은 처절한 시간들이 있다. 그 속에서 아름다운 것은 ‘과정’이다.
마초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성성에 집중한 것도 아닌,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직진형 작가의 탄생기, 아니 생존기가 ‘미오기전’이다. 텍스트로서 이 책의 최대 미학은 역시 스타일일 것 같다. 억지로 쌓아올리는 감동 전략이 없고, 되돌아본 성공에 대한 미화와 자기 연민 따위도 없다. 시간순으로 작성되지도 않았고, 의식의 흐름대로 쓴 것 같은데, 독자의 감정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그리고 웃게 만든다.
많은 이들이 ‘미오기전’ 스타일을 따라 할 것 같고, 이 스타일의 에세이 르네상스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전성 시대에 누가 책을 보겠냐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한국의 책은 김미옥과 함께 다시 한번 스타일 혁명을 맞을지도 모르겠다. “살아보니 정말 좋은 사람은 잘 까먹는 사람이다. 다 잊어버려야 한다.” 내가 본 문장 중 단연 최고의 문장이다. “두고 보겠다”는 사람만 많은 시대, 영광의 순간이 아니라 과정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나는 바보같이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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