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선거서 여성·유대인, 극우정당으로 선회(종합)

이도연 2024. 6. 21.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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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 과거 반유대주의 대표격 극우 '국민연합' 지지 두고 '딜레마'
"여성 유권자들, 치안 문제를 이민 관련 위협으로 인식"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반유대주의 반대 집회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프랑스 조기 총선이 9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반이민·반이슬람을 내세우는 극우정당 국민연합(RN)에 유대인과 여성 유권자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프랑스의 유대인 유권자들이 한 때 반(反)유대주의를 주장했던 RN을 지지하는, 과거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생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의 유대인들은 RN이 작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발발한 가자 전쟁 이후 이스라엘과 프랑스 내 유대인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나서자 딜레마에 빠졌다.

1972년 마린 르펜의 아버지인 장 마리 르펜의 아버지가 창당한 RN(당시 당명은 국민전선)은 한때 프랑스 내 반유대주의를 대표했다.

장 마리 르펜은 과거 반유대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마린 르펜은 2015년 아버지를 당에서 영구 제명한 뒤 아버지를 비롯한 논란의 창당자들과는 거리를 두려 노력해왔다.

유대인 유권자들의 딜레마는 지난주 '나치 사냥꾼'으로 유명한 운동가인 세르주 클라르스펠트(88)가 RN 지지를 표명하면서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클라르스펠트는 8세 때 아버지가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숨지는 비극을 경험한 유대인으로, 1960년대부터 나치 전범들을 추적하고 반유대주의에 저항하는 활동을 펼쳐왔다.

그는 최근 국영 TV 인터뷰에서 현재 프랑스 유대인들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극좌로부터 온다며 RN에 투표하기를 망설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클라르스펠트는 "RN은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며 "나는 반유대주의 정당과 친유대주의 정당이 있을 때 친유대주의 정당에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 15일 파리 북서부 외곽에서 한 12세 유대인 소녀가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가해자들이 범행 당시 피해자를 '더러운 유대인'으로 칭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프랑스 국민연합(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RN은 이러한 상황을 자신들이 반유대주의와는 의절했다는 것을 알리고 극좌 정당을 공격할 기회로 삼았다고 외신은 평가했다.

실제로 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는 이 사건 직후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행진에 참석해 이스라엘을 강력히 옹호했다.

유대인뿐 아니라 여성 유권자 사이에서도 RN 지지세가 높아졌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여성 유권자들의 RN 지지 배경에는 이민에 대한 반감이 있다고 짚었다.

프랑스 매체 레제코가 유럽의회 선거 당일 여론조사회사 오피니언웨이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프랑스 여성 유권자의 33%가 RN에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RN에 투표한 프랑스 남성 유권자 비율(30%)을 앞지른 것이다.

지난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프랑스 남성의 25%, 여성의 21%가 RN에 투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 유권자의 RN 지지율이 불과 5년 사이 12%포인트나 높아져 남성 유권자의 RN 지지율을 추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현지 극우세력이 지난 수년간 불법 이민자와 무슬림을 각종 사회문제의 근원으로 묘사하면서 자신들을 여성 권리의 수호자로 묘사해 온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한 데 따른 것일 수 있다고 폴리티코는 풀이했다.

바르델라 대표는 최근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에서 RN이 가정 폭력에 고통받는 여성에 대한 지원과 의료지원 등 여권 향상에 앞장서고 있다면서 외국인 범죄자 강제 추방, 여성에 대한 폭력 엄벌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어떤 여성이든 낮이든 밤이든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르델라는 지난해 유럽의회 연설에서는 "우리의 유럽적 가치는 여성을 머릿수건 뒤의 노예로 만들고 가두는 것보다 언제까지나, 현저히 우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9일 종료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RN은 31.5%를 득표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집권 여당 르네상스(14.6%)를 더블 스코어로 누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오는 30일 치러질 총선을 앞둔 여론조사에서도 RN은 1위를 달리고 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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