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 트라우마는 '성공한 역사'로 지울 수 없다
영국 기자 타냐 브레니건의 '기억의 장례'
문화대혁명이 중국에 남긴 트라우마 추적
중국 공산당의 공식적 부인에도 불구하고
아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중국인들 조명
미국 역사학자 스티브 코언의 '돌아온 희생자들'(글항아리 발행)과 비교할 법한 책이다. 코언은 이 책에서 옛 소련의 역사를 미국과의 냉전과 군비경쟁, 국제 공산주의 운동 같은 것이 아닌 '굴라크(강제노동수용소) 트라우마 치유'를 중심으로 정리하는 특이한 관점을 취했다.
미국 역사가 티머시 스나이더는 그의 대표작 '피에 젖은 땅'(글항아리 발행)에서 아우슈비츠가 실은 굴라크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설명했다. 2차대전 이후 서구가 홀로코스트 망령에 시달렸듯, 스탈린 사후 소련도 굴라크 문제를 정리해야 했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흐루쇼프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넘어 스탈린 각하 운동을 벌여서라도 굴라크 트라우마를 해결하려 들었던 소련의 첫 지도자로 기억돼야 한다. 흐루쇼프가 남달리 훌륭했단 말이 아니다. 소련은 그 트라우마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문혁' 현대 중국의 핵심 키워드
영국 일간지 가디언 기자인 타냐 브레니건은 2008년 베이징특파원으로 중국에서 7년간 근무했다. 그 기간 동안 중국의 여러 곳을 취재하면서 확신했다. 아무도 말하진 않지만 모두의 머릿속에 어떤 방식으로든 남아 있는 단어가 '문화대혁명(문혁)'이라는 걸.
시작은 한 갤러리였다. 철없는 홍위병들의 기괴한 난동인 문혁을 조롱하고 풍자하면서 은근히 서구의 우월감을 만족시켜 주는 작품들은 숱하게 많다.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에서 보듯 문혁은 지구 멸망을 초래할 단초로까지 다시 불려 나오지 않던가.
저자 눈길을 끌었던 건 문혁 가해자, 희생자를 그린 초상화였다. 조롱, 풍자보다는 그 얼굴들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겠다는 진지함이 흘러넘치는. 그 초상화의 방법론을 따라 문혁 관련자들을 만난 뒤 그 기록을 모은 게 이 책 '기억의 장례'다.
비인간적 문혁의 참상들
비극적 사건의 트라우마는 규모의 문제는 아니다. "19세기 태평천국의 난 때는 2,00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1930년대 일본의 잔인한 점령으로 1,500만 명"이 숨졌고 "1958년에는 대약진 운동으로 인한 기근으로 약 4,000만 명이 사망"한 것에 비하자면 1966~1976년, 10년간 진행된 문혁 사망자는 대략 2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문혁의 핵심은 비인간성이다. 책엔 그 생생한 이야기들이 넘쳐나는데 우리 귀에 가장 익은 사람으론 1966년 8월 톈안문에서 마오쩌둥 팔에 붉은 완장을 채워줌으로써 '100만 홍위병' 그리고 '문혁 폭력'의 상징이 된 쑹빈빈이다. 쑹은 2014년 공식사과를 해서 또 화제를 모았다.
저자가 들려주는 건 그 뒷얘기. 문혁에 대한 얘기를 요청하자 쑹은 약속과 달리 친구들만 보낸다. 그 친구들은 '쑹 또한 피해자'라는 말만 반복한다. 저자는 씁쓸하게 토로한다. "진실과 화해를 이야기했으나, 정의에 대해서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의 모든 발언은 종결을 향한 것이었고, 책임을 지려는 것이 아니었다."
역사비판이 '역사허무주의'라는 시진핑
열 살 때 어머니를 고발해 총살시켜 버린, 그래서 '천륜까지 저버리는 홍위병'의 상징이 된 장훙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지만, 그는 그 이야기에서 자신을 제거해 버렸다." 장은 최악의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머니는 한 사람으로서 독립적인 사고를 해야만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았다"라고. 혁명이 부족하다고 죽은 엄마는 이제 혁명이 넘치는 것도 책임져야 한다.
개인만 그럴까. 저자는 그 자신이 문혁 피해자이기도 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역사 허무주의'를 금지시켰다는 점을 지적한다. 문혁을 비판하면 마오쩌둥을, 그리고 공산당과 중국을 비판하리라는 우려 때문이다. 현대사에 대한 중국의 공식 입장은 이렇다. "마오이즘과 전체주의, 그리고 개인주의 시장 체제 사이에 차이는 없었다. 실수는 없었고, 방향 전환도, 불화도 없었으며, 미래를 향한 매끄러운 진보만이 있었다."
'매끄럽게 성공한 역사'라는 거짓말
독재, 쿠데타, 학살의 기억을 들추면 불편해하고 '경제개발을 통해 선진국으로 진입한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 이들이 벌이곤 하는 한국의 역사전쟁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참, 그러고 보니 저자는 "서구의 좌익 학생들과 홍위병을 비교"하는 것을 "어리석을 뿐 아니라 모욕적"이라 했다. "비유해야 한다면 트럼프와 우익, 그가 조종한 극단주의에 비유"하라 해뒀다.
10년간에 걸친 비이성적 폭력, 권력 암투 등을 다루다 보니 문혁 이야기들은 인물, 사건, 갈등이 너무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에 비해 이 책은 개개인의 삶을 정밀하게 드러내면서도 이를 토대로 오히려 문혁의 발생, 전개, 소멸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단죄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묘사할 뿐인 저자의 필력 또한 일품이다.
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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