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 속에 담긴 마음[살며 생각하며]

2024. 6. 2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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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희 작가
베란다 구석에 방치된 유리병
오랜 시간 재워진 작은 알갱이
작은아버지가 선물한 말벌술
오빠는 병약한 동생에게 양보
무엇을 누구와 나눈다는 것은
사회·세상에 지불해야 할 의무

이게 뭐지? 베란다 한쪽 구석에 버려지듯 방치된 유리병이 눈에 띄었다. 언제부터 있었을까. 유리병을 싸고 있는 에어캡이 그간의 시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뿌옇게 흐려져서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도대체 뭘까. 조심스럽게 그 유리병을 싸고 있는 비닐 뽁뽁이를 벗겨냈다. 내 손이 닿을 때마다 에어캡에 두껍게 내려와 있던 먼지들이 풀썩풀썩 흩날렸다.

도무지 유리병 속에 들어있는 진한 갈색 액체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비닐 포장을 벗겨내자 액체 속에 푹 잠긴 완두콩만 한 크기의 작은 알갱이들이 눈에 밟혔다. 간장이나 매실청인가 싶었는데 둘 다 아니었다. 오랜 시간 재워진 그 알갱이들은 시나브로 쪼그라들어서는 단박에 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뚜껑을 열어 보려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어이 열려고 마음먹었으면 어떻게든 열었을 테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베란다에 있었던 걸 보면 당장 필요한 게 아닌 듯싶어 굳이 애써서 뚜껑 여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그 유리병 속의 물건이 무엇인지.

그것은 오래전, 아주 오래전, 작은아버님께서 오빠에게 주신 물건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말벌을 재운 술이었다. 말벌의 독이 성체와 함께 고스란히 그 안에 녹아 있었다. 독은 독으로 다스린다고, 옛날부터 중병에는 독을 사용하기도 했었다. 작은아버님은 어디서 말벌을 재운 술이 약이 된다는 말을 들으셨던 모양이다. 중등학교 음악 교사로 재직하다 오래전에 정년퇴직하시고 건강과 소일 삼아 벌을 키우고 계시던 작은아버님이셨으니 벌과 꿀에 관한 한 웬만큼은 알고 계셨다. 그러니 약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십 년, 아니 이십 년도 더 지난 것이었다. 그만큼의 시간 동안 말벌은 유리병 속에 술과 함께 봉인돼서는 까맣게 잊어져 있다가 이제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빠는 그때 그랬다. 그 약술이 담긴 유리병을 동생에게 내밀면서. 작은아버님께서 주신 거다. 몸에 좋다니 조금씩, 아주 조금씩 먹어라. 작은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은 집안 장손이 걱정돼 직접 담근 말벌술을 오빠에게 주셨고, 오빠는 그걸 다시 동생에게 준 것이다. 자신이 먹어도 좋을 것을 다른 이를 위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건네는 그 마음과 온기가 따듯했다. 그때 동생 대신 받아든 유리병에서 오빠와 작은아버지의 마음이 묵직하게 전해졌다.

그 말벌은 작은아버지의 벌통을 공격하던 주변의 말벌들을 잡은 것이라고 했다. 장손을 줄 거라 위생에도 특히 주의했다고 하셨다.

지금이라도 먹어 볼래? 조금, 아주 조금만. 나는 작은아버지의 수고와 정성과 오빠의 마음을 생각하며 동생에게 물었다. 정말로 동생이 먹었으면 했다. 그걸 먹고 조금이라도 더 기운을 차렸으면 했다. 아직 한창 나이인데, 생의 대부분을 병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동생이 안타깝고 애잔했다. 오빠도 그 마음이었을 것이다.

싫어. 내 바람과는 달리 동생은 화들짝 놀라 손사래까지 치며 고개를 저었다. 하긴 처음부터 먹을 요량이었으면 이렇게까지 구석에 박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니가 먹어. 좋다잖아. 동생은 내게 먹으라고 권했다. 작은아버지에게서 오빠에게로, 오빠에게서 동생에게로, 이젠 동생에게서 나인가? 하지만 나 역시도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렇게 한 술도 뜨지 않은 채 처음 건네준 그대로 방치돼 있다는 걸 알면 오빠는 얼마나 서운할까. 그때 오빠는 그걸 먹으면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는 동생이 조금이라도 나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고, 그 기대감에 건네는 표정 또한 낫낫했다. 잘 챙겨 먹어. 뭐가 약이 될지 모르니까. 오빠는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그런 물건이었으니 오빠에게 돌려보내는 것이 망설여졌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주기도 어려웠다. 술에 푹 재워진 그 알갱이들 사이에서 아직 온전히 제 형체를 간직하고 있는 날개들을 마주하다 보면 먹기가 쉽지 않았다. 알갱이는 거르고 술만 입에 적시듯 마시는 거였지만 말이다. 게다가 공산품이면 모를까, 집에서 만든 단방약이라 행여 먹고 탈이 날까 걱정도 됐다.

지나친 기우일지는 모르지만, 혹시 있을 뒷일이 염려스러운 것이 소셜네트워크에 올라오는 세상 잡다한 소식이나 뉴스들에 나도 모르게 학습이 된 모양이다. 비단 말벌을 재운 술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물건과 음식을 나누고 싶었지만, 번번이 마음을 접었다. 그저 모른 척 지나가면 내 지루한 일상은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방관자적 심리가 세상에 대한 나의 무관심을 부추겼다. 하지만 마음 한편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모두가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느라 방관자가 될 때, 세상에 대해 무관심해질 때, 그 사회는 더는 안전하지도 않고 나 자신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없다.

내 것을 나눈다는 것. 그것은 일정 부분 자신이 속한 사회와 세상에 지불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기도 하다. 인류애! 그 사랑은 일종의 생존세이기도 하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했는데, 정말 그것은, 사랑은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이며 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건강할 때 내 삶도 건강해진다. 나 혼자 건강한 삶은 오래가지 못한다. 생명은, 세상은 그렇게 서로 주고받으며 순환되는 것이다. 그 유리병은 애초의 주인에게 돌려보내야겠다. 오빠에게.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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