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땐 똥 삭혀 생화학 공격… 北풍선으로 본 ‘인분 공격史’

이미지 기자 2024. 6. 2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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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북한 오물 풍선으로 본
‘똥 공격’의 역사

미사일도 아니고, 핵무기도 아니다. 남과 북으로 나뉜 땅의 긴장감이 묵직한 ‘똥’이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북한이 보낸 똥 풍선은 휴전선을 넘어 남쪽에 상륙했다. 충청과 전북, 경남·경북 등 전국 778곳에 떨어진 오물 풍선은 차 유리를 부쉈고, 어느 집 마당에 떨어지기도 했다. 이게 무슨 변(變 혹은 便)인지!

모두가 매일 마주하는 똥인데, 북한이 탄저나 천연두, 페스트, 콜레라, 보툴리눔 같은 생물 무기를 배양·생산하고 있다는 사실과 버무려지며 ‘풍선을 통한 생화학 공격’에 대한 공포로 변했다. 한국갤럽 설문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대남 오물풍선 살포가 ‘위협적’이라는 응답이 60%나 됐다. 실질적 위협은 되지 않는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오물 풍선에서 투하된 물건 중 생화학 공격의 매개체는 ‘분변’일 것”이라면서도 “풍향과 풍속 등 환경적 요소를 고려할 때 가능성이 낮다”고 분석했다.

인간이 태어나 자신의 힘으로 내놓는 첫 번째 생산물인 똥. 모두가 배출해 내지만 고약한 냄새와 독성을 가진 ‘그것’은 인류 역사의 가장 원초적인 혐오물이자 정신 무장을 단번에 흐트러뜨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돼 왔다.

◇조선판 생화학 무기

역사적으로 인간은 똥을 피하고 혐오해 왔다. 분변이 식중독이나 콜레라, 장티푸스 전염의 매개체가 된다는 과학적 사실을 알기 전부터 인간은 똥을 혐오하고, 피함으로써 건강을 지켜 왔다.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음식물을 소화하고 남은 찌꺼기인 똥은 전쟁에서도 빛을 발할 정도로 공격성을 가진 무기였다. 조선시대에 정약용이 외적의 침입이 잦은 접경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향토방위 전술·전략을 저술한 ‘민보의’에서는 대나무 통에 넣은 똥물을 쏘는 ‘분포(糞砲)’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말 그대로 ‘똥 대포’. 몸에 상처를 입은 왜병은 상처를 파고든 똥독으로 사망했고, 신체 건강한 왜병도 똥물을 뒤집어쓴 후 전의를 잃는다는 것이었다. 똥을 이용한 공격은 조선 후기 학자 송규빈이 쓴 ‘풍천유향’에서도 발견된다. 공격은 더 독해진다. 똥을 모아 1년 정도 삭힌 금즙(金汁)을 공격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지독한 냄새와 독성을 가진 조선판 생화학 무기인 셈이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대나무 죽창으로 만든 덫을 놓았다. 이 죽창엔 식물의 독이나 사람의 똥을 발랐다. 죽창에 찔려 자창을 입을 뿐더러 세균에 감염되도록 한 것이다. 베트남 군인들의 똥 바른 죽창에 대응하기 위해 미군은 정글에 원숭이 똥과 비슷하게 생긴 송신기를 놓았다. 베트남 군인들의 눈을 속이고, 진동을 감지해 이동 경로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똥 공격을 받고, 똥과 비슷한 기술로 승부하려던 미국은 직접 똥을 바른 베트남에 패배했다.

◇정신적 타격에도 효과적

근현대 시대의 도시는 똥을 처리하며 발달해 왔다. 산업화 이후 진행된 도시화의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이 매일 배출하는 분변을 처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화조가 개발되고, 오수 처리 시설이 확산하면서 도시는 오물로 인한 냄새와 오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똥 공격은 여전히 유효하다. 신체적 타격이 아닌 정신적 타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조선DB

“똥이나 처먹어라 이 새끼들아!” 1966년 9월 22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똥물이 튀었다. 대정부 질문을 하던 무소속 김두한 의원이 사카린 통에 담아온 똥물을 국무위원석에 퍼부은 것이다. 그는 “선열의 얼이 담긴 파고다공원(탑골공원)에서 퍼왔다”고 했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가 건설 자재를 가장해 사카린 원료를 위장·밀수입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이 들끓을 때였다. 당시 본지 기사는 “(정일권 총리 등은) 오물세례를 받아 양복이 흠뻑 젖었다”고 썼다. 선열의 얼이 담겼다 해도 똥은 똥. 이 사건으로 김두한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으나 내각 총사퇴 등의 파장이 이어졌다.

2016년 벨기에 브뤼셀 폭탄 테러 용의자의 가방에서는 썩은 동물의 생식기와 대변이 담긴 봉지가 발견됐다. 영국 매체 데일리 메일은 “식량 공급망에 독을 풀거나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하는 물질로 사용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최루탄·물 대포에 맞서는 방법도 된다. 2017년,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를 불러온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던 반정부 시위대는 푸푸토프(poopootov)라는 생화학 무기로 전투 경찰에 맞섰다. 인분과 물을 섞은 똥 칵테일이었다. 이를 담은 병에는 ‘애정을 담아’라는 글귀를 적었다. 애정을 담아 투척한 인간의 똥이 장갑차에 범벅이 되고, 무장한 경찰에게 뿌려졌다. 마리에리스 밸디즈 베네수엘라 사법감사관이 이를 ‘생화학 무기’로 규정할 정도였다. 사실은 생화학 무기보단 똥물을 맞은 전투 경찰들이 정신적 타격을 입은 게 컸지만.

◇인분 전투 벌이는 북한의 귀한 똥

북한은 왜 똥을 보냈을까?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대남 오물 풍선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귀신들에게 보내는 진정 어린 성의의 선물”이라며 표현의 자유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계속 계속 주워담아야 할 것” “앞으로 한국 것들이 우리에게 살포하는 오물량의 몇 십 배로 건당 대응할 것”이라고도 했다.

북한이 지난 8일부터 이틀 간 오물풍선 330여개를 살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합동참모본부가 9일 밝혔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은 전날부터 9일 오전 10시까지 330여개의 오물풍선을 띄웠다. 이 중 80여 개가 낙하했다. 다만 안전에 위해가 되는 물질은 없었으며, 현재 공중 떠 있는 풍선은 식별되지 않았다. 사진은 이날 서울 잠실대교 인근에서 발견된 북한의 대남 오물풍선. (합동참모본부 제공) 2024.6.9/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진정 어린 선물’이라는 말이 진정일 리는 없지만, 북한에서는 똥이 귀한 게 사실이다. 화학 비료가 없어 인분을 거름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매년 초 인민들에게 똥 모으기 과제를 하달하는 ‘인분 전투’도 벌인다. 공장 기업소 노동자는 1인당 500kg, 인민반은 가구당 150kg의 퇴비 과제를 10일간 수행해야 한다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처벌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똥을 훔쳐가는 도둑도 있고, 갑작스러운 신호에도 꾹 참고 집까지 뛰어가 볼일을 해결한다. 인분 값은 100kg에 1700~3400원 수준. 쌀 3~4kg을 살 수 있는 가격이다.

비료뿐 아니라 구충제도 부족한 북한에서 인분은 기생충 감염의 매개체가 된다. 2017년 JSA를 넘어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배에서도 30마리의 기생충이 발견됐다. 가장 긴 회충의 길이가 무려 27㎝에 달했다. 감염된 사람의 배설물이 흙을 통해 채소에 묻고, 이 채소를 섭취한 사람이 다시 감염되는 악순환이다.

실질적인 위협보다는 ‘감정적 공격’에 가깝다. 국내 분뇨 연구의 권위자로 ‘똥 박사’란 별칭으로 불리는 박완철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명예 연구원은 “전염병이 창궐할 때는 분변으로 전염병이 전파될 수 있지만 한국은 선진국에도 뒤처지지 않는 오수 처리 기술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바로 분뇨 처리를 할 수 있다”며 “똥독이 오를 정도로 양이 많지도 않고, 실질적 위협도 되지 않지만, 똥이 가진 ‘혐오감’을 고취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전히 똥은 정신적으로 치명상을 일으키는 존재다. ‘머릿속에 똥만 찼다’는 비난은 지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금치산자 취급을 하는 것이고, ‘똥 멍청이’는 멍청하다 못해 똥만큼 멍청하다는 강조다. ‘그래, 네 똥 굵다’나 ‘똥배짱’은 꺾이지 않는 고집에 대한 기권이기도 하다. 평범한 단어도 똥을 붙이면 부정과 혐오가 된다. 군대나 직장 등에서 부당하게 괴롭히는 행동은 ‘똥 군기’라는 단어로 그 심각성이 더해지고, ‘똥 손’은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기질처럼 여기게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국에 4397곳(2022년 기준)의 공공하수처리장이 있는 국가. 인구의 96.7%가 하수 처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고약한 똥도 하수처리장을 거치면 맑은 물로 바뀐다. 감정을 공격하는 똥은 귀를 막아 방어할 수 있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다. 더러워서 피하는 것. 오늘도 시원하게 쾌변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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