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루에 쪄낸 부드러운 닭과 쑥의 조화…3대가 연구한 삼계탕

2024. 6. 2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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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영의 ‘SNS시대 노포’
사진 1
복날 즈음이면 선배들 손에 이끌려 삼계탕집을 다녔다. 하지만 진정으로 삼계탕을 좋아해본 적은 없다. 물에 빠진 퍽퍽한 닭보다는 기름에 굽거나 튀긴 닭이 월등히 맛있으니까. 그런데 지도 앱에서 ‘3대 삼계장인(사진1)’이라는 상호를 발견했다. 무려 3대가 삼계탕 장인? 메뉴 속 ‘수비드 닭볶음탕’은 뭘까? 결국 호기심을 못 참고 찾아가봤다.

매장은 세련되고 깔끔했다. 노포 특유의 낡은 느낌이 없어 찾아보니 현재의 가게는 2018년 옮겨온 곳이다. 입구 동판에 이곳의 역사가 따로 기록돼 있다. 1940년대 생인 창업자 부부는 1973년 서초1동에서 ‘불로집’이라는 이름으로 창업 후 육수를 3일간 끓이는 방법 등 이곳만의 조리법을 확립했다. 2대손은 닭을 시루에 쪄내는 방법을 개발하고 핵심 메뉴인 잣삼계탕(사진2), 녹두삼계탕, 쑥삼계탕을 만들었다. 1989년생인 3대 사장은 프랑스 요리에서 많이 쓰는 저온 장시간 가열법인 ‘수비드(Sous Vide)’ 조리법을 도입해 수비드 토종닭 백숙, 수비드 닭볶음탕 메뉴를 개발했다.

사진 2
3대 사장은 ‘손맛’으로 표현되던 선대의 조리법을 정확한 시간·온도로 표준화했고, 가게 이름도 바꾸면서 브랜딩에 더욱 힘썼다. 실내 중앙에 있는 뻥 뚫린 주방 너머로 조리하는 광경이 다 보이는데 그 위에 한자로 박력 있게 쓰인 상호, 좌우에 있는 나무 격자 미닫이문, 벽에 걸린 족자 등 모든 것이 전통을 강조한다. 메뉴판 위쪽에는 ‘3대간 이어져온 시루에 쪄낸 산삼 삼계탕’ ‘3대를 거쳐 만들어낸 수비드 요리’라고 크게 써있다.

‘삼계탕 드시는 방법’이라는 별도의 안내문에 따르면 스낵처럼 작게 말린 산삼배양근을 먼저 먹고, 고기를 국물에 찍은 뒤 함초소금에 찍어 먹어야 한다. 찹쌀밥은 ‘건강한 국물’과 섞어 먹어야 하는데 ‘꼬돌한 식감’을 느끼려면 섞지 않는 게 더 좋다. 소금은 함초소금과 천일염 2가지가 나오고, 찹쌀밥은 놋그릇에 나오며, 술은 장인들의 전통주를 준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이 모든 디테일은 계속 진화한 결과다.

고객들 후기에는 이곳에서의 새로운 경험과 맛의 디테일에 대한 것이 많다. “국물이 꾸덕” “닭이 엄청 부드럽고 연하고 건강한 맛” “풍미 가득가득에 크리미한 닭볶음탕” 등 국물 농도와 닭의 부드러움에 대한 표현이 특히 많다.

점심시간에는 항상 줄이 길다. 초·중·말복에는 전날에서 후일까지 총 3일씩, 7월 점심시간에는 삼계탕만 된다. 수비드 메뉴를 먹으려면 저녁에 가야 한다. 잣삼계탕·녹두삼계탕·쑥삼계탕 1만9000원, 수비드 닭볶음탕 한 마리 4만원.

이민영 여행·미식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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