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여자? 변화무쌍 수싸움이 진짜 씨름"
경찰 꿈꾸던 유도 엘리트서
대학진학후 뒤늦게 샅바 잡아
생활체육 리그서 13회 우승
씨름협회 제안에 감독직 맡아
5관왕 제자 배출해 지도자賞
"한판만 해도 땀으로 흠뻑
강력한 다이어트 효과는 덤"
경찰을 꿈꾸던 유도 유망주는 뒤늦게 씨름 선수가 됐다. 선수 활동과 후배 양성을 병행하며 여성 최초로 씨름팀 감독을 맡았다. 그가 지도한 제자는 지난해 초등부 전국대회 5관왕에 오르며 주목받는 기대주로 떠올랐다. 현역 선수이자 최초의 여성 씨름 감독으로 활약 중인 김채현 부산교육청 씨름부 감독(28)을 매일경제가 인터뷰했다.
김 감독이 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씨름이 아닌 유도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전 경기를 한판승으로 따내며 금메달을 차지한 최민호 선수를 보고 유도에 매료됐다. "상대를 바닥에 내다 꽂을 때의 쾌감은 씨름이나 유도나 똑같아요. 유도선수로 성공한 뒤 특채로 경찰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죠."
고교 3학년 때 전국체전에서 2위에 오르는 등 김 감독은 유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목표했던 대학 진학이 좌절되면서 유도의 꿈을 접었다. "고교 시절 유도만 바라보며 살았는데 모든 노력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다른 길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김 감독은 발육과 발달이 느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특수체육으로 진로를 바꿔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김 감독은 "사실 처음엔 씨름인이 될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에 진학할 무렵 취미 삼아 시작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유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력을 지닌 씨름에 빠져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힘과 기술을 이용해 상대를 넘어뜨려야 한다는 점에서 유도와 씨름은 닮았어요. 제가 자주 쓰는 배지기는 유도의 허리후리기와 기술 사용법이 유사하죠."
두 종목이 유사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멀리 떨어져 경기를 시작하는 유도는 상대방과의 거리를 조절하면서 경기를 운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샅바를 맞붙잡아야 하는 씨름에선 도망갈 곳도, 공방을 피할 방법도 없죠." 유도 엘리트 선수였지만 운동을 처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씨름 기본기 훈련에 집중했다는 설명이다.
김 감독은 씨름 입문 직후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생활체육 리그인 여자 2부에서 6년간 통산 13회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부터는 1부에서 실업팀 선수들과 경쟁하고 있다. 김 감독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지도자 준비를 병행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씨름에 한번 '올인'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을 휴학한 후 선수로서 훈련하면서 남는 시간엔 아이들과 동호인들을 코칭해줬죠."
그가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5년 전이다. 그의 지도 능력과 열정을 높이 산 부산광역시 씨름협회에서 정식 감독을 제안해 부산 내리초등학교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여성 최초의 씨름 감독이 탄생한 순간이다. 하지만 여성 지도자에 대한 불신의 벽은 높았다. 그는 "유도선수 출신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며 "씨름대회에서 만난 상대팀 감독이 인사조차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제가 원래 주눅 들고 그런 성격이 아니에요. 인사를 안 받아주면 받아줄 때까지 다시 했고, 오기가 생겨서 더 악착같이 훈련하고 아이들을 가르쳤죠." 그가 지도한 김태경 군은 지난해 8개의 전국대회에 출전해 5관왕을 차지하며 초등 씨름계를 평정했다. 김 감독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3월 부산시 씨름협회로부터 우수지도자상을 받았다.
지난달 부산교육청으로 소속을 옮긴 김 감독의 목표는 꿈나무 발굴과 씨름 저변 확대다.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씨름의 매력을 알리겠다는 포부다. "힘으로 누르는 게 씨름의 전부가 아니에요. 길어봐야 1분 남짓한 경기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대응하는 수싸움이 씨름의 진짜 매력이죠. 한판만 해도 온몸이 흠뻑 땀으로 젖을 정도로 강력한 다이어트 효과는 덤이고요."
[부산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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