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은이 밝힌 ‘대통령실의 시그널’…핵심 증인들은 “선서 거부” “증언 거부”
공직기강비서관실·국가안보실 동시 관여 확인
이종섭·신범철·임성근은 증인 선서 거부
‘VIP 격노설’ 부인하던 김계환은 증언 거부
대통령실이 국방부의 ‘채 상병 순직 사건’ 기록 회수에 개입한 것을 넘어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구체적 증언이 나왔다. 국방부 유재은 법무관리관이 ‘임기훈 당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비서관이 먼저 경찰에서 전화가 올 것이라고 알려줬다’고 진술한 건데, 사건 회수 지시가 대통령실에서 시작됐다는 의혹이 더욱 짙어졌다.
짙어진 대통령실 사건 기록 회수 주도 정황
21일 국회에서 열린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에서, 유재은 관리관은 사건 기록 회수 당일인 지난해 8월2일 오후 1시42분 임 비서관으로부터 “경북경찰청으로부터 전화가 올 것”이란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유 관리관은 ‘임기훈 비서관이랑 어떤 내용으로 통화했나’라는 이건태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그런 대화는 하지 않았다. 임 비서관이 전화가 와서 경북청으로부터 전화가 올 것이란 얘기를 했다”고 답했다. 이후 유 관리관은 오후 1시51분께 경북청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기록 회수 의사를 전달했다.
그동안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자신이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을 항명 혐의로 수사하라고 지시했고, 국방부 검찰단이 수사 일환으로 경찰에 이첩된 채 상병 사건 수사 기록을 회수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날 유 관리관의 증언에 따르면, 임 비서관이 유 관리관에게 연락하기 전 대통령실이 이미 개입해 경북경찰청과 회수 관련 조율을 마친 상태였던 셈이다. 그동안 ‘임기훈→유재은→경북경찰청’으로 이어지는 통화 기록이 드러나면서, 대통령실의 지시가 유 관리관을 통해 회수 지시로 이어졌을 거란 추측은 있었지만 대통령실의 주도 정황이 구체적 통화 내용으로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임 비서관은 유 관리관에게 전화하기 전인 오후 1시25분께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했다.
앞서 국가안보실과 별도로 공직기강비서관실 역시 경찰청 산하 국가수사본부 과장을 통해 경북경찰청에 ‘군에서 사건 기록을 회수하려고 한다’는 취지의 의사를 전달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한 사건 기록을 회수하는 데 ‘공직기강비서관실’과 ‘국가안보실’이 동시에 관여한 것이다.
경찰로 이첩한 사건 기록을 회수하는 데 대통령실이 관여한 정황은 신범철 당시 국방부 차관의 ‘말실수’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8월2일 오후 4시21분께 윤 대통령과 통화한 신 전 차관은 관련 질문에 “그것(통화)은 회수에 관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경태 민주당 의원이 다시 ‘대통령이 뭐라고 하셨나. 수사 결과 다시 회수해 오라는 것이었냐’고 묻자, 신 전 차관은 “밝히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답변드리지 않도록 하겠다”며 답을 회피했다.
대통령 관련 질문엔 함구
한편 이날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은 자신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변하면서도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과 관련되거나 불리한 질문에는 ‘방탄’으로 일관했다. 이종섭 전 장관, 신 전 차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은 청문회가 시작되자 증인 선서를 거부했다. ‘형사소추나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 염려가 있을 경우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148조를 들어 위증의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이시원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증인 선서는 했지만, 대부분의 질문에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렵다”는 말을 반복하다가 퇴장 조처를 당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윤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했다. 이건태 의원이 ‘대통령으로부터 어떤 전화를 받았나’라고 묻자, 이 전 장관은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의 통화를 밝히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은 사건 기록 회수 당일 낮 12시7분부터 세 차례나 통화한 바 있다. 이 전 장관은 경찰에서 회수한 채 상병 순직 사건 기록을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재검토하기로 결정한 지난해 8월8일에도 윤 대통령과 아침 일찍 통화했다. 이시원 전 비서관 역시 사건 기록 회수 등 과정에서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역할 등에 대해 답변 거부로 일관했다.
사건 관계자들 국회에서 거짓말
최근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 연루자들의 통화 내역이 확인되면서, 이날 출석한 증인들이 지난해 국회에서 거짓 답변을 한 사실도 재부각됐다. 임기훈 당시 비서관은 지난해 8월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윤 대통령의 ‘격노’가 있던 지난해 7월31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의 통화 여부를 묻자,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임 전 비서관의 통화 기록을 보면, 이날 그는 김 사령관과 두 차례 통화했다. 이에 임 전 비서관은 이날 청문회에서 “(통화) 날짜를 착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신 차관 또한 윤 대통령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통화 여부를 묻자 ‘통화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통화 내역이 나와 이 같은 발언의 신빙성이 의심받고 있다. 이에 신 전 차관은 청문회에서 “(과거 국회에서는) 7월31일 대통령께서 장관과 통화했느냐는 취지로 이해했다. 장관께서 ‘없다’고 해 없다고 말씀드린 것”이라고 말을 흐렸다.
한편, 이날 안보 위기 등을 이유로 화상을 통해 청문회에 참여한 김계환 사령관은 ‘브이아이피(VIP) 격노설’과 관련해 그동안 ‘격노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해왔던 것과 달리 증언 자체를 거부했다. 김 사령관은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브이아이피가 격노했단 말을 언급한 사실이 있느냐’란 질의에 “증언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의 거듭된 물음에도 김 사령관은 증언을 거부했다. 반면 박 대령은 “(김 사령관에게) 격노 얘기는 분명히 들었다”고 답했다.
김 사령관은 지난 2월 박 대령 항명 혐의 군사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박 대령은) ‘김 사령관이 7월31일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에게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 질책했고 국방 관련해 이렇게까지 격노하신 적이 없었다’라 (말했다고) 진술했다. 그렇게 말한 사실이 있는가”라고 재판장이 묻자 “그런 사실 없다”고 답한 바 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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