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열흘 앞 프랑스 '반유대주의' 회오리 속으로… 극우당 '여론조사 1위'

권영은 2024. 6. 2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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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소녀 집단성폭력'이 불붙인 반유대주의 논란
극우당 RN, 극좌 세력에 반유대 꼬리표 붙여 공세
7월 7일 판가름… 좌파 성향 유권자·유대계 선택은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실질적 지도자 마린 르펜(앞줄 왼쪽) 의원과 조르당 바르델라(앞줄 오른쪽) RN 대표가 2일 파리에서 열린 유럽의회 선거 유세에 참석하고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조기 총선을 열흘 앞둔 프랑스 정국이 반(反)유대주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12세 유대인 소녀 대상 집단 성폭력 사건이 정치적 땔감이 되면서다. 프랑스가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된 후 첫 집권을 노리는 극우당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극우 집결을 꾀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겐 악재다.


유럽의회 선거 압승한 RN, 프랑스 총선 여론조사도 선두

2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IFOP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34%가 다가오는 선거에서 극우 국민연합(RN)을 찍겠다고 답했다. RN 견제를 위해 좌파 4개 정당(굴복하지않는프랑스·사회당·녹색당·공산당)이 연합한 신민중전선(NFP)은 29% 지지율을 확보해 뒤를 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여당 르네상스와 연합 세력의 앙상블은 22%를 얻어 3위에 그쳤다.

프랑스에서 양극단인 극우와 극좌가 외연을 넓히는 모양새다. RN은 2022년 총선 1차 투표 때 얻은 득표율 18.7%보다 15%포인트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NFP 역시 2년 전 얻은 25.7%보다 3.3%포인트 더 높다. 반면 중도우파인 여권 연합 앙상블은 2022년(25.8%)보다 낮은 지지율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지난 9일 유럽의회 선거에서 RN(득표율 31.5%)에 대패한 뒤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 실시라는 승부수를 띄웠던 마크롱 대통령의 구상이 좌초 위기에 처한 것이다.

특히 반유대주의 논란이 선거 막판 모든 이슈를 삼키면서 상황은 더 불리해졌다. 지난 15일 파리 외곽에서 10대 소년 3명이 유대인 소녀에게 "더러운 유대인"이라는 욕설과 함께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프랑스 전역이 충격에 빠졌다. 이로 인해 극우는 엄청난 이득을 얻고, 좌파 세력은 반유대주의 혐의에 휩싸일 것이라고 AFP통신은 관측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0일 오라두르쉬르글란에서 열린 나치 학살 8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묵념하고 있다. 오라두르쉬르글란=로이터 연합뉴스

반유대 논란에 '극우 VS 극좌'… "어려운 선택"

RN은 즉각 "반유대주의 척결"을 천명하고 나섰다. 29세의 '극우 스타'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는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후 극도로 우려스러운 방식으로 확산하고 있는 반유대주의와 우리는 맞서 싸워야 한다"며 RN이 승리할 경우 반유대주의를 척결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대표적 극우 정치인인 장마리 르펜이 창립한 RN은 본래 유대인 혐오, 나치 옹호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의 딸 마린 르펜이 뒤를 이은 이후부터는 반유대주의와 거리를 둬왔다.

오히려 이번에는 좌파 연합에서 가장 큰 세력인 극좌 성향의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에 반유대주의 혐의를 덧씌우며 공세에 나섰다. 장뤼크 멜랑숑 LFI 대표는 NFP가 선거에서 과반을 차지할 경우 차기 총리로 유력하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민간인 대량학살을 비판했던 그는 반유대주의를 경시한다는 지적을 줄곧 받아 왔다. 이스라엘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프랑스 유대인단체대표회의(CRIF)는 LFI가 유대인 증오를 선거 전략으로 삼는다고 비난하고, 전통적인 프랑스 좌파 사회당과 LFI의 연합을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공격했다.

반유대주의가 최대 쟁점화하면서 프랑스 유권자들, 특히 좌파 성향 개인과 유대인 그룹은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AFP는 짚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유대인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다.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연구해 온 저명한 프랑스 역사가 세르주 클라스펠트가 "내 삶은 박해받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지키는 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며 이번 선거에서 RN에 투표하겠다고 밝혀 놀라움을 안겼다고 AFP는 전했다.

반면 반유대주의 반대 활동가인 에마뉘엘 레바는 "가장 중요한 것은 RN을 이기는 것"이라며 "완전히 반유대주의적인 후보와 정당(RN)보다는 덜 반유대주의적인 정당(LFI)에 투표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가운데) 프랑스 대통령과 프랑스 역사상 첫 집권을 노리는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조르당 바르델라(맨 왼쪽) 대표, RN의 실질적 지도자 마린 르펜 의원. AFP 연합뉴스

RN 승리 시 마크롱, 극우 총리와 '어색한 동거'

여론조사 결과대로 RN이 제1당이 될 경우 바르델라 대표가 총리를 맡게 될 공산이 크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누가 이기든 "대통령직 사임은 없다"고 밝힌 만큼 어색한 '동거정부'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유럽의회 선거에서 집권당을 '더블 스코어'로 제친 RN이 이번 선거에서도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고 NYT는 전망했다. 루크 루반 프랑스 시앙스포 정치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이번 선거에도 그대로 반영하기는 어렵다"며 "전국 단위 선거에서 같은 성공을 거둘지 확실하지 않다"고 NYT에 말했다.

총 577석인 프랑스 하원의원을 뽑는 이번 선거는 오는 30일과 다음 달 7일 1, 2차에 걸쳐 치러진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득표자 2명과 12.5% 이상을 얻은 후보가 일주일 뒤 결선에서 최종 승자를 가리게 된다. 대부분 승부는 2차 투표에서 판가름 난다. 극단에 치우친 후보 당선을 막기 위한 제도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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