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치당한 러 대사 "韓 정부 입장 본국에 보고"...무기 갈급한 러, 한국 정말 외면?
외교부가 21일 주한러시아대사를 초치해 북·러간 군사동맹에 준하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한 것에 대해 항의하자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를 협박하는 시도는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고 알려졌다. 이미 서방 세계와는 틀어질 대로 틀어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과 베트남을 끌어들이는 전략에 몰두하면서 한국과는 접점을 찾기 힘든 상황으로 가고 있다.
이날 외교부와 주한러시아대사관에 따르면 김홍균 외교부 제1차관은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러시아대사를 서울 외교부 청사로 불러 최근 북러의 새 조약 체결 관련 정부의 엄중한 입장을 전달했다.
약 30분간 이뤄진 면담에서 김 차관은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떠한 협력도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 협력을 즉각 중단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를 준수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북한이 수십 년간 불법적인 핵·미사일을 개발해오면서 한국에 대한 핵 사용위협도 서슴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 김 차관은 한국이 자국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에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안보리 결의를 어기고 북한을 지원함으로써 한국 안보에 위해를 가해오는 것은 한러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며, 러시아에 책임 있게 행동할 것을 요구했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주의 깊게 들었으며, 이를 본국에 정확히 보고하겠다고 했다. 주한러시아대사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별도 자료에 따르면 지노비예프 대사는 김 차관과의 면담에서 “러시아 연방에 대한 위협과 협박 시도는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북·러 협력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주장하며 제3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하기도 했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러시아는 안보 불가분의 원칙에 기초해 한반도에 장기적인 평화와 안정의 구조를 형성하기 위해 계속해서 정치적·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돼있다고 했다.
대사관은 “한국 측이 이번 방북과 한러관계에 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말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전날 기자회견에서 밝힌 입장을 지노비예프 대사가 재차 강조하는 차원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북한·베트남 순방 일정을 마무리하고 모스크바로 복귀했다. 순방을 통해 드러난 메시지를 보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오랜 국제적 고립에 처했던 상황을 돌파하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초밀착 행보, 미국과 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는 베트남과 우호 관계를 확인하며 ‘세 불리기’를 과시했다는 평가다.
이로 인해 한반도는 화약고가 됐고, 동북아 안보 지형은 요동치고 있다. 답보 상태이던 한·러 관계를 개선하는 것보다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미국 주도의 유엔 안보리 대북·대러제재 무력화가 우선이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의 동맹 복원, 베트남에서는 서로의 적대국과는 동맹을 맺지 않기로 한 것 등은 ‘반미·반서방 연대’를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북한, 베트남 방문 기간 ‘자체 결제체계 구축’, ‘자국통화 결제 비율 확대’ 등을 언급하며 미국 달러화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도 했다.
최근 잇따라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우크라이나 평화회의로 조급해진 푸틴 대통령이 소수의 동맹국이나마 확실한 우군으로 확보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될 북한의 대러 미사일·탄약 제공을 가속화할 것으로 관측되면서 신냉전 구도는 앞으로 더 격화할 전망이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계속 공급한다면 북한을 무장시킬 용의도 있다고 밝히면서 갈 때까지 간다는 자세로 나왔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가 패배하는 것은 “러시아 1000년 역사의 종식을 의미하며, 끝까지 가는 게 낫지 않겠는가”라고 하기까지 했다. 북한과는 군사 협력을 강화한 푸틴 대통령은 한국 정부가 밝힌 무기 지원 재검토 방침에는 즉각 반발하며 위협했다. 이대로 한·러 관계를 정말 희생시킬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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