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러시아대사 초치해 ‘북·러 조약’ 항의…러시아 “협박 시도 용납 안돼”
주한 러시아대사 “위협·협박 시도 용납 안돼”
정부 ‘우크라이나 지원 원칙 재검토’에 반발
푸틴 대통령도 “아주 큰 실수될 것”
향후 러시아 행보 한·러관계 분수령될 듯
정부가 21일 주한 러시아대사를 초치해 북한과 최근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한 것에 항의했다. 주한 러시아대사는 “위협과 협박 시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맞받았다. 전날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아주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러가 서로에게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지 말라고 압박하면서 긴장 수위가 높아지는 모습이다.
한국 “러시아 책임있게 행동”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은 이날 오후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대사를 서울 외교부 청사로 불렀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김 차관은 북·러가 지난 19일 정상회담에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해 군사, 경제적 협력을 강화키로 한 것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김 차관은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협력을 즉각 중단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를 준수하라고 러시아 측에 촉구했다. 그는 “북한이 수십년 동안 불법적인 핵·미사일 개발을 해오면서 우리에 대한 핵 사용 위협도 서슴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차관은 또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떠한 협력도 유엔 안보리 결의의 위반”이라며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안보리 결의를 어기고 북한을 지원함으로써 우리 안보에 위해를 가해오는 것은 한·러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가 책임 있게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주의 깊게 들었으며, 이를 본국에 정확히 보고하겠다고 말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이후 주한 러시아대사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초치 때 러시아 측이 밝힌 입장을 올렸다. 주한 러시아대사관은 “지노비예프 대사는 러시아에 대한 위협과 협박 시도는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전날 발표한 북·러 조약 체결과 관련한 입장에 반발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북·러 조약 체결에 대응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러시아에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고 압박했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20일 베트남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는 아주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상응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고 그건 아마 한국의 지도부도 달가워하지 않는 결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또한 한국에 ‘레드라인’을 지키라고 경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주한 러시아대사관은 또 “대사는 러시아와 북한의 협력은 제3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며, 국제법의 원칙과 규범을 준수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지적했다”고 적었다. 이는 북·러 조약 체결 이후 푸틴 대통령이 밝힌 입장과 같다. 주한 러시아대사관은 “러시아는 안보 불가분의 원칙에 기초해 한반도에 장기적인 평화와 안정의 구조를 형성하기 위해 계속해서 정치적,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안보 불가분 원칙이란 한 국가의 안보를 위한 타국의 안보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북·러 군사협력 향후 행보 주목
향후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협력 등을 두고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가 한·러관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1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에는 다양한 방안들이 고려될 수 있다”라며 “구체적인 방안은 우리가 어제 밝힌 입장에 앞으로 러시아 측이 어떻게 응해 오는지에 따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할지는 향후 러시아의 행보에 달렸다는 얘기다.
당장 한·미·일 3국의 첫 다영역 연합훈련인 ‘프리덤 에지’가 이르면 이달 말쯤 진행된다. 북·러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연합훈련을 실시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북한이 공을 들이고 있는 군사정찰위성 발사 성공을 위한 첨단기술을 러시아가 이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핵·미사일 고도화를 위한 군사기술까지 러시아가 제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러가 이번에 체결한 조약은 이런 일들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는 카드로 맞대응한다면, 한·러관계는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이번 북·러 조약 체결을 계기로 한·미는 확장억제 강화를, 한·미·일 3국은 안보협력 고도화를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외교장관은 이날 통화에서 북·러의 조약 체결을 규탄하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무력화하기 위한 한·미 동맹 확장억제력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이런 내용은 전날 정부가 밝힌 입장문에도 담겼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 19일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개최한 뒤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 서명했다. 조약에는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는 경우 “(상대방은)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군사동맹에 준하는 관계라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군사적 원조를 하는 과정에서 유엔헌장 51조(자위권)과 북·러의 국내법을 준용토록 한 점은 즉각적인 군사개입을 제어하기 위한 장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조약에는 또 북·러가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와 한국과 서방 등의 독자제재 등을 무력화하는 데 공동 대응하겠다는 점을 시사하는 내용도 담겼다. 푸틴 대통령은 조약 체결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과 군사·기술협력을 진전시키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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