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시작은 1939년 아닌 1931년 만주사변
리처드 오버리 지음
이재만 옮김
책과함께
‘문명을 쓸어버리는’ 수준의 폭력과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간의 잔혹성 때문이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은 내년이면 종전 80년을 맞는데도 영화·드라마·다큐멘터리 등으로 끝없이 되새김질 되고 있다.
2차대전은 지금까지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들이 유럽의 히틀러와 무솔리니, 동아시아에서는 일본 군부의 제국주의적 야망에 군사적 대응을 한 것’으로 설명됐다. 무력충돌에 초점을 맞출 경우 이런 설명에 이의를 달기는 쉽지 않다. 이 학설의 추종자들은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전쟁의 시작으로 본다. 문제는 이런 시각이 유럽 중심적이라는 사실이다.
영국 엑서터대 역사학 교수인 지은이는 전쟁의 기원·경과·파장을 새롭게 파고들어 성격을 재해석한다. 바로 ‘2차대전은 최후의 제국주의적 전쟁’이라는 규정이 그것이다. 제국주의의 특징인 영토 팽창 욕구가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세 추축국의 침략에서 절정에 이르렀으며, 연합국이 이들을 제압한 뒤에는 기존 제국을 포함해 영토제국의 시대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종식됐다는 시각이다.
그다음으로 태평양전쟁을 부록처럼 여기는 유럽 중심의 관습적 시각에서 벗어나 2차대전의 범위를 전 지구적 사태로 확장한다. 동아시아와 태평양은 물론 중유럽·지중해·중동에서 벌어진 유혈극이 유럽에서의 싸움만큼이나 전후 질서 재편에 광범위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지은이는 전쟁이 국가 대 국가로만 국한되지 않고 다층적으로 이뤄졌음에 주목한다. 중국·우크라이나·이탈리아·그리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등에서는 국가와 침략자 사이는 물론 한 국가 내에서도 서로 이념과 정체성이 다른 집단끼리 내전을 벌였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자들은 전쟁이 끝나고도 1950년까지 소비에트 체제에 맞서 싸웠다. 10만이 넘는 반군과 1만이 넘는 소련 군·관·민이 피를 흘렸다. 이런 내전들은 전후 질서에 심대하고 장구한 영향을 끼쳤으며, 영향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전쟁 성격 재조명의 핵심은 마지막에 있다. 지은이는 영국·프랑스 같은 기존의 거대 영토제국이 일본·이탈리아·독일 등 ‘못 가진 나라’들이 허황된 야욕을 품도록 자극했다고 지적한다. 확장 욕구 자극이 전쟁 발화의 원인이며, 추축 제국이 기존 제국을 모방해 전 세계적 영토 확보를 시도한 것이 전쟁의 숨은 성격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전쟁을 통해 ‘생존공간(Lebens raum)’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신기루로 끝났다. 주목할 점은 영국·프랑스 등 기존 영토제국도 전후에 종언을 고했다는 사실. 그 종식과정은 물론 그 이후도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강한 마찰음과 함께 알제리·베트남 등 식민지가 해방됐으며, 중동엔 유대인 국가가 탄생했다.
전후 패권국이 된 소련과 내전으로 공산국가가 된 중국은 공산주의 확대를 위해 한국전쟁을 벌였다. 구 제국을 대신하는 새로운 영토제국이 고개를 든 셈이다.
눈여겨볼 점은 19세기 이래 팽창하던 제국주의끼리 서로 충돌하면서 재앙적 피해를 입었던 1차대전이 끝나고 불과 몇십 년 지나지 않아 새로운 전쟁이 터졌다는 사실이다. 그럼 추축국들은 왜 비극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까. 상생의 협력 대신 공멸의 경쟁과 전쟁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은이는 1920~30년대 초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세계 교역·금융체제의 균열과 경제위기, 그리고 제국 간의 각자도생식 경쟁 격화가 맞물린 시대적 상황을 전쟁 원인으로 꼽는다. 이 때문에 협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러한 ‘잔불’이 지금도 여전히 전 지구적으로 잠복하고 있다는 사실. 전쟁 결정권자들이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2차대전이 남긴 것이라곤 이 책의 제목인 ‘피와 폐허’뿐이었음을 기억할 때가 아닐까. 원제 Blood and Ruins: The Last Imperial War, 1931-1945.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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