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과 미래] 가짜 후기가 지배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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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은 일정한 시간이 지날 때마다 자꾸 다시 읽고 싶어진다.
김세희의 '가만한 나날'(민음사 펴냄)이 내게 그중 하나다.
아마 이 작품이 내 딸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일 테다.
딸아이 마음이 아득히 멀어 보일 때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그 기분을 더듬으려 애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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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은 일정한 시간이 지날 때마다 자꾸 다시 읽고 싶어진다. 김세희의 '가만한 나날'(민음사 펴냄)이 내게 그중 하나다. 아마 이 작품이 내 딸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일 테다. 딸아이 마음이 아득히 멀어 보일 때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그 기분을 더듬으려 애쓰곤 한다. "나는 프로야. 나는 프로페셔널해." 소설 주인공 경진은 광고회사 신입이다. 그녀는 '프로'로 살고 싶어 이 말을 주문처럼 외면서 일한다. 그러나 작품에서 '프로'란 자기 주도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전문가가 아니다. 반대로 더럽고 추악할지라도 회사가 시키는 일을 자발적으로 해내는 이를 가리킨다. 우리 시대 청년들은 독립이 아니라 종속을 위해서, 불안에 떨지 않고 가만한 나날을 누리려고 발버둥 치는 셈이다.
회사에서 경진은 가짜 블로그 계정을 운영한다. 상상력 뛰어나고 문장력 좋은 그녀는 채털리 부인이란 존재를 설정해 블로그를 연 다음, 뛰어난 스토리텔링 실력으로 이를 키워간다. 대충 하거나 못하겠다는 동기들과 달리, 그녀는 자기와 사촌의 일상을 조합한 정성 어린 글로 인정받고, 결국 N포털 검색 첫 페이지에 노출되도록 블로그를 최적화하는 데 성공한다. 채털리 부인은 '프리미엄 토들러 침대'에 아기를 재우고, '마음까지 뽀송해지는 뽀송이'를 매일 침구에 뿌린다. 거래처 상품을 실제 사용한 것처럼 꾸민 것이다. 그녀는 "이게 경제구나"라면서 '경이와 체념'을 느낀다. 이것이 소셜미디어가 지배하는 세계의 실상이다. 네이버, 구글, 인스타그램이 외치는 양질의 콘텐츠란 진실을 담은 콘텐츠가 아니라 광고를 위해 조작한 거짓 콘텐츠일 뿐이다. 얼마 전 쿠팡이 보여준 가짜 후기처럼 말이다. 새빨간 거짓말을 부추기고 퍼뜨리는 세상이 멀쩡할 리 없다. '뽀송이'에 들어 있던 치명적 독성 물질 탓에 제품을 산 소비자들이 병든 것이다. N포털은 알고리즘을 바꿔 경진의 블로그를 폐쇄하고, 경진은 이직해 여전히 가만한 나날을 위해서 애쓴다. 겉으론 일상이 지속되나, 경진의 삶은 예전과 같지 않다. "나는 그곳에서 있었던 일은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 그런 사람이 되었다." '프로'로 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열심히 살수록 보람을 잃고 도덕적으로 타락한다면, 삶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쩌면 이것이 청년 세대가 직장 생활에 쉽게 지치고 염증 내는 이유일 터이다.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 성찰할 때 구원은 시작된다. SNS 스토리텔링이 우리가 거짓을 향해 질주하게 한다면, 소설 서사는 우리를 진실에 눈뜨도록 이끈다. 그러니 검색하지 말고 읽을지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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