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김정은 위원장이 기억해야 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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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 방북에 고무된 김정은 위원장
“북·러 관계 최고조기” 평가했지만
6·25때 김일성의 거듭된 도움 요청
스탈린에 거절당한 역사 되새겨야
」
그보다는 더 오래된,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 두나라의 관계는 과거 조·소 관계시절과도 대비할 수 없는 최고조기”라고 자평하였다고 한다. 혹시 70여년 전의 쓰라린 기억에 생각이 미친 것인가. 지난 일의 기억, 역사는 이럴 때 매우 요긴한 것이다.
1949년 이 지역의 정세는 다시 큰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는 오랜 기간 혼미 상태이던 중국 내전이 드디어 공산 측의 승리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태 전개에 대하여 두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은 각기 대처에 부심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은 먼저 국민당 측을 지원하였고 그 다음에는 국공 화해를 추진하여 보았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마침내는 맥아더와 펜타곤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산 정권과의 화해와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대만의 국민당 세력과는 손절하는 정책이었다.
다른 한편, 중국 대륙의 새로운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이념적 동지인 소련의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은 중국이 내란 와중의 어려움에 처하여 있을 때 약체인 국민당 정부를 압박하여 특히 동북 지역에서 많은 이권을 확보하였다. “얼마나 좋소! 뤼순항도 우리 것이고 다롄도 우리 것이야, 동청 철도도 우리 것이고 ….” 대전 후 스탈린이 지도를 펴놓고 측근들에게 자랑한 것이다.(펠릭스 추에프 『스탈린을 위한 변명』, 『몰로토프 회고록』)
중국이 통일된다는 것은 그에게는 가장 나쁜 소식이었다. 그는 공산 측에 창장(장강) 이남으로는 진격하지 말라는 사려 깊은(!) 충고를 하였다. 미국이 개입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마오쩌둥은 이를 일축하고 계속 남진하여 대륙을 통일하여 버렸다. 남은 것은 대만에 있는 국부군 세력이었는데 해·공군이 열세인 공산군으로선 이를 평정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념의 동지인 소련 측에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스탈린은 조롱같은 태도로 이를 끝내 거절하였다. 그 뿐 아니었다. 그해 말 모스크바를 방문한 마오쩌둥의 끈질긴 요청에도 동북 지역의 이권을 돌려 주는 문제에는 쉽게 답을 하지 않았다. 마침내 중국 측이 마지막 내키지 않는 카드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가능성을 비추자 물러섰다. 그러나 조용하게 물러선 것은 아니었다. 스탈린의 마지막 카드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이었다. 결과로 중국의 대만 통합은 적어도 한동안 물건너 간 셈이었다.
물론, 김일성의 간절한 요청에 응하여 한반도에서 전쟁을 허락한 스탈린의 의도는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이 아니었다. 우선은 중국의 대만 통합을 저지하고 미국의 한반도 참전을 유도하여 가능하면 미·중 간의 충돌 상황을 연출한 후 자신은 유럽에서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는 것이었다. 전세가 바뀌어 궁지에 몰린 김일성이 소련의 도움을 청하자 스탈린은 한마디로 거절하고 대신에 중국으로 후퇴하여 게릴라 전을 하라고 답을 한다.
김 위원장은 지나간 날을 뒤돌아 보며 다시 생각할 수는 없을까. 땀흘려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취를 위태롭게 할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적어도 남한에는 없다. 북한 핵 위기 초기 미국이 이 지역 군 대비태세를 증강하자 혹시나 전쟁이 일어날까 극구 반대한 것은 남한 정부와 민간이었다. 북한이 먼저 전쟁을 시작하지 않는 한 한반도에는 전쟁의 위협은 없다. 푸틴과의 목전의 협력에만 기뻐하지 않고 잔혹한 현실의 앞뒤를 돌아보며 올바른 추론을 이끌어 낼 지혜는 과연 없나. 현실의 어려움과 어리석음을 모르진 않지만, 적어도 지난 세기의 어리석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정도의 정치적 능력을 남과 북이 보여 주길 기대한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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