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대 포장’된 대북 확성기 성능···북은 왜 알레르기 반응일까[박성진의 국방 B컷](9)

2024. 6. 2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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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장병들이 경기 파주 비무장지대(DMZ) 근처에서 대북 확성기를 점검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북한의 오물 풍선 투하에 대한 남측의 군사적 ‘팃포탯’(Tit-for-Tat·맞받아치기)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로 이어졌다. 북한도 대남 확성기를 다시 설치했다. 남북 간 ‘행동 대 행동’은 치킨게임으로 가고 있다. 확성기 방송시설이 설치된 곳에는 K-4 고속유탄 기관총, K-3 기관총, 90밀리 무반동총 등 즉각 대응 화기가 배치됐다. 군은 또 무인정찰기, 토우 대전차 미사일, 대공 방어무기 비호, 대포병탐지레이더(AN/TPQ-36) 등까지 동원해 북한군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다.

군 당국은 확성기 방송이 북한군의 사기를 심각하게 떨어뜨리고, 나아가 북한 체제를 흔드는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 자신한다.

10도 못 가 ‘발병’ 나는 확성기

과연 대북 확성기는 군의 주장대로 북한 정권에 심대한 심리적 타격을 주는 ‘전가의 보도’일까. 군은 신형 확성기 방송출력을 최대로 할 때 방송이 닿는 거리가 낮에는 10㎞로 개성공단 이상, 밤에는 24㎞로 황해북도 금천군까지 퍼져나간다고 설명한다. 가까운 북한 군부대는 물론 비무장지대(DMZ) 북쪽 민간인 거주지에서까지 대북 방송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가장 큰 원인은 대북확성기 전력화 사업이 비리로 얼룩진 탓이다.

개성에서 북측 비무장지대(DMZ)까지 거리는 8㎞, 군사분계선(MDL)까지는 10㎞이다. 군 설명대로라면 개성 시내에서도 확성기 방송 내용이 들려야 한다. 그런데 개성 출신 탈북민 가운데 확성기 방송을 정확히 들었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저 “(밤에 들린다 해도) 웅웅거리는 소리로 방송 내용을 알아들을 수준이 아니었다”고 한다.

군은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등을 계기로 대북 심리작전을 강화하기 위해 고정형 확성기 24대, 기동형 확성기 16대를 신규 도입했다. 새로 확성기를 도입하며 사업 공고문에 내건 기준이 주야간 구분 없이 10㎞였다. 애초부터 군이 심리전 방송의 효과를 과시하며 내건 최대 24㎞에 한참 못 미치는 기준이다.

새로 도입한 확성기는 2016년 주야간 및 새벽에 실시한 확성기 성능 평가에서 10㎞ 가청 거리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했지만, 국군 심리전단은 야간과 새벽 중 한 번만 통과하면 합격하도록 성능 평가 기준을 임의로 변경했다. 이동식 확성기는 차량이 아니라 땅에다 두고 테스트를 했다. 소리는 바람, 습도, 주변 소음 등에 따라 이동 거리가 달라지는데 이러한 변수는 입찰제안서에도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북한이 남쪽을 향해 스피커를 작동하는 ‘제압방송’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는 평가대상도 아니었다. ‘멀리서 오는 소리는 가까이 있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라는 ‘사운드 마스킹’ 효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 군인 또는 주민에 대한 실태조사를 겸한 청취율이나 효과 검증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남쪽 군부대 사이에서 실제 방송 환경처럼 만든 후 일정 거리(10㎞ 정도)에서 보내는 방송의 소리가 어떤 식으로 들리는지를 검증하면 됐다. 이는 현장의 실제 작전상황을 고려하는 방식이지만, 군은 하지 않았다.

이런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군은 주야간 가청 거리 10㎞의 성능 충족이 담보되지 않은 500W(와트)급 대형 스피커 48개로 구성된 확성기 40여 대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이동식 장비 중 상당수는 방송이 5㎞ 정도밖에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DMZ에 수풀이 우거진 점 등을 고려하면 북방한계선을 1㎞밖에 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소리가 밤에는 평지에서 10㎞를 간다고 해도 산이 있고, 바람이 부는 환경에서 낮에는 1~2㎞밖에 못 간다는 것이다. 기동형 대북 확성기는 최전방 전술도로의 환경적 제약으로 방송 효과가 큰 곳까지 이동하지 못하는 문제점도 군 내부에서 제기됐다. 성능 불량 확성기로 인해 대북방송은 ‘DMZ 고라니들만 감동시킨다’는 비아냥이 나온 이유다. 전문가들은 확성기 방송은 대략 4~6㎞ 범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고 존엄’을 건드리는 확성기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확성기보다 전방위 동시다발 심리전이다. 북한은 대북 심리전이 확성기에 그치지 않고 확대되면서 체제를 위협할까 두려워한다. 그만큼 대북 확성기는 북한이 도발할 1차적 명분이 충분하다.

북한은 또 ‘최고 존엄’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모독하는 비판 확성기 방송에 대해서는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군은 “사실에 기초해 북한 체제를 비판하고 유치한 방법은 쓰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대표적인 예로 북한 권력층을 희화화해 방송한 <호위사령부 25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기쁨조’ 출신인 부하의 아내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 성폭행하는 ‘패륜 드라마’였다.

최전방 북한군 지휘관들 처지에서 ‘최고 존엄’ 김정은에 대한 막말을 듣고는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군이 김정은 관련 내용이 나오면 맞불방송(제압방송)을 하는 것도 병사들이 최고 존엄을 비판하는 내용을 듣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북측은 남북 고위급 회담 때면 “남측의 ‘최고 존엄’을 욕하지 않을 테니 우리의 최고 존엄을 건드리지 말라”고 집요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 병사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13년간 군 복무 기간 내내 확성기를 비롯한 심리전에 노출됐던 북한 선임 병사들은 대북방송에 무신경한 편이었다고 한다. 2004년 대북방송 중단 후 10년간 귀순한 북한군이 확성기 방송을 했던 이전 10년 동안 귀순한 북한군보다 많았다.

남측은 2015년 8월 육군 1사단 지역에서 북한이 목함지뢰로 도발하자 11년 만에 확성기를 다시 틀었다. 48시간의 최후통첩을 내놓고는 준전시 상태에 돌입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조성됐다가 북측이 지뢰 폭발에 유감을 표명하고, 남측이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일단락됐다. 이는 대북 확성기가 ‘DMZ의 전설’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도발에서 위기로, 다시 대화로 이어진 국면은 확성기 방송만이 아닌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것이었다.

북한 체제의 취약점은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독재정권이 외부 세계로부터 주민을 격리해 체제를 지켜왔는데, 전방위적인 심리전은 감당하기 힘든 공격이다. 북한 내부에서 주파수가 고정돼 있지 않은 소형 라디오, 한국 영화나 드라마, 외부 소식이 담긴 USB와 DVD를 조용하고 은밀하게 유통하는 것이 대북 확성기 방송보다 효과적이다. 드러내놓고 대북 확성기를 트는 방식은 하책이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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