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kg 모아야 7천원" 찜통더위에 폐지 줍는 노인들[르포]

광주CBS 김수진 기자 2024. 6. 21. 16: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광주 한낮 기온 33도, 폐지 수집 노인 활동은 '여전'
"아침부터 폐지 줍지만 더위에 고물상 3번도 못 가"
폐지 1kg 당 70~80원…하루 최대 2만 원 버는 셈
고물상 "더위 피하시라 아이스크림·물 드리기도"
광주광역시 서구 농성동 한 음식점 앞에서 70대 노인이 폐지를 수집한 손수레를 끌고 있다. 김수진 기자


한낮 최고기온 33도를 보인 21일 광주 서구 농성동 한 음식점 앞. 점심시간을 보내러 나온 사람들 사이에서 황모(79)씨는 끌고 있던 폐지 수집 손수레를 잠시 멈춘 채 모자에 손을 넣어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황씨는 이어 물통을 꺼내 물을 마신 뒤에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 8시부터 나와 일대 식당가를 돈 황씨는 4시간을 투자해서야 만족할 만큼 폐지를 모았다.

황씨는 모은 폐지와 고철 등을 주워 고물상에 팔고 하루 2만원 정도 벌고 있다. 무더운 날씨에 전날은 아침 6시 반에 집에서 나와 오전 내내 폐지를 주워 고물상을 두 번 오갔다고 설명했다. 황씨는 "햇볕이 너무 강해 이쯤하고 쉬었다가 해야 한다"며 "저녁에 다시 나와 폐지를 줍고 다음 날 아침 고물상으로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더위라면 삼복에는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비슷한 시각 광주 서구 마륵동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박인철(68)씨는 연신 부채질하며 더위를 피해 컨테이너에서 돈을 꺼냈다. 박씨는 이날도 3번째 고물상을 찾아 폐지를 70kg씩 싣고 온 고모(80)씨에게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드시라"며 천원을 더 건넸다.

고씨는 "이런 더운 시간대에는 그늘 밑에 가 있다가 시원해지면 다시 와야 한다"며 "더위에 폐지를 줍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한 장 한 장 줍기 위해선 더 땀이 많이 난다"고 말했다. 이날 고씨가 받은 돈은 5천 원. 고씨는 1kg당 70원이 돼 지난주보다 10원이 더 올랐다고 웃음을 지었다.

광주광역시 서구 마륵동 한 고물상에 80대 노인이 수집한 폐지 무더위 속에서 정리하고 있다. 김수진 기자


박씨는 "대부분 몸이 아프지 않으면 매일 폐지를 판매하러 오신다"며 "더위에 여기에 와서 물이라도 한잔 더 마시고 가라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이어 "폐짓값이 올라 많으면 100kg에 7천 원 정도를 벌 수 있지만, 날이 더워 어르신들이 하루에 많이 온다고 해도 2번 정도 오고 간다"고 설명했다.

이날 광주 동구는 한낮 최고 체감기온 32.6도를 기록했지만 무더위에도 이른 시간부터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고물상을 찾았다. 동구 지산동 고물상 종합자원에는 아침 6시부터 폐지 수집 노인들이 전날 모은 폐지를 판매하러 찾아왔다. 6월이지만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종합자원을 운영하는 박진덕(60)씨는 문을 일찍 열기 시작했다. 박씨는 "6시 반에 문을 여는 고물상 앞에 6시부터 할머니가 폐지를 가지고 대기를 한다"며 "미리 와서 시내를 한 바퀴라도 더 돌며 조금이라도 폐지를 더 주우려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날씨가 크게 더워지면서 고물상을 찾는 어르신의 수도 줄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아침에 고정적으로 네다섯 명이 다녀가지만 오늘은 두 사람만 왔다"며 "날이 너무 더워 폐지를 많이 못 주워놨기 때문에 못 오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 동구 계림동에서 폐지를 줍고 있던 김모(85)씨는 이날 오전 9시부터 동네를 돌아다녔다. 모자를 쓰고 그늘이 있는 길을 찾아 걷던 김씨는 잠시 벽에 기대 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내리쬐는 햇볕에도 폐지를 하나라도 더 줍기 위해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김씨는 "오전 10시에는 대부분 일을 끝낸다"며 "아침 8시부터 14명씩 호남시장 등에 모여 각자의 위치에서 폐지를 줍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매일 4시간 동안 폐지를 줍는다. 매달 나가는 생활비와 병원비가 있어 보탬이 되기 위해 폐지 수집에 나서게 됐다. 하지만 날이 더워 낮 시간에 폐지를 모으기 어렵자 수입도 계속 줄고 있다.

김씨는 "폐지를 수집하고 점심에 집에 가서 빨리 쉬어야 한다"며 "최근에 어깨가 아파 폐지를 많이 옮기기도 어려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에서 80대 노인이 폐지와 고철을 수집해 고물상을 가던 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수진 기자


광주광역시는 지난 24일까지 자치구별 전수조사를 진행해 광주에서 폐지 수집을 하는 노인이 모두 618명인 것으로 파악했다. 이를 토대로 폐지 수집 노인들을 지원하는 '재활용품 수거인 지원 조례'가 지난 31일부터 개정 시행되고 있다.

광주시가 폐지 수집 노인이 재활용품 사전 선별 등 안전한 일자리에 참여하면 경비를 지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지만, '자원 재생 활동단'의 운영은 8월 한 달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지난 19일 광주지역 기온이 37.2도까지 치솟아 1939년 기상관측 이래 6월 최고기온을 기록한 상황에서 한 달 동안 폐지를 줍는 대신 재활용품 선별 작업 등을 하고 경비 20만 원을 받는 노인 일자리 기간이 더 확대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 이메일 :jebo@cbs.co.kr
  • 카카오톡 :@노컷뉴스
  • 사이트 :https://url.kr/b71afn

광주CBS 김수진 기자 sjsj@cbs.co.kr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