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도, 사직도 안 하는 전공의들…이번엔 '수리 시점' 두고 갈등?
전공의 이탈과 교수들의 휴진으로 경영난을 호소하는 대학병원이 이번엔 '사법 리스크'를 감당해야 할 처지에 놓여 울상이다. 전공의 사직·복귀에 대한 책임을 병원이 온전히 떠맡게 되면서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번 달 내로 전공의 근무 현황을 점검하고 사직서 처리 지침 등을 각 대학병원에 설명할 예정이다.
21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 병원장에게 내린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과 전공의에게 부과한 진료유지명령과 업무개시명령을 전면 철회하고 복귀 전공의에게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사직 전공의는 의료 현장 상황, 전공의 복귀 수준,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대응한다며 '선처'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전공의들은 2주가 넘도록 병원에 복귀하지도, 사직하지도 않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전국 211개 수련병원의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전체 출근율은 7.6%다. 1만3756명 중 1052명만이 병원에서 일한다. 정부가 전공의에게 내린 각종 명령을 철회한 뒤로 고작 39명 증가했다. 반면에 사직서가 수리된 레지던트도 1만506명 가운데 32명으로 0.3%에 그친다. 병원에 오지도, 그렇다고 관두지도 않는 상황이다.
현재 전공의 복귀와 사직서 수리 여부는 온전히 병원장을 포함한 병원 의료진의 몫이다. 복지부가 전공의에게 내린 각종 명령을 철회하면서 각 대학병원에 전공의를 상담, 설득하라며 공을 넘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원은 전공의들의 사직서 처리를 두고 여전히 혼란을 겪고 있다. 전공의 출근율·사직률이 모두 낮은 이유기도 하다. 우선 전공의들은 이미 사직 의사를 밝혔지만, 이를 처리하는 '첫 번째 병원'이 되기는 꺼리는 측면이 있다. 가장 먼저 전공의를 내쳤다는 이미지가 심어지면 내년도 채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걱정하는 것이다.
손해배상 청구 등 사법 리스크도 고민거리다. 전공의들은 2월 20일 전후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집단 이탈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사직서를 수리할 경우, 전공의가 지금까지 받지 못한 급여를 주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의 2022년도 전공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월급은 380만~400만원 정도다. 3개월을 기준으로 1000만원 이상을 각 병원당 수십~수백명에게 줘야 하는 셈이다. 무급휴가·희망퇴직·병동 통폐합에 이어 주 4일 근무까지 검토하는 등 경영난에 허덕이는 병원 입장에서는 부담일 수 있다.
또 다른 서울지역 대학병원 관계자는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고 지금처럼 병원을 운영할 수도 있지만 사법 리스크는 점점 커지고 전공의들의 재취업을 가로막는다는 비난도 나오게 될 것"이라며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사직서 수리 시점을 6월로 지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국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총괄반장(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브리핑에서 "6월 4일 이후에 사직서 수리 금지명령을 철회했기 때문에 그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사직서 수리가 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렇게 되면 사법 리스크는 일정 부분 해소돼 병원의 부담도 한층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전공의 사이에서 이번 달로 사직서 수리 시점을 바꿀 경우 정부·병원이 구상권 청구나 각종 행정처분 등을 제기할 위험이 있다는 주장이 공유되고 있어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지난 7일 전공의를 대상으로 사직서 수리 기간을 6월로 조정한 병원을 신고해 달라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리기도 했다.
임 회장은 이 글에서 "(전공의들이) 태평양 전쟁 징용자냐. 이제 와서 다시 6월 기준으로 사직서 내면 수리해 주겠다니 누구 맘대로?"라며 "사직서 미수리 손실, 정신적 위해에 대한 위자료에 퇴직급여 대거 미지급으로 인한 불법 행위에 대해 감옥 갈 각오나 하세요"라고 병원장 등에 으름장을 놨다. 김국일 총괄반장은 "6월 말 정도 상황을 모니터링해서 적절히 판단하겠다. 수련병원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는 문제 해소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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