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기자의 책에 대한 책] '들러리용 B컷'을 내밀었더니 그게 책의 표지가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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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러리용 B컷'이란 말을 아는지? 책의 표지를 제작할 때 선택된 시안은 A컷, 선택되지 못한 시안은 B컷이라 부른다.
갈망하는 시안의 생존을 위해 북디자이너는 '선택될 리 없는' B컷을 끼워넣기도 한다.
'B컷: 북디자이너의 세 번째 서랍'은 채택되진 못했지만 7인의 북디자이너들이 마음속 서랍에 간직했던 '탈락 표지'를 모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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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러리용 B컷'이란 말을 아는지? 책의 표지를 제작할 때 선택된 시안은 A컷, 선택되지 못한 시안은 B컷이라 부른다.
그런데 북디자이너가 출판사와 저자에게 건네는 4~5개의 시안에는 반드시 북디자이너 자신이 'A컷으로 밀고 싶은' 시안이 있기 마련이다. 갈망하는 시안의 생존을 위해 북디자이너는 '선택될 리 없는' B컷을 끼워넣기도 한다. 그게 들러리용 B컷이다.
하지만 삶이란 게 계산대로 흐르던가. 들러리용 B컷 시안이 '최종 A컷'으로 채택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 북디자이너의 탄식을 넘어 B컷은 서랍행(行) 운명에 처해진다.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한 B컷은 영어의 몸이 된다.
'B컷: 북디자이너의 세 번째 서랍'은 채택되진 못했지만 7인의 북디자이너들이 마음속 서랍에 간직했던 '탈락 표지'를 모은 책이다.
'1등만 기억되는 더러운 세상'에서 1등을 차지한 A컷만 당당히 살아남고 2등, 3등인 B컷은 잊힌다. 이 책에 수록된 B컷의 비화란 이런 것들이다.
수많은 독자의 찬사를 받았던 강창래 작가의 2013년작 '책의 정신'은 빨간 표지가 인상적인 도서로 기억된다. 이 책의 B컷은 놀랍게도 흑백이었다.
만화작가 윤태호의 작품 '이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등의 B컷도 독자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숨겨왔던 B컷을 세상에 공개하면서 7인의 북디자이너들은 북디자인의 세계를 들려준다.
가령 이런 질문들. 'B컷이 A컷이었다면 그 책이 더 팔렸을까?' 덜 팔린 이유가 표지 때문일 수 있으니 확인 불가능한 의문만 해일처럼 밀려든다. 한 북디자이너가 들은 '최악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헐!" 정성스러운 작업에 비하면 너무 야박하고 즉흥적인 속내가 아니겠는가.
북디자이너는 매달 적게는 2권, 많게는 8권쯤 작업한다고 한다. 북디자이너는 책의 외형을 결정하는 연속적인 산파다. 한 번 선택되면 그 책이 스테디셀러가 돼 '리커버'로 제작되기 전까진 녀석의 얼굴을 바꿀 수 없다. 서랍에 갇힌 B컷을 꺼내 매만지면서 북디자이너가 갖는 감정은 복잡해진다.
하지만 모든 북디자이너가 모든 B컷을 소장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한 북디자이너는 쓴다. "내가 시안을 버린 게 아니라 선택받지 못한 시안들이 날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이 책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또 하나의 문장. "표지는 원래 먼지 덮개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덮개'라고 하기엔 책의 표지는 독자에게 무수한 말을 걸고 있다. 책의 표지는 수백 페이지의 종이와 잉크가 갖는 정신적 질량을 초과한다. 북디자이너는 일인의 '들러리'가 결코 아니다. 북디자이너는 책의 엄연한 주인공, 아니 주인이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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