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휴진 중단, 의협 특위 좌초 조짐… 힘 빠지는 의사 집단행동
다른 빅5 병원도 휴진 강행 어려울 듯
의협 '올특위' 구성·절차적 정당성 논란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을 멈추고 진료실 복귀를 결정했다. 지난 17일 전면 휴진에 돌입한 지 닷새 만이다. 이미 휴진 시작일을 공지한 연세대 의대(세브란스병원)와 울산대 의대(서울아산병원)를 비롯해 대학병원들로 확산하던 무기한 휴진 움직임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더구나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의사계 구심력 회복을 위해 꾸린 특별위원회마저 내분에 휘말리면서 의사 집단행동은 전체적으로 힘이 빠지는 양상이다.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부터 이틀간 실시한 전체 교수 투표 결과에 따라 전면 휴진을 중단한다고 21일 밝혔다. 투표자 948명 중 698명(73.6%)이 '휴진을 중단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의 저항으로 전환해야 한다'를 선택했고, '휴진을 지속해야 한다'는 192명(20.3%)에 그쳤다. 비대위는 "서울대병원 특성상 현 상황이 장기화되면 진료 유지 중인 중증 환자에게도 실제적인 피해가 생길 수 있다"며 "무능한 불통 정부의 설익은 정책을 받아들여서가 아니다"라고 휴진 중단 이유를 설명했다.
향후 활동 방식에 대한 질문에는 75.4%(중복 응답)가 '정책 수립 과정 감시와 비판, 대안 제시'를, 55.4%가 '범의료계와의 연대'를 꼽았다. '환자와 의료진 안전을 고려해 지속 가능한 적정 수준으로 근무시간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65.6%가 동의했다. 비대위는 "앞으로 저항을 계속하고 정부의 무책임한 결정으로 국민 건강권에 미치는 위협이 커진다면 다시 적극적인 행동을 결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20일 넘게 지속된 의료 공백에도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가장 먼저 무기한 휴진이라는 초강수를 꺼냈지만, 결과적으로 파장은 크지 않았다. 도리어 악화되는 여론과 병원 내부 반발 등 거센 역풍에 직면했다. 교수 집단 휴진이 득보다 실이 많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만큼 이달 27일과 다음 달 4일에 각각 전면 휴진을 예고한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아산병원 교수들도 휴진을 강행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무기한 휴진 논의를 시작한 가톨릭대 의대(서울성모병원)와 성균관대 의대(삼성서울병원) 또한 향후 대정부 투쟁 방향 재설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대 의대 교수 비대위는 전날 총회를 열어 휴진 찬반 여부를 포함해 장기 휴진, 정기 휴진 등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김성근 비대위원장은 "휴진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 냉정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며 "시급한 의학교육 부실 우려와 의대생 유급 위기를 우선순위에 두고 정부에 항의 표시를 하자는 의견 등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들도 전날부터 전체 교수 대상으로 휴진 등 향후 행동에 관한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오는 25일 교수 총회를 열어 설문 결과를 공유하고 의견을 모을 계획이지만 병원 내부에서도 집단행동에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의협에서 대정부 투쟁을 담당할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는 출범과 동시에 좌초 위기를 맞았다. 의협은 지난 19일 교수단체, 대한의학회 등이 참여한 연석회의에서 올특위 설치와 위원 구성 등을 결정했지만 정작 의협 최상위 의결기구인 대의원회에는 관련 내용이 공유되지 않아 내부에서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의협 주류인 개원의들 사이에서는 특위 집행부 14명 중 시도의사회 몫이 세 자리뿐이라는 점을 들어 자신들의 목소리가 배제됐다는 불만이 상당하다.
무엇보다 "사태 해결의 핵심인 전공의가 참여를 거부한 올특위가 무슨 존재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이 많다. 올특위는 22일 첫 회의를 열어 무기한 휴진을 비롯해 향후 구체적인 투쟁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다. 의협의 한 대의원은 "특위가 정부와 협상할 명분과 당위가 없는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지 불분명하다"며 "당사자인 전공의는 빠지고 절차적 정당성은 훼손된 데다 목표까지 애매하다 보니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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