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살 주방장의 콩물국수 찾아 전국에서…비법은 “밀가리와 메밀 반반”
전남 나주 영산포 부산식당
오래된 식당을 수소문했다. 향토사학자로 전남 나주를 꿰뚫고 있는 윤여정 나주문화원장이 추천한 ‘60년 노포’에 마음이 끌렸다. 그가 애초 꼽은 별미는 나주 영산포 부산식당의 여름 콩국수였으나, 내가 콩국을 썩 즐기지 않는다는 소리에 같은 집의 ‘홍어찜 백반’을 떠올렸다. “어디 홍어찜뿐인가? 구운 조기에 고등어 졸임까지 솔찬히 맛나부러.”
17일 오전 11시40분 영산포 부산식당 앞에 도착했다. 영산포를 오갈 때마다 곁눈질로 지나쳤던 옛 일본인 거리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1980년대말 임권택 감독이 영화 ‘장군의 아들’을 식당 아래 영산6통에서 세트장 없이 촬영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나주시 영산3길에 있는 식당은 말 그대로 노포였다. 단층 식당의 외관은 일본 양식이 남아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먼저 온 손님들이 식탁 10여개 중 4개를 차지하고 있었다.
식탁에 앉자마자 주문을 받았다. 다들 개수만 이야기했다. 여름철엔 콩물국수만 단일 메뉴로 내놓는다고 했다. 우리도 “두개요~”라고 했다. 식당 주인 서진원(88)씨에게 인사하러 주방으로 갔더니 면을 즉석에서 뽑아 팔팔 끓은 물에 넣은 뒤 나무 주걱으로 젓고 있었다. 함께 간 윤 원장은 “여기 주인장이 전국 최고령 현역 셰프일 것”이라고 귀엣말을 했다. 식탁으로 나갈 콩나물과 묵은김치가 주방 오른쪽에 대기 중이었다.
식탁에 앉았더니 얼마 뒤 콩물국수가 나왔다. 삼찬이 정갈하게 함께 놓였다. 식탁엔 노란 설탕이 통에 담겨 있었다. 콩물국수가 푸짐해 보였다. 콩물부터 맛을 봤다. 한 숟가락을 떠 넣었더니 고소하고 시원했다. “어? 맛있네.” 일단 국수의 질감이 쫄깃했다. 가위로 면발을 반 토막 낸 뒤, 국숫발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면에 묵은김치를 곁들이니 삼삼했다.
식당 안은 어느새 꽉 찼다. 곳곳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 보였다. 모내기를 마쳐 한숨 돌린 뒤 동네 여름 별미를 맛보러 온 분들이다. 우리 옆자리에도 윤 원장의 고향 선배가 지인과 함께 와 있었다. 건너편 식탁에서 친구 둘과 콩물국수를 먹던 조세환(80)씨는 “요집 콩물국수가 션하고 달달허니 맛있어. 기운 없을 때 요것 묵고 나면 힘이 폴폴 난당게. 다닌지가 벌써 수십년이여”라고 했다. 입소문을 듣고 왔음직 한 젊은이들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부산식당이라는 상호는 부산과의 인연 때문에 붙였다. 서 대표는 “콩국수라는 게 원래 나주에는 없었다. 가게 시작할 때 뭐로 할까 하다가 콩국수로 하면 사람들이 신기해서 많이 오겄다 싶었다”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4월부터 8월까지만 콩물국수를 한다. 영산포에서 콩을 산 뒤 영강동의 단골가게에서 콩물을 직접 갈아온다. “면이 다르다고들 해. 쫄깃쫄깃하잖아? 메밀하고 밀가리하고 조합이 잘 맞어서 그래. 시중에서 파는 국수로 만든 것과는 맛이 달라.”
콩물국수를 시작하고 2년 뒤 콩 가는 기계를 가게에 들여놓았을 만큼 장사가 잘됐다. 당시 짜장면값이 500~600원이었는데, 콩물국수는 1500원으로 세배 정도 비쌌다. 그래도 점심 때마다 손님들이 줄을 섰다. 1970년 그에게 세를 놓았던 집주인이 가게를 비워달라고 해 지금의 식당 자리로 옮겨왔다.
“노하우? 장사하는 사람이 그런 거를 어디 쉽게 갈차주간디? 비법을 알려줘불믄 손님 다 뺏겨부러. 허허.” 그러더니 얼마 안 가 “밀가리하고 메밀하고 딱 5대5로 섞어 반죽을 해. 그래야 ‘조화’가 되아. 메밀은 소화가 잘돼서 몸에도 더 좋고”라고 딱히 비법이랄 것도 없는 그만의 비법을 알려줬다.
직원 최장례(72)씨는 밑반찬을 담당하는 주방장 보조다. 부산에서 콩물국수에 소금을 넣어 먹었던 서 대표는 영산포에서 장사를 시작하면서는 설탕과 소금을 함께 식탁에 놓아뒀다. 지금은 설탕만 놓는다. 그래도 가끔 서울이나 경상도에서 온 손님들이 소금을 찾는 경우도 있다. 영업은 저녁 7시30분까지만 한다. “콩물국수 즐겨 자시는 양반들이 다 연결이 돼 있는가 보드만. 처음 만난 사람끼리 광주서 왔네, 인천서, 부산서 왔네 함서 막 인사를 해. 먹어본 양반들끼리 인터넷에다가 품평 같은 거를 열심히 올리는갑대. ”
홍어찜 백반은 9월부터 나온다. “어쩌다 홍어찜 백반을 찾는 사람이 있는디, 요새 같은 때는 손이 달려서 못해.” 홍어는 영산포 홍어거리에서 사온다. 홍어 잔가시 등을 손질한 뒤, 솥에 물을 붓고 찐다. 그리고 간장에 고춧가루와 파를 썰어 넣어 양념을 만든다. 김치는 해마다 400~500포기를 담는다. 배추는 나주산만 사용한다. “묵은지가 맛나. 묵은지는 1년에 한 번만 담가 먹는 것이 질로 맜있어.”
서 대표는 지금도 새벽 3~4시에 일어난다. 새벽에 가게에 나와 반죽하고 ‘콩수’ 갈아 놓지 않으면 낮 장사를 할 수 없다. 오전 11시부터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밥만 잘 묵으면 되아. 사람이 속병 없으면 어뜨케든 살아. 나? 배달하다가 오토바이 사고로 2년간 병원 생활한 거 빼곤 건강한 편이여. 혈압약만 묵고 있제, 병은 없어. 그래도 장담 못해. 사람 일은 모른게. 아무튼 건강한 동안에는 장사해야제.”
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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