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과 협업·정부 지원 중요" K-바이오 도약을 위한 조건
[편집자주]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이 잇따른다. 특히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을 직접 공략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연간 매출액 1조원을 넘는 토종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등장도 눈앞이다. 지금은 K-바이오가 글로벌 시장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하는 중요한 시기다. K-바이오가 글로벌 시장에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할 때다.
에이비엘바이오는 국내 대표 신약 개발 바이오 벤처로 꼽힌다. 이미 1조원 이상 규모의 글로벌 기술이전에 성공하며 일정 부분 흑자 구조를 갖췄다. 다양한 이중항체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해 성장 잠재력이 높단 평가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K-바이오가 글로벌 시장에서 도약하려면 임상 2상 또는 3상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연구 역량이 필요하고, 후기 임상에 대한 도전이 많아지려면 결국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원활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또 "'미투 드럭'(me-too drug, 프로토타입에서 약간의 수정을 가해 기존 약물과 유사한 약물)이 아니라 실제 글로벌 기업의 파이프라인과 임상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디자인을 갖춘 선도물질이 필요하다"며 "비임상 단계에선 효능뿐 아니라 PK(약동학)와 독성 등 모든 분야에서 베스트인클래스가 될 수 있는 약물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 벤처는 우선 기술이전에 집중하는 동시에 글로벌 빅파마가 혹할 만한 차별화된 기술을 확보해 지속 가능한 경영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미 자금력을 보유한 주요 제약사는 자체적인 신약 개발과 글로벌 기술수출 또는 공동개발을 병행하는 전략이 주효할 것이란 진단이다.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이사는 "국내 바이오 중 알테오젠의 제형 변경 기술이나 펩트론의 약효 지속 시간 증대 기술처럼 빅파마의 신약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차별화된 기술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빅파마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기술을 개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정규 유안타인베스트먼트 이사는 "국내에서도 상위 제약사가 M&A(인수합병) 등을 통해 글로벌 빅파마와 붙을 수 있는 큰 몸집을 갖추는 방법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결국 최대 제약 시장인 미국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단 마음가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바이오 벤처는 우선 기술수출을 통해 수익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수출뿐 아니라 공동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방식으로 글로벌 빅파마의 역량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며 "기술수출 이후에도 파트너가 진행하는 임상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자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국내 바이오 산업은 기술이전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아직 임상 3상을 통한 자체 개발 측면에선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분명히 시간이 필요한 영역이지만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대규모 임상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최근 로슈나 노바티스, 베링거인겔하임 등과 만났는데 한국의 바이오 기술에 대해 매우 높게 평가하더라"며 "정부가 바이오를 지원하기 위한 대형 펀드를 고민한다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현재 시장 상황에 맞는 구조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바이오가 발굴한 신약 후보물질 중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파이프라인이 있다면 보다 빠르게 임상에 진입할 수 있게 적절한 자금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단 조언도 나온다.
서근희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내 바이오가 글로벌 시장에서 더 성과를 내려면 R&D(연구개발)의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며 "임상을 빨리 진행해 신약 후보물질의 효능을 증명하는 게 중요한데 국내 바이오는 해외에 비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크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나 자본시장의 도움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스스로 자본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 이와 관련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어떤 치료제든 부작용이 없으면서 효능을 낼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바이오 기업은 투자를 받겠다고 무조건 된다고 하는 게 아니라 확률로 얘기해야 한다"며 "시장이나 투자자가 오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주고 막상 실패한 뒤 나몰라라 하면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또 "바이오는 피해자를 만들 가능성이 높은 산업 중 하나라 더 신경써야 한다"며 "파이프라인 하나로 외줄 타기를 하지 말고 다양한 협업을 통해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도윤 기자 justice@mt.co.kr 정기종 기자 azoth44@mt.co.kr 홍효진 기자 hyos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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