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대금 1억도 안되는 ‘무늬만 상장사’ 112개
“코스피에 왜 이렇게 거래량이 적은 주식들이 존재하는 건가요? 이런 종목들은 강제로 상장폐지시켜야 하지 않나요?”(40대 소액주주 이모씨)
한국 증시의 매력도를 높이기 위한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이 추진 중인 가운데, 상장사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지 않는 이른바 ‘무늬만 상장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늬만 상장사는 상장사라는 이점을 이용해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신용등급·인지도 상승 같은 혜택만 누리고 주가 관리에는 관심이 없는 기업들이다. 거래 가뭄 속에 주가가 헐값이 되어도 무관심한 상장사들의 행태가 한국 투자자들의 ‘주식 이민’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한국 증시는 거래가 매우 활발한 기업과 아예 방치되어 잠수함처럼 가라앉은 기업들이 양극단에 존재한다”면서 “잠수 타는 종목들은 대주주 지분율이 높으면서 유통 물량이 극히 적고 만성적인 저평가 국면에서도 배당조차 잘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스피 종목 47%, 거래 대금 10억 미만
코스피 상장사인 철강업체 A사는 올해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이 1억원도 채 되지 않는 소외주다.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2배여서 극저평가 상태다. 지난달 말엔 하루 거래량이 681주(약 3000만원)였는데, 이 중 600주는 70대 오너의 10대 손주들이 사들인 것이다. A사 소액 주주는 “명색이 코스피 상장 주식인데 하루 거래량이 1000주도 안 된다니 이런 기업이 왜 퇴출 안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이 10억원도 채 되지 않는 코스피 상장 종목은 총 446개로, 전체(942개)의 47%에 달했다. A사처럼 일평균 거래 대금이 1억원 미만인 상장사도 전체의 12%(112개)였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일평균 거래 대금은 1조5500억원이었고, 시총 상위 10사의 평균 거래 대금은 약 3400억원이었다.
하루 거래 대금이 1억원 미만인 종목은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70~80% 안팎이면서 PBR 1배 미만인 곳들이 많았다. PBR 1배 미만이면 시가총액이 회사의 청산가치보다 적을 정도로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최대 주주 지분율이 85%인 B증권사나 C제지업체는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이 1억~2억원인데, PBR은 0.3배 수준이다.
이남우 기업거버넌스포럼 대표는 “상속·증여의 경우 비상장 기업일 때는 순자산 가치로 평가하지만, 상장하면 시가로 가치를 따지게 된다”면서 “일부 지배주주 입장에선 상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다음엔 주가를 낮게 유지하는 것이 승계 절차상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주주가 일부러 주가를 낮춘다고 입증하긴 어렵다”는 반박도 있다.
✅“승계할 땐 시가가 낮을수록 유리”
‘주가는 거래 대금의 그림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가와 거래 대금은 밀접한 관계다. 거래가 줄어들면 가격이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라서 그렇다.
30년 넘게 지루한 횡보장을 이어왔던 일본도 ‘무늬만 상장사’들이 늘어나 골치를 앓았다. 거래는 거의 되지 않으면서 ‘상장사’라는 껍데기만 유지하고 덩치는 왜소한 기업들이 많았던 것이다. 일본은 최고 상속세율이 55%로 한국(50%)보다도 높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지난 2022년 상장사 유지 기준에 메스를 댔다. 최상위 등급인 프라임 시장에서 상장사 자격을 유지하려면, 주주 수 800명 이상, 유통 주식 시가총액 100억엔 이상, 유통 주식 비율 35% 이상, 하루 평균 거래 대금 2000만엔(약 1억7500만원) 등의 조건을 지켜야 한다. 프라임 시장에서 거래되면,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지고 자금 조달도 용이해진다. 은행 융자를 받을 때에도 유리하고, 기업 신용등급을 산정할 때도 플러스 요인이다.
일본거래소그룹 와가쓰마 아이라씨는 “상장 유지 기준을 지키지 못하면 1년 동안의 개선 기간을 거쳐 상장폐지 절차를 밟거나 상장 유지 기준이 덜 엄격한 다른 시장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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