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남' 약진을 보고 KBS 임원들이 느끼는 게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다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나이 많은 사람이 많아져서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나이 많은 사람이 살아가기 편치 않은 세상이다. 요즘 어르신들 택시 잡기 어렵다고 하소연들을 하시지 않나. 큰 병원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타셔야 하는데, 오실 때는 병원에 들어오는 택시를 타면 되지만 갈 때는 차를 못 잡아서 멀리까지 걸어가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신단다. 대부분의 택시들이 콜을 받아 이동하기 때문이다. 빈차로 움직이다가 손님을 태우는 일이 거의 없어서다. 또 자식들이 어플을 깔아줘서 호출을 했는데 도무지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는 분도 계시다. 왜 그렇겠는가. 출발지가 집으로 되어 있는 경우 골목골목 찾아 들어와야 하니까 기사들이 콜을 받지 않는 거다.
은행도 그렇다. 우리 동네 한 블록 안에 은행이 일곱 군데가 있었으나 지금은 한 점포만 남았다. 지난번 환전을 하려고 은행에 갔더니 대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기다리시는 분들의 태반이 인터넷이나 모바일 이용이 어려운 어르신들이다. 그런가하면 늘어나는 키오스크도 어르신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또 뭔가 고장이 났을 때, 전화를 걸어서 상담사와 통화를 해야 할 때 상담사와 연결되기까지의 과정이 지난하다. 아마 이런 일들이 점점 많아질 게다.
우리가 살아가기에 필요한 것들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나. 그러나 노년층에게 닥친 작금의 문제들은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 혼자 사는 비중이 높아지는 마당에 누구에게 물을 것이며 누구에게 해결을 해달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이와 같은 어르신들이 겪고 있는 고충들은 TV에 나오지 않는다. 택시 안 잡히는 거, 은행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부분, 시사교양은 물론 드라마 소재로도 예능 소재로도 쓰이지 않는다. 불편하든 말든 내일 아니려니, 외면하는 거다.
KBS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새 멤버 이민우. 79세인 어머님이 현관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처음에는 솔직히 설정인가?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오신 거며 아버님 먼저 들어가라 하신 거며, 살짝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민우야 내가 왜 이러니' 하며 울먹이시는 모습, 그게 설정이라면 연기 천재이신 거지. 지난주에 검사를 받으신 결과 300점 만점에 아버님은 208점으로 '경도인지장애', 어머님은 176점으로 치매 초기라는 진단이 나왔다.
'경도인지장애'를 허술히 여겨서는 아니 되는 것이 5년 내에 70%, 7년 내에 90% 확률로 치매로 발전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각오를,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된다는 얘기가 아니겠나. 치매는 조기 진단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면 다행히 병세를 늦출 수 있다고. 치매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취미 활동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이민우 어머님이 장구를 칠 줄 아신다는 말에 박서진이 장구 레슨을 해드리기로 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노인이 겪는 고충, 당면 과제를 이처럼 소상하게 다룬 적이 있던가? 고령화 시대다 뭐다 뉴스에서 연일 보도를 하지만, 그토록 넘쳐난다는 노인이 왜 TV에서는 보기 어려운지 모르겠다. 우선 드라마에 노인이 잘 안 나온다. 특히 남자 노인, 할아버지 역할이 드문데 나온다고 해도 탐욕스러운 그룹 회장 정도다. 주말극이나 일일극에는 주로 할머니 혼자 나올 뿐 내외간이 해로하는 모습은 보기 어려워졌다. 양주가 나란히 등장하는 드라마는 김수현 작가 작품 이후엔 거의 접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원로 배우 백일섭도 어언 10년 가까이 드라마 출연을 못했겠나. 이유진 아버지 이효정도 꽤 오랜 기간 연기를 하지 못했단다.
지난 11일 KBS가 '저출생위기대응방송단' 출범을 발표했다. 구체적 역할이 뭔지는 모르겠다. 거기에 아울러 노년층보다는 젊은층 유입을 위한 방송을 하겠다고 천명했다는데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몰라도 너무 모른다. 제발 노년층의 이탈이나 막을 생각을 하시라.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가 박서진 출연을 기점으로 달라졌고 거기에 새로운 진행자 백지영의 진정성이 더해지면서 6월 8일 348회는 6.4%,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1박 2일> 시청률이 최근 6%대 수준이니 놀라운 상승세다.
이런 변화를 보고 KBS 임원들, 느끼는 게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다. 노년층을 아우르지 않았기 때문에, 배제했기 때문에 TV가 빈집이 되어간다는 사실, 아직도 모르는가. 70대 80대 어르신들이 TV 대신에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는 세상이 올 줄 방송사 사람들은 꿈에도 짐작을 못했을 게다. 노년층을 배제하는 이상 어떤 사업을 하든, 어떤 기획을 하든 장기적인 호황을 누리기는 어렵다고 본다. 젊은 층이 선호하는 핫한 장소, 아이템들, 반짝 인기는 누릴지 몰라도 오래 가기는 어렵다. 방송사 윗분들, <살림남>의 약진을 거울삼아 고민 한번 해보시기를.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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