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란의 좌충우돌 해외여행 25] 브루나이에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입성하다

신양란 작가 2024. 6. 2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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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국가인 브루나이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자메 아스르 하사날 볼키아 모스크. 돔 지붕이 황금 타일로 덮여 있어, 이 나라가 ‘황금의 나라’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게 한다./신양란 작가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단체여행으로 남의 나라 공항에 도착하면 현지 가이드가 팻말을 들고 서 있기 마련이다. 그를 만나는 것으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그 순간 ‘아, 이번 여행이 제대로 시작되는구나’ 하는 안도감과 또 다른 한편으로 ‘저 이에게 코 꿴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었구나’ 하는 불편함도 느낀다.

개별여행은 반기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공항에 심란한 심정으로 도착할 수밖에 없다. ‘과연 호텔은 잘 찾아갈 수 있을지, 어리바리한 내 행색으로 인해 바가지를 쓰는 것은 아닌지’ 등 근심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여간 어수선한 게 아니다.

그런데 딱 한 번, 나를(아니, 우리 일행을) 환영하러 나온 사람들이 뿜빠뿜빠 연주하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호사스럽게 입국한 적이 있다. 내 평생에 처음 경험한 그 달콤한 호강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반다르스리브가완 공항에 내린 우리 일행을 환영해 준 음악대.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기다려 음악을 연주해 준 것이 특히 고마웠다. /신양란 작가

2008년 2월, 브루나이 다루살람의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 공항에 도착했을 때 일이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라 비몽사몽간에 입국 수속을 밟고 나가는데, 어디서 우렁찬 악기 연주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단조로운 타악기 소리라 감미롭지는 않았지만, 몽롱한 정신을 깨우는 데는 그만이었다.

나는 ‘공항에서 무슨 공연이 있나?’ 싶었다. 우리나라 인천공항에서도 간간이 연주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으로 보아 공연을 하기엔 너무 늦은 때였지만, 공항에서 울리는 음악 소리를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짐을 찾고 나가다 보니, 그 음악대 연주는 우리를 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몇몇 처녀들은 미소를 머금은 채 환영한다는 말을 하면서 먼저 나간 너댓 사람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악기를 든 소년들은 우리를 보자 더욱 힘차게 악기를 두드려댔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좀 시끄러운 정도였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여행을 다니며 여러 나라 공항을 방문해 봤지만, 여행객을 위해 음악대를 동원해 환영하는 경우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빈 방문의 예우가 이렇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우리 일행 중에 굉장한 인물이 있는 걸까? 그래서 원님 덕에 나발 부는 호강을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잠깐 해 보았다.

브루나이 다루살람은 이슬람 국가이므로, 조심해야 할 사항이 많다. 중동 지역처럼 엄격하지는 않지만, 여인들이 머리카락을 드러내지 않는 복장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엠파이어 호텔 데스크 직원도 붉은색 스카프를 쓰고 있다./신양란 작가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나라와 브루나이 사이에 항공협정을 맺어 비행기가 오가게 된 것이 그 즈음 이었다. 즉, 우리가 그날 탑승한 항공기가 브루나이 땅에 내린 첫 국적기는 아니지만, 서너 번째에 해당하는 것이었으므로 각별한 환영을 받았던 것이다.

브루나이가 워낙 작은 나라라 볼거리가 많지 않아서인지, 요즘은 여행 상품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한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음악대까지 동원하여 성대한 환영을 해주었던 브루나이로서는 좀 섭섭한 일이겠다.

그래도 나는 그 나라에서 받았던 환대를 잊을 수 없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딱 한 번의 호사스러운 입국 경험이기 때문이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호텔 수준은 식당을 보면 알 수 있다. 엠파이어 호텔은 간단한 점심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조차도 식기류가 매우 고급스럽다./신양란 작가

지금 생각하면 특별한 입국도 그렇지만, 그곳 엠파이어 호텔에서 누렸던 호사도 결코 잊기 어려울 정도다. 5성급 호텔이라고 하기엔 시설이 너무 훌륭해 7성급이라고 부른다는 그곳은 늘 가성비 따지며 숙소를 정하곤 하던 내가 큰맘 먹고 질러봤던 호기로운 선택이었다.

다행이라면 일생에 한 번은 그런 호강을 해 보았다는 것이고, 슬픈 일이라면 다시는 그런 호강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가끔 그때 묵었던 호텔 이야기를 하며 추억에 잠긴다. 이번 글을 쓰면서 다시금 그때 기억을 소환해 잠깐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엠파이어 호텔의 웰컴 드링크. 정성껏 손질한 코코넛도 인상적이지만, 은으로 만든 스푼이 더욱 눈길을 끈다./신양란 작가
작은 나라라 볼 것이 별로 없는 브루나이에 굳이 가게 된 까닭은 엠파이어 호텔을 구경하기 위함이었다. 칠성급 호텔을 표방하는 이 호텔은 호화로움의 극치를 보여준다./신양란 작가
1인당 GDP가 세계 4위라고 알려진 부유한 산유국인 브루나이는 술탄이 통치하는 국가이다. 설날에 백성들이 세배를 하면 왕이 세뱃돈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진은 엠파이어 호텔에 걸려 있던 왕과 왕비의 사진이다. /신양란 작가
모스크에 들어가기 위해선 어린이까지도 경건한 복장을 갖추어야 한다. /신양란 작가
여행 기간 내내 호텔에서만 지내다가 시티 투어하는 날 시내로 나와 둘러본 수상 가옥촌인 캄퐁 에이어. 동남아시아 다른 나라의 수상 가옥촌보다는 깔끔한 편이었다./신양란 작가
반다르스리브가완 공항 출국장. 출국할 때는 딱히 주의할 것이 없지만, 입국할 때는 이슬람 국가이다 보니 특히 술 문제에 엄격하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신양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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