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란의 좌충우돌 해외여행 25] 브루나이에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입성하다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단체여행으로 남의 나라 공항에 도착하면 현지 가이드가 팻말을 들고 서 있기 마련이다. 그를 만나는 것으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그 순간 ‘아, 이번 여행이 제대로 시작되는구나’ 하는 안도감과 또 다른 한편으로 ‘저 이에게 코 꿴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었구나’ 하는 불편함도 느낀다.
개별여행은 반기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공항에 심란한 심정으로 도착할 수밖에 없다. ‘과연 호텔은 잘 찾아갈 수 있을지, 어리바리한 내 행색으로 인해 바가지를 쓰는 것은 아닌지’ 등 근심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여간 어수선한 게 아니다.
그런데 딱 한 번, 나를(아니, 우리 일행을) 환영하러 나온 사람들이 뿜빠뿜빠 연주하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호사스럽게 입국한 적이 있다. 내 평생에 처음 경험한 그 달콤한 호강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2008년 2월, 브루나이 다루살람의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 공항에 도착했을 때 일이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라 비몽사몽간에 입국 수속을 밟고 나가는데, 어디서 우렁찬 악기 연주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단조로운 타악기 소리라 감미롭지는 않았지만, 몽롱한 정신을 깨우는 데는 그만이었다.
나는 ‘공항에서 무슨 공연이 있나?’ 싶었다. 우리나라 인천공항에서도 간간이 연주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으로 보아 공연을 하기엔 너무 늦은 때였지만, 공항에서 울리는 음악 소리를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짐을 찾고 나가다 보니, 그 음악대 연주는 우리를 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몇몇 처녀들은 미소를 머금은 채 환영한다는 말을 하면서 먼저 나간 너댓 사람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악기를 든 소년들은 우리를 보자 더욱 힘차게 악기를 두드려댔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좀 시끄러운 정도였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여행을 다니며 여러 나라 공항을 방문해 봤지만, 여행객을 위해 음악대를 동원해 환영하는 경우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빈 방문의 예우가 이렇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우리 일행 중에 굉장한 인물이 있는 걸까? 그래서 원님 덕에 나발 부는 호강을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잠깐 해 보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나라와 브루나이 사이에 항공협정을 맺어 비행기가 오가게 된 것이 그 즈음 이었다. 즉, 우리가 그날 탑승한 항공기가 브루나이 땅에 내린 첫 국적기는 아니지만, 서너 번째에 해당하는 것이었으므로 각별한 환영을 받았던 것이다.
브루나이가 워낙 작은 나라라 볼거리가 많지 않아서인지, 요즘은 여행 상품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한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음악대까지 동원하여 성대한 환영을 해주었던 브루나이로서는 좀 섭섭한 일이겠다.
그래도 나는 그 나라에서 받았던 환대를 잊을 수 없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딱 한 번의 호사스러운 입국 경험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특별한 입국도 그렇지만, 그곳 엠파이어 호텔에서 누렸던 호사도 결코 잊기 어려울 정도다. 5성급 호텔이라고 하기엔 시설이 너무 훌륭해 7성급이라고 부른다는 그곳은 늘 가성비 따지며 숙소를 정하곤 하던 내가 큰맘 먹고 질러봤던 호기로운 선택이었다.
다행이라면 일생에 한 번은 그런 호강을 해 보았다는 것이고, 슬픈 일이라면 다시는 그런 호강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가끔 그때 묵었던 호텔 이야기를 하며 추억에 잠긴다. 이번 글을 쓰면서 다시금 그때 기억을 소환해 잠깐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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